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종족과 언어, 문화에서 하나의 권역에 포함된다. 역사도 공유한다. 고대 동남아 해상제국이었던 스리비자야(Srivijaya, 671~1288) 왕국은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반도를 포괄했다. 서양세력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 지역은 중국과 페르시아-아랍을 연결하는 바다의 길목이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순차적으로 이곳을 넘보았고, 20세기 중반에 영국령과 네덜란드령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로 갈라지게 된 것이다.

동남아 지역에서 유럽 열강이 가장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였던 곳이 말라카(Malacca)다. 말라카는 말레이 반도 서남부에 위치하며, 말라카 해협을 건너면 인도네시아다. 말라카 해협은 길이 800km, 폭 65~250km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물동량이 지나고 있는 해상항로다. 이곳을 지나는 물량이 전세계의 20~25%에 이른다.

말라카는 태평양과 인도양을 가르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로 근대 이전부터 해상교역로로 각광을 받았다. 또한 말라카는 세계의 패권을 노리는 국가의 침략 대상이었다. ▲중국의 명나라(1405~1511), ▲포르투갈(1511~1641), ▲네덜란드(1641~1824), ▲영국(1824~1942, 1945~1957), ▲일본(1942~1945)이 순차적으로 말라카를 지배했다. 따라서 말라카의 역사는 동남아시아 패권의 역사이기도 하다.

현재 말라카는 말레이시아의 한 주로 편제되어 있다. 말레이시아라는 국명도 말라카에서 파생했다. 그 뿌리는 14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라카는 1400년대 이전엔 한적한 어촌이었다. 그곳에 말라카 술탄국(Malacca Sultanate)이라는 해상왕국을 세운 사람은 파라메스와라(Parameswara)였다.

파라메스와라(1344~1414)는 지금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있는 팔렘방의 군주였다. 그의 이름이 힌두어에서 파생한 점에서 그의 초기 왕국은 힌두교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1377년 인도네시아 자바섬을 통치하던 마자파힛(Majapahit) 왕국이 수마트라를 침공했다. 파라메스와라는 패배해 말레이반도 남단에 있는 테마섹(지금의 싱가포르)으로 건너가 그곳 지배자를 몰아내고 나라를 세웠다. 파라메스와라가 테마섹에서 차지한 나라는 싱가푸라(Singapura)라는 작은 왕국이 있었는데, 그 나라는 샴(Siam, 태국) 왕국의 속국이었다.

샴 왕국이 보복을 개시하자 파라메스와라는 새로운 곳을 물색했다. 싱가푸르를 떠나 말레이반도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던 도중에 마자파힛이 공격해 왔다. 그들은 무아르(Muar)에 정착을 시도했으나,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

그들이 찾은 곳은 지금의 말라카다. 어느날 파라메스와라가 사냥을 하다가 강가의 나무 그늘에서 쉬는데 데려온 사냥개가 쥐를 쫓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도망치던 쥐가 구석에 몰리자, 개에게 덤벼들었다. 오히려 개가 겁을 먹고 강물로 도망쳐 버렸다. 그는 개와 쥐의 싸움을 보고 거기서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이곳에서 머물라는 신의 계시로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이 영감을 얻은 곳의 나무 이름을 따서 나라이름을 말라카라고 했다. 말라카는 말레이 반도에서 자라는 나무이다.(현지인들은 믈라카(Melaka)라고 부르는데, 영어로 Malacca라고 표기한다.)

 

 

파라메스와라가 말라카에 정착한 때가 1400년경으로 추정된다. 말라카는 항구 조건이 좋았다. 강의 수량도 풍부했다. 파라메스와라 무리는 그곳에 항구를 건설했다. 그들은 말라카 해협의 해상종족들과 친교하며 세력을 형성했다. 문제는 그들이 샴 왕국이나 마자파힛에 대항할 역량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그때 중국이 말라카에 찾아왔다. 1403년에 중국 제독 인칭이 다녀갔고, 곧이어 1405년엔 정화가 함대를 이끌고 말라카에 도착했다.

정화(鄭和)는 명나라 영락제의 명을 받아 동남아를 원정하러 출항했다가 말라카에 들른 것이다. 파라메스와라는 정화 선단을 따듯하게 맞아 주었고, 정화는 황제의 이름으로 파라메스와라에게 말라카를 봉토로 주고 국왕으로 책봉했다. 이로써 말라카는 명 제국의 보호국이 된 것이다.

정화는 바다 멀리 도망갔다고 소문 난 건문제를 잡는다는 이유로 출정명령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영락제에 진상할 새 영토와 진귀한 보물을 찾고 있었다. 정화는 1433년까지 7차례 원정에 나섰다. 선단이 최대 3,500척, 인원은 3만명에 달했는데, 그 규모가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것은 분명하다. 정화 함대는 말라카를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중간기지로 활용했고, 말라카는 중국의 보호 속에서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 섬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무역 대국으로 성장했다.

당시 정화를 수행한 명의 통역관 마환(馬歡)이 말라카를 본 기록이 남아 있다.

“말라카(滿剌加)에는 네 개의 대문과 망루가 있었고, 그것들은 목책으로 둘러 싸여 있다. 외성 안에 내성이 있는데, 내성은 요새처럼 구축되어 있다. 성 내에는 상가와 창고가 즐비했고, 보물 창고도 있었다. 말라카 강이 도시를 둘로 갈랐고, 남쪽 절반은 내성으로 요새화되어 있으며, 그곳에 지배자가 살고 있었다. 북쪽 절반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주거지였으며, 외국인 주거지도 있었다. 부두에는 외국배들이 접안해 다양한 화물을 하역했다.”

말라카는 명나라의 교역기지로 발전했고, 인도양의 인도, 페르시아, 아랍의 배와 중국의 배가 만나는 곳이었다. 말레이시아 역사학자 파라하나 슈하이미에 따르면, 말라카엔 84ㄷ개 언어가 사용되었고, 60개국 상품이 거래되었다. 오키나와의 류큐국 배도 왔다. 향신료가 중심 품목이었고, 금이 거래되었다.

 

 

파라메스와라는 1409년 이슬람 왕국인 수마트라 군주에게서 공주를 아내로 맞고, 자신도 힌두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정했다. 아울러 군주의 칭호도 페르시아 식의 '이스칸다르 샤‘(Iskandar Shah)로 바꾸었다. 이로써 말라카는 이슬람 국가로 전환되었다. 말라카의 건국자 파라메스와라는 1414년 사망하고, 그의 아들 메가트(Megat)가 왕위를 이어 받았다. 역사가들은 포르투갈에 점령되기 전까지를 말라카 술탄국(Malacca Sultanate)으로 정의한다.

 

 

말라카 술탄국은 명나라에 조공을 보내고 책봉의 형식을 취했다. 동양식으로는 조공국, 서양제국주의 개념으론 보호국이었다.

1431년 태국에 자리잡은 샴 왕국이 말라카를 공격했다. 말라카는 중국에 사신을 보내 태국의 침공사실을 보고했다. 명의 선덕제는 정화를 샴에 보내 “당신네 나라에 이르노니, 이웃 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라. 말라카는 우리의 조공국이다.”고 타일렀다고 한다.

6대 술탄 만수르 샤(재위, 1456~1477)는 명의 공주 항리포(漢麗寶)를 왕비로 맞았는데, 왕비는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항리포는 말라카로 올 때 500명의 시종을 데리고 왔으며, 그들은 현지에서 배우자를 만나 가족으로 꾸리며, 부키트 치나(Bukit Cina)라는 곳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했다. 중국인들은 그 언덕을 삼보산(三宝山)이라 했다.

1481년엔 베트남이 말라카를 침공했다. 이때도 샴은 명나라에 사절을 보내 베트남의 공격행위를 말려달라고 청원했다. 명 황제는 때마침 연경을 방문한 베트남 사신을 불러 말라카 침공을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명 황제는 아울러 말라카에 칙서를 보내 외적의 침공에 대비해 군대를 양성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말라카는 중국의 뒷배를 이용해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의 욕심을 저지했다. 하지만 밀려오는 서양 세력은 막지 못했다. 포르투갈이 스페인과 세계를 절반으로 나눈후(토르데시야스 조약) 탐험대를 보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았다. 바스쿠 다가마는 1498년 인도에 이르렀다. 포르투갈인은 곧이어 말라카의 중요성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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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자료>

Wikipedia, Malacca

Wikipedia, Malacca Sultanate

Wikipedia, Malacca City

15세기 동남아 무역왕국 말라카, 파라하나 슈하이미, 산지니,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