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②…포르투갈 지배 130년
말라카②…포르투갈 지배 130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2.12.17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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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섬에 무슬림 술탄국, 수차례 연합 공격…명나라도 포루투갈 억압

 

말라카 술탄국이 동남아시아의 해상무역을 장악하던 15세기말, 유럽의 항해자들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넘보았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쿠 다가마는 1498년 아프리카 남단을 거쳐 인도에 도착했고, 이후 포르투갈은 동아프리카 해안에 긴 띠를 이루며 거점을 형성했다. 15092월 포르투갈 함대는 인도양 디우에서 이집트의 맘루크 정권과 인도의 구자라트 술탄국의 연합함대를 격파하고 인도양의 패권을 장악했다. 이어 1510년에는 인도 고아(Goa)를 점령해 인도 교역의 본거지로 삼았다.

포르투갈인들은 인도에서 동방에 말라카라는 곳에 진기한 물자가 넘처난다는 소문을 들었다. 말라카에는 아라비아, 투르크, 아르메니아, 페르시아, 인도, 벵갈, 버마, (태국), 자바, 베트남, 루손(필리핀)과 중국, 멀리는 류큐(오키나와)와 일본의 상선이 드나들었다. 84개 언어가 통영되었고 이슬람, 힌두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를 가진 상인들이 드나들었다. 비단과 금, 향료는 물론 인도양과 태평양 연안의 온갖 물자가 거래되었다. 말라카엔 주거지만 1만채가 되었고, 10만명의 인구가 산다는 소문도 있었다.

 

포르투갈의 최대영토 /위키피디아
포르투갈의 최대영토 /위키피디아

 

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1세는 그 소문을 듣고 1509년 인도에 있던 디오고 로페스 데 세케이라(Diogo Lopes de Sequeira) 제독을 말라카로 보내 거점을 확보하라고 명령했다. 세케이라의 포르투갈 사절단이 말라카로 오자, 말라카의 지배자 술탄 마흐무드 샤(Mahmud Shah)는 처음엔 그와 일행을 잘 대우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절단과 말라카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빚어졌다. 말라카 궁정에는 고아에서 온 무슬림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고아를 점령한 포르투갈인들이 매우 위험한 존재라고 술탄에게 하소연했다. 고아와 말라카는 무슬림 국가로 종교적 연대가 있었고, 앞서 포르투갈의 기독교도들이 고아에서 무슬림에게 저지른 행태가 전해진 것이다. 마흐무드 샤는 포르투갈 사절단을 체포하라고 명령하고, 그중 일부를 죽여버렸다. 세케이라와 남은 부하들은 타고온 배를 타고 인도로 탈출해 버렸다.

포르투갈 국왕은 고아의 총독부에 말라카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1511년 고아 총독 아폰소 드 알부케르크(Afonso de Albuquerque)는 병력 1,200명을 17~18척의 함선에 태우고 말라카로 출항했다.

술탄 마흐무드는 적이 다시 올 것을 알고 병력을 소집하고, 주위 므슬림 국가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반도의 조호르, 파낭, 수마트라, 자바의 술탄들이 지원에 응했다. 그렇게 집결한 병력이 2만명을 넘었다. 병력수로는 말라키측이 20배 가까이 많았다. 하지만 무기는 빈약했다. 말라카측 포는 낙후했고, 소총병은 거의 없었다. 알부케르크가 후에 국왕에게 보고한 바에 따르면, 전투 준비가 된 적의 수는 4,000명을 헤아렸다. 코끼리도 20여마리 준비되었으나, 총포에 코끼리는 무력했다.

알부케르크는 공격에 앞서 말라카에 거점 요새를 지을 땅을 달라고 했다. 마흐무드는 거부했다. 그는 자신만만했다. 술탄은 군인의 수에 도취했다.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면서 상황을 달라졌다. 포르투갈 함대에서 쏘아대는 포탄에 술탄 군대는 여지 없이 무너졌다. 서양의 우수한 총과 포는 많은 수의 말레이인들도 해치울수 있었다. 71일에 교전이 시작되어 얼마 후에 술탄궁이 포위되고, 마흐무드는 이웃 나라인 조호르로 도주했다. 824일 알부케르크의 포르투갈군은 말라카를 함락했다.

포르투갈은 28명의 전사자를 내고 동남아시아에 조그마한 무역기지이자 크리스찬 성지를 구축했다. 동시에 말라카 술탄국은 110년만에 멸망하고, 인도네시아 빈탄섬에 망명정부를 수립했다.

 

포르투갈의 인도 2대 총독인 아폰소 데 알부케르케 /위키피디아
포르투갈의 인도 2대 총독인 아폰소 데 알부케르케 /위키피디아

 

기독교에 충실했던 포르투갈인들은 말라카에 자신들의 종교를 전교하려 했지만 무슬림들이 완강하게 거부했다. 게다가 술탄의 망명정부가 수시로 본토를 되찾기 위해 공격을 시도했다. 주위의 술탄들이 동맹이 되어 점처럼 박혀 있는 기독교 요새를 뽑아버리려 했다.

마흐무드가 쫓겨난 직후, 자바섬의 데마크 술탄국이 병력을 이끌고 말레이 반도의 술탄들과 함께 말라카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1521년에도 데마크 술탄국이 다시 연합병력을 이끌고 공격을 했지만 포르투갈군의 방어망을 뚫지 못했고, 1526년에도 무슬림 군대가 습격했지만 무위로 끝났다.

1550년의 반격은 규모가 컸다. 자바섬의 제파라국이 4,000명의 군대와 40척의 전함을 보내고 조호르를 비롯해 반도의 술탄국들이 연합홰 포르투갈 요새를 공격해 거의 함락 직전까지 갔으나 끝내는 이기지 못했다. 1567년과 1574년엔 수마트라의 아체가 중심이 되어 말라카를 공격했지만 포르투갈은 방어해 냈다.

포르투갈은 주변의 무슬림들의 끊임 없는 반격을 받으면서 말라카 현지인들의 이반을 막기 위해 그들의 문화를 존종해 주었다. 포르투갈인들은 정복에는 성공했으나 카톨릭화에는 실패한 것이다. 행정어도 말레이어를 사용했다.

 

포르투갈 요새의 산티아고 대문 유적 /위키피디아
포르투갈 요새의 산티아고 대문 유적 /위키피디아

 

명나라는 조공국이던 말라카가 정복당하자, 포르투갈에 대해 강경하게 보복조치를 시행했다. 빈탄으로 망명한 술탄 마흐무드는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포르투갈의 침략 사실을 보고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명은 조공국을 멸망시킨 포르투갈에 대한 보복으로 포르투갈 사신단과 상단을 억류하고 함대를 편성하여 포르투갈을 몰아내려고 했다. 명나라는 1521, 1522년 두차례 걸쳐 홍콩 일대에서 포르투갈 선단을 격파하고, 그 기세를 몰아 말라카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일본 전국시대를 틈타 중국 해변을 약탈하는 왜구가 더 큰 근심거리여다. 포르투갈은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중국 이권을 보장하면 왜구와 해적을 소탕하는데 일조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마카오 무역을 허가받는 조건에 합의를 이끌어 냈다.

 

말라카 시의 구조도(1604) /위키피디아
말라카 시의 구조도(1604) /위키피디아

 

포르투갈은 말라카에 요새를 건설했다. 말라카에 인접한 조호르 술탄국은 16세기 후반에 포르투갈과 타협해 포르투갈이 더 이상 세력을 확장하지 않고 인근 해적 소탕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포르투갈 기지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포르투갈은 말라카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향료 시장 개척에 나섰다. 인도에 있던 알부케르크 총독은 인도네시아 반다 열도(Banda Islands)에 향료가 생산된다는 소식을 듣고 부하들을 파견해 그곳을 찾으라고 했다. 그의 부하 중에 프란시스코 세랑(Francisco Serrão)이란 선장이 있었다. 그는 1512년 인도네시아 섬을 돌아다니다가 난파했다. 그곳에서 그는 향료가 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섬이 몰루카 열도(Moluccas islands)였다. 포르투갈은 마침내 인도네시아에서 향료 섬을 찾아냈다.

향료는 엄청난 이익을 남겼다. 후추 1킨탈을 12 두카트에 사서 4 두카트의 비용으로 운반해 유럽에서 32 두카트에 팔았다. 포르투갈 왕실은 향료 무역에서 두배나 많은 이문을 남겼다. 정향, 육두구가 몰루카 열도 암본(Ambon)에서 생산되고 거래된다는 세량의 보고에 포르투갈은 1513년 암본에 요새를 건설하고 병력을 주둔시켰다.

포르투갈 함대는 향료를 찾아 암본 이외에도 인도네시아와 태평양 일대를 뒤지고 다녔다. 그들은 태국()에 외교사절을 보내고 뉴기니, 중국 해역까지 돌아다녔다. 그렇게 아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던 포르투갈인은 조선 땅에도 왔다.

우리나라의 땅을 최초로 밟은 서양인은 1604615, 통영 해안에 표류했던 포르투갈 상인 주앙 멘데스다. 중국, 일본, 그리고 아프리카 선원들과 함께 조선 수군에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된 멘데스 일행은 관리들의 심문을 받고 중국으로 추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6세기 세계 해양의 패권을 쥐었던 포르투갈은 1580년 스페인과 통합하게 된다. 동군연합(同君聯合) 형태의 스페인-포르투갈 합병국은 1640년까지 어어진다. 그 틈을 타고 네덜란드가 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해 말라카를 넘보았다.

 


<참고한 자료>

Wikipeida, Portuguese Malacca

Wikipeida, Capture of Malacca (1511)

Wikipeida, Malacca Sultan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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