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보다 먼저 서양식으로 지은 약현성당
명동성당보다 먼저 서양식으로 지은 약현성당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12.02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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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성당이 갖는 역사성…1892년 준공, 서소문 처형장 굽어보는 곳에 위치

 

서울 중구 중림동에 있는 약현성당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정면에 남대문이 내려다 보인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조선말 신유박해(1801)에서 병인박해(1866)까지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당한 서소문 역사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에 냇물이 흐른다. 지금은 복개되어 있지만 도로 밑에는 인왕산 서쪽에서 발원한 만초천(蔓草川)이 흘러 삼각지 근처에서 남산 서쪽에서 발원한 냇물과 만나 용산으로 빠진다.

약현성당(藥峴聖堂)의 자리엔 이름 그대로 약초를 재배하던 밭이 많았다고 한다. 그 고개(藥田峴)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 들어섰다.

 

약현성당 /박차영
약현성당 /박차영

 

7대 조선 대목구장 블랑 주교는 1887년 남대문 밖 수렛골(중구 순화동)(에 집 한 채를 사들여 교리 강습소로 이용했다. 이곳이 공소(公所)로 발전하고, 교세가 확장되면서 제8대 조선 대목구장 위텔 주교의 승인을 얻어 약현 언덕에 성당 건설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건축 기술과 재정이 부족해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을 절충해 간소하게 건축했다. 1891년에 정초식을 하고 1892년에 완공했다. 이 성당은 명동성당보다 앞서 완공되어 조선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란 꼬리표가 붙게 되었다.

처음에는 남대문 밖에 있다고 해서 문밖성당이라고도 했고, 성 요셉 성당이라고도 불렀다. 몇십년전만 해도 천주교인들이 피를 흘리던 처형장을 굽어보며 붉은 벽돌의 성당이 솟아나게 된 것이다.

 

약현성당 /박차영
약현성당 /박차영

 

프랑스인 신부 코스트(E. G. Coste) 가 설계·감독했다. 길이 약 32m, 너비 12m의 십자형 평면 구조이며 비교적 소규모의 성당이다. 옆면 창은 처마 높이가 낮아 뾰족아치가 아닌 원형아치로 되어 있으나, 앞면의 출입구와 옆면 좌우로 돌출한 출입구 창 부분이 각기 뾰족아치를 이루어 고딕 모양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축이라는 점과, 순수한 고딕양식은 아니지만 벽돌로 된 고딕성당으로 후세의 한국 교회건축의 모범이 되었다. 서소문 밖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 있다는 장소의 역사성으로 한국 천주교회사와 건축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8963월 조선에서 최초로 사제 서품식이 이 성당에서 열렸다. 종탑은 본채가 준공된 지 13년 뒤인 1905년에 세워졌고, 1921년에 내부 개조공사를 하여 남녀 간의 칸막이를 철거했다. 1977년 사적 252호로 지정되었다.

 

약현성당에서 내려다 본 남대문 /박차영
약현성당에서 내려다 본 남대문 /박차영
약현성당 내 기도동산 /박차영
약현성당 내 기도동산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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