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가 되어 버린 어느 화가의 죽음
들개가 되어 버린 어느 화가의 죽음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11.22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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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의 장편소설 ‘들개’, 문명을 거부하는 현실도피적 두 남녀의 스토리

 

소설가 이외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나는 물들지 말아야 한다. 억울하다고는 생각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이 부질 없다. 지금까지 교과서에 배워온 것들을 모두 버리려고 한다. 모조리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음 그 자체이다. 나는 자연스럽고 싶다. 또는 자유스럽고 싶다. 세뇌 받는 진리는 결코 진리가 아니다. 교육은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고 싶다.”

이외수(李外秀, 1946~2022)의 장편소설 들개는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두 남녀가 다 쓰러져가는 교사(校舍)에서 1년 동안 살아가는 스토리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한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자유스럽고 싶다. 세뇌 받은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는 그의 생각이 소설 들개에 촉촉이 젖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주인공들이 파격적이고 그의 말대로 자유스럽다. 남녀 두 주인공의 이름은 끝까지 적시되지 않았다. 그냥 남자 아무개, 여자 아무개다. 남자 주인공은 서른살 초입으로 보인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정과 직장을 버렸는지, 직장에서 잘리고 가정에서 쫓겨나 그림을 그리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 남자는 일종의 버림받은 사람으로 세상의 변두리에서 여자 주인공을 만난다. 남자는 여자가 기숙하고 있는 버려진 학원건물로 기어 들어와 그림을 그린다. 들개 99마리를 그리는 것이 그의 목표다.

화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작은아버지가 이민을 간 후 혼자가 된다. 그녀가 우연하 그림쟁이를 만나고 자신이 머무는 폐건물에서 1년 동안 화가를 지켜보게 된다.

 

아프리카 들개 /위키피디아
아프리카 들개 /위키피디아

 

주제가 들개. 개는 야생의 짐승을 인간이 집에서 기르면서 온순한 가축으로 변신했다. 소설에서는 가축이었던 개가 들개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남자는 들개가 되려고 한다. 도축 직전의 개를 끌고와 굶기고 마당에 내놓아 야성을 키워 들개를 만든다.

남자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고, 들개는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에 방치된, 야성의 생물체가 되어야 했다. 남자는 한때 세상과 타협해 청량음료회사에 취직해 선전일을 하고,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그는 그 모든 것에서 버림을 받고 외로운 상태가 된다. 그는 완전한 고독의 상태, 문명과의 타협을 거부한 야성의 존재를 원했고, 그렇게 되려 했다.

그는 들개를 그린다. 그가 그리려는 들개는 사육되지 않은, 야성을 가진 가축이다. 남자는 그림을 그리면서 고통스러워 한다. 자신이 그리려는 들개가 그려지지 않는다.

여자는 그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을 자신의 희망으로 삼는다. 그녀는 그림이 그려지도록 남자에게 개를 구해 준다. 개를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여자는 어느 기업인에게 몸을 준다. 남자는 여자가 구해온 개와 교감하며 혼신의 힘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는 그림을 완성한 후 자신의 목숨을 거둔다. 화가는 끝까지 순수의 세계를 고집하며 소원을 이뤄냈다. 종말은 죽음이었다.

주인공을 살려두면 소설이 재미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소설가의 잔인함과 모순이 나온다. 작가는 주인공을 죽임으로써 극적 효과를 노렸다. 덕분에 책의 판매부수가 늘어났고, 인세도 불어났을 것이다.

이외수는 여자를 배신했다. 남성인 화가의 순수는 지켜주었지만, 여자는 남자의 업적달성(그림완성)을 위해 몸을 팔고, 남에게 돈을 구걸하도록 했다. 한 사람의 순수를 위해 다른 사람의 타협을 요구하는 모순을 저지른 것이다.

 

들개는 진공상태에서 살수는 없다. 이외수의 들개가 출간된 시점은 1981년이다. 전국적으로 민주항쟁이 일어나고, 그 요구를 억누른 군사정권의 폭압이 진행되던 시절에 37살의 젊은 작가는 탐미주의 또는 유미주의라는 이상한 풍조에 빠져 있었다. 일본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한창인 1937년에 기생에 빠져 있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소설 설국(雪國)’에 담았다. 그런 소설이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심미주의는 결국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다.

소설 들개는 출간 당시 70만 부가 판매돼 작가 이외수를 스타로 만들었다. 엄혹한 시절에 젊은이들이 제도와 문명에서 벗어나 들개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주인공 화가와 들개를 황야로 몰아내 굶주리게 했지만, 그 작품으로 성공한 작가가 되는 아이러니를 실현했다.

 

이외수의 ‘들개’ 표지 /동문선
이외수의 ‘들개’ 표지 /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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