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③…향료무역 거점으로 활용한 네덜란드
말라카③…향료무역 거점으로 활용한 네덜란드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2.12.1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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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완강한 저항 꺾고 183년간 지배…무역항으로서 기능 쇠퇴

 

네덜란드가 말라카를 넘본 것은 향료무역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독립전쟁 기간(568~1648)에 네덜란드 상인들은 합스부르크 상권에 대항했다. 푸거, 벨저의 독일계 가문,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금융가문들이 포르투갈의 동아시아 향료무역을 지원하고 있었다. 1580년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포르투갈 국왕을 겸하면서 포르투갈이 네덜란드의 적이 되었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포르투갈의 아시아 식민지에 눈독을 들였다. 동양에서 오는 후추가 수요를 대지 못해 가격이 급등했고, 향료의 원산지가 동남아시아였다. 그들의 적인 합스부르크의 약한 고리를 끊는다는 전략적 목적도 있었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탐험대를 꾸려 동아시아에 보냈다. 1591, 1595, 1598년에 네덜란드 항해자들은 인도네시아 해역을 돌아다니며 포르투갈이 구축한 향료 산지들을 건드렸다. 스페인은 옛 포르투갈 식민지에 관심이 없었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보다 조직적으로 아시아 바다를 개척하기 위해 1602년 동인도회사(VOC)를 설립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병력을 확보하고, 총포로 무장했으며, 1600년에 설립한 영국의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와 경쟁했다. 네덜란드 회사는 독립운동의 차원에서 포르투갈의 아시아 식민지를 공격하고, 탈취했다. 약탈, 즉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은 가장 이문이 많이 남고, 손쉬운 사업이었고, 그런 사업 행태가 국가에 의해 보장되고 허용되던 시절이었다.

 

1606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말라카 포격전 /위키피디아
1606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말라카 포격전 /위키피디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말라카를 공격한 것은 인도네시아에서 수집한 향료를 안전하게 유럽에 수송하기 위해서였다. 포르투갈이 길목을 막고 있었다.

말라카에 대한 첫 공격은 1606년에 전개되었다. 공격에 앞서 동인도회사는 말레이반도 남단의 조호르(Johor) 술탄국과 협정을 맺었다. 네덜란드는 말라카 이외의 영토를 넘보지 않을 것이며, 기독교와 무슬림이 공존할 것을 약속했다. 포르투갈의 종교는 카톨릭, 네덜란드는 신교였다. 조호르는 무슬림에 적대적인 포르투갈을 내쫓기 위해 네덜란드에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1606816일 동인도회사 소속 함선 11척이 말라카의 포르투갈 요새를 포위하고 함포사격을 실시했다. 포르투갈군도 맞대응했지만 적의 포화가 훨씬 우세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함대에는 뭍에 상륙할 병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지상전에 군대를 투입하기로 했던 조호르는 네덜란드를 믿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네덜란드의 회사군은 3일만에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포르투갈은 500명의 사상자를 내며 말라카를 지켜냈다. 네덜란드는 요새를 함락하는데 실패했지만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 자바섬의 술탄국들에게 포르투갈을 상대할 무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현지 부족국가들의 지원을 얻는 계기를 마련했다.

 

1665년 네덜란드령 말라카 /위키피디아
1665년 네덜란드령 말라카 /위키피디아

 

네덜란드는 일단 말라카를 건너뛰고 인도네시아 섬들을 개척했다. 네덜란드 주식회사는 1610년 첫 동인도회사 총독을 보냈고, 1611년 자바섬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를 건설하고 식민지 수도로 삼았다. 1619년 네덜란드와 영국은 아시아에서 향료전쟁을 중단하기로 조약을 체결했다. 영국은 인도에 집중하고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차지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후추가격이 고공행진하자 영국 상인들은 인도네시아 섬들을 넘보았다. 1623년 네덜란드는 향료산지의 중심인 몰루카 열도의 암본섬(Ambon Island) 일대를 어슬렁거리는 영국인, 일본인, 포르투갈인 20여명을 붙잡아 일방적으로 참수했다. 영국은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해군력은 영국 동인도회사의 그것보다 한수 위였다.

 

1780년 말라카 요새와 시내 /위키피디아
1780년 말라카 요새와 시내 /위키피디아

 

1606년 공격 이후에도 네덜란드의 말라카 접수 시도는 계속되었다. 1608, 1623~27년에도 공격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네덜란드 회사가 본격적으로 말라카를 접수하기로 한 것은 1639년이다. 본국에서 2,000명의 병력을 차출받았다. 동인도 회사는 수마트라의 아체 술탄국, 말레이반도의 조호르 술탄국, 자바섬의 무슬림 부족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16405월 바타비아에 600명의 정예병을 차출해 대기시켰다. 조호르의 병력 500~600, 아체, 반단섬에서 차출한 부족군과 연합군을 형성해 8월에 말라카의 포르투갈 요새를 에워쌌다. 83일 양 진영에서 포격전을 전개했고, 곧이어 네덜란드측의 상륙이 시도되었다. 포르투갈의 저항은 완강했다. 말라카 요새는 난공불락이었다.

네덜란드는 장기전으로 나갔다. 네덜란드군은 바타비아로부터 해상보급을 받았고, 조호르와 아체의 지원을 받은데 비해 포르투갈 요새엔 물자 보급이 차단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포르투갈 측의 피로가 쌓여갔다. 말라카 성내는 극심한 가아에 시달렸다. 열대의 습한 기후로 양측에 전염병이 돌았다. 네덜란드 측에도 지휘관이 숨지고 교체되었다. 포르투갈 병사들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이듬해 114일 네덜란드 군이 요새로 진입했다.

포르투갈의 사령관은 병들어 있었고, 병사들은 무기력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포르투갈측은 마지막 공성전에서 7,000명을 잃었다고 주장했고, 네덜란드측은 1,000명을 잃었다고 했다. 그 숫자가 사망자만을 의미하는지, 부상자를 포함하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포르투갈군은 5개월간 포위된 상태에서 끝까지 말라카를 내주지 않으려고 저항했다는 사실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관할 영역 /위키피디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관할 영역 /위키피디아

 

말라카를 차지한 네덜란드는 이 도시를 동인도회사의 소유로 만들었다. 네덜란드 지배시기에 말라카는 과거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네덜란드 회사는 바타비아를 식민지 수도로 육성하고, 말라카는 선단의 경유지로만 활용했다. 네덜란드는 말라카와 바타비아, 몰루카를 연결하는 거대한 해상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네덜란드 본국이 프랑스에 합병되자, 1795~1815년 사이에 영국이 점령했다.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병합했으면 그 식민지도 프랑스의 것이 되어야 하는데, 영국이 가로챈 것이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후 1818년에 영국은 말라카를 네덜란드에 되돌려 주었으나, 곧이어 1825년 다시 빼앗아 버렸다. 네덜란드기 지배한 시기는 1641년부터 1825년까지 183년으로 말라카 역사에서 가장 길다. 하지만 이 기간에 말라카는 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쇠퇴하고 있었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Dutch Malacca

Wikipedia, Dutch East India Company

Wikipedia, Battle of Cape Rachado

Wikipedia, Battle of Malacca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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