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 다이어리에 적힌 왜란의 기록
류성룡 다이어리에 적힌 왜란의 기록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2.11.2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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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 후 일상의 메모 담겨…이순신 전사 상황, 강항 귀국 사실도 기록

 

류성룡은 임진왜란이 끝남과 동시에 선조에게 미운털이 박혀 물러났지만, 7년 전쟁에서 패한 일본인들은 전쟁을 진두지휘한 류성룡에 대해 스토킹 수준으로 연구했다.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징비록은 전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였다. 일본은 조선의 명장 이순신을 영웅으로 받들고, 재상 류성룡의 지혜를 배웠다. 이번에 류성룡에 관한 자료가 일본에서 환수되었다.

 

왼쪽 사진은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경자' 표지. 충무공 이순신의 전사 정황에 대한 내용이 쓰여 있다. 오른쪽 사진은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경자' 권수제면(본문 첫 장으로, 책 제목이 쓰여진 곳) /문화재청
왼쪽 사진은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경자' 표지. 충무공 이순신의 전사 정황에 대한 내용이 쓰여 있다. 오른쪽 사진은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경자' 권수제면(본문 첫 장으로, 책 제목이 쓰여진 곳)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일본에서 보관되던 류성용 선생의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를 환수했다. 대통력은 오늘날의 다이어리에 해당하는 조선시대의 책력(冊曆, 달력)으로 농사 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지침으로 활용되어 왔다. 소장자는 책력에 자신의 일정이나 감상을 적어두는 게 관습이었다.

이번에 환수한 유물은 왜란이 끝난 후 경자년(1600)의 대통력이다. 이번 유물도 그 여백에 묵서(墨書, 먹물 글씨)와 주서(朱書, 붉은 글씨)로 그날의 날씨, 일정, 약속, 병세와 처방 등이 기록되어 있다. 기재된 필적과 주로 언급되는 인물, 사건 등의 정보를 바탕으로 서애 류성룡의 문집인 서애집중 류성룡의 연대기가 기록된 서애선생연보(西厓先生年譜)와 내용을 대조해 본 결과, 서애 류성룡의 손때 묻은 수택본(手澤本)으로 추정된다.

다이어리에는 임진왜란 시 포로가 되어 일본에 압송되었던 강항(姜杭, 1567~1618)의 귀국 등 경자년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이 적혀 있다. 표지에는 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이 부하 장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출전하여 전쟁을 독려하다가 탄환을 맞고 전사한 상황을 묘사한 기록도 담겨 있다.

 

좌측면은 연신방위지도(年神方位之圖, 한 해 동안 각 방위의 길흉을 점치는 데 참고하는 그림), 우측면은 경자년의 24절기 일시를 표기한 부분. /뮨화재청
좌측면은 연신방위지도(年神方位之圖, 한 해 동안 각 방위의 길흉을 점치는 데 참고하는 그림), 우측면은 경자년의 24절기 일시를 표기한 부분. /뮨화재청

 

이 대통력은 국난을 당해 군사 전략가로서 활약한 서애 류성룡 선생의 기록이자 서애선생연보에서 다뤄지지 않은 내용을 포함한 기록이며, 국내 현전하지 않는 경자년(1600) 대통력이다. 유물은 김문경 교토대학 명예교수의 제보를 통해 존재가 알려졌으며,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면밀한 조사를 거쳐 지난 9월 국내로 들여왔다.

 

왼쪽 사진은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경자’ 6월(부분). 일본의 포로였던 강항의 귀국과 관련된 내용이 6월 5일자에 기록되어 있다. 오른쪽 사진은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경자’ 7월(부분). 7월 4일 의인왕후의 승하 소식에 옥연정사(玉淵精舍)에서 거애(擧哀)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문화재청
왼쪽 사진은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경자’ 6월(부분). 일본의 포로였던 강항의 귀국과 관련된 내용이 6월 5일자에 기록되어 있다. 오른쪽 사진은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경자’ 7월(부분). 7월 4일 의인왕후의 승하 소식에 옥연정사(玉淵精舍)에서 거애(擧哀)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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