만년필로 확인된 70년전 6·25 전사자 신원
만년필로 확인된 70년전 6·25 전사자 신원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2.11.2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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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에서 산화한 편귀만 하사…딸이 아버지 찾아 현충원 찾고 시료 채취 참여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백마고지는 6·25 전쟁 때 국군과 중공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727일 백마고지에서 발굴한 국군 유해가 고 편귀만 하사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1952년 사망 당시 고인의 나이는 27세였다.

이로써 2000년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된 이후 200명의 6·25전사자 신원이 확인되었고, 백마고지에서 발굴된 3명의 전사자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고 편귀만 하사 유품 /사진=국방부
고 편귀만 하사 유품 /사진=국방부

 

고인은 국군 9사단 30연대 소속으로 백마고지 전투(1952. 10. 6.~15.)에 참전했다. 백마고지 전투는 강원도 철원 일대 백마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국군 9사단이 중공군과 7차례나 고지의 주인이 바뀔 정도로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전투로써, 9사단은 12차례 공방전 끝에 백마고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지만, 고인은 이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이번 신원확인은 고인의 성명이 각인된 만년필이 함께 발굴되면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고인의 유해는 5사단 유해발굴 TF 강훈구 중사가 경사면에서 작은 뼛조각을 극적으로 발견해 발굴이 시작되었고, 경사면 아래쪽을 노출하자 개인호에서 머리와 가슴을 앞으로 숙인 채 다리를 구부려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발굴되었다.

철모, M1 소총 등 91점의 유품이 발굴되었으며 특히 함께 발굴된 만년필에서 편귀만 전사자의 성명이 각인된 것이 식별되어 유해의 신원이 특정되었고, 2006년부터 4차례에 걸쳐 시료를 제공한 유가족과 유해의 유전자 정보를 대조한 결과 가족관계가 확인되었다.

 

함께 발굴된 만년필(만년필 몸통에 성명이 각인되어 있다) /사진=국방부
함께 발굴된 만년필(만년필 몸통에 성명이 각인되어 있다) /사진=국방부

 

고인은 전라남도 나주에서 5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가던 고인은 1948년에 결혼해 슬하에 11녀를 두었다.

고인은 아내의 태중에 막내딸이 자라고 있었지만 19526월 입대하여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은 후 9사단에 배치되었고, 끝내 막내딸의 출생은 보지 못한 채 백마고지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되었다는 소식에 딸 편성숙씨는 간절히 찾았는데 살아서 돌아오시는 기분이다자식으로서 할 도리를 다한 것 같아 마음이 벅차다고 소회를 전했다.

전사자 딸은 그동안 고인의 유해를 찾으려 노력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충원 묘비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특히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유해를 찾고자 2006년에 숙부(고인의 남동생)를 설득해 유가족 유전자 시료를 처음 채취했고, 시료 채취를 많이 하면 신원확인이 수월할 것이라는 마음에 한 번이라도 더 시료를 채취해 달라며 현충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고 편귀만 하사의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1122일 경기도 오산의 보훈회관에서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호국의 얼 함을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하는 등의 순서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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