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에 떨어진 소행성…퉁구스카 사건
시베리아에 떨어진 소행성…퉁구스카 사건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2.12.21 13: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08년 TNT 1,200만 톤급 폭발…유엔은 6월 30일을 ‘소행성의 날’로 지정

 

미국 항공우주국(NASA)1011일 우주선을 쏘아 올려 소행성의 궤도를 수정하는 실험(DART)에 성공했다. 빌 넬슨 NASA 국장은 브리핑에서 이번 성공은 행성 방어의 분수령이자 인류에게도 분수령의 순간이라고 말했고, 지구인들이 이 뉴스에 기뻐했다.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질 경우를 가정한 영화가 많이 나와 있다. 만일 소행성이 대도시에 떨어질 경우, 원자폭탄보다 더 큰 피해가 우려된다. 1908년 시베리아에 떨어진 소행성의 대폭발이 그럴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1929년 폭발지점의 사진 /위키피디아
1929년 폭발지점의 사진 /위키피디아

 

1908630일 해가 뜬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시베리아 바이칼호 주변에 살던 에벤키족은 태양 곁에 푸른색 불빛이 비치는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그 빛은 하늘을 가로지르더니 가늘고 긴 꼬리를 남겼다. 섬광은 구름을 일으키면서 붉은 불기둥을 이루며 날아갔다. 잠시후 불기둥은 둘로 갈라지더니, 사라져 버렸다. 10분쯤 지났을까, 대포가 터지는듯한 폭음이 저 멀리에서 들렸다.

나중에 밝혀지기를, 바이칼호 에벤키족이 들은 이 폭발음은 러시아 크로스노야르스크주의 퉁구스카(Tunguska)에서 발생했다. 퉁구사카는 바이칼호에서 수천km 떨어진 곳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시베리아 삼림지대다. 다행히 그 근처에 소행성이 떨어져 폭발한 것이다.

이 폭발음은 독일, 덴마크, 크로아티아, 영국에서도 들렸고, 멀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미국 워싱턴 DC에까지 전해졌다. 아마 구한말 우리나라에서도 들렸을 것이다.

 

퉁구스카의 위치 /위키피디아
퉁구스카의 위치 /위키피디아

 

당시는 제정러시아의 말기 혁명직전이었다. 모스크바 당국은 시비리아 무인지대에서 일어난 폭발사건을 조사할 겨를이 없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소련 정권이 들어선 이후 지질학자들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1921년 러시아 운석학자 레오니드 쿨리크(Leonid Kulik)가 중심이 되어 조사단이 꾸려졌고, 1927년 그들은 사건 현장으로 가서 진상 규명에 나섰다. 쿨리크는 퉁구스카 대폭발이 소행성의 낙하에 의한 것으로 예감하고 조사에 들어갔다.

대폭발이 일어난지 19년이 지났지만 퉁구스카 일대의 산림은 파괴되어 있었고, 인근 거주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채취할수 있었다. 다만 시간이 흐른 탓에 폭발 직후의 원모습이 상당해 변해 있었고, 결정적으로 폭발지점(그라운드제로)에서 소행성의 운석 조각을 찾아내는데 실패했다.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지만, 쿨리크의 조사단은 그간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소행성 폭발로 결론지었다. 그들의 결론에 따르면, 폭발시간은 1908630일 오전 717분경이며, 위치는 크라스노야르스크주의 예니세이강의 지류인 포트카멘나야퉁구스카강 유역으로 북위 60° 55, 동경 101° 57지점이다.

조사단은 운석이 대기권에서 폭발한 것으로 단정했다. 운석의 크기는 50~60m로 추정되며,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잘게 부서져 폭음과 함께 불타버렸다는 것이다. 운석의 최대 속도는 초속 27km로 마하 80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소행성의 운석이 폭발한 지점에는 5~10km의 구덩이가 생겼으며, 운석이 모두 불타버렸기 때문에 남은 운석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결론 내렸다.

폭발력은 다이나마이트(TNT) 1,200만톤에 해당하는 규모인데, 이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의 수천배라는 분석이다. 소행성 폭발로 시베리아 삼림지대(타이가) 2,150가 파괴되었고, 이는 서울면적의 3.5배에 해당한다. 죽은 나무만 8,000만 그루라는 계산이 나왔고, 1,500마리의 순록 시체가 발견되었다.

당시 목격자들은 "450km나 떨어진 곳에 있던 기차를 타고 있었음에도 심한 땅울림과 함께 돌풍이 몰아쳐서 열차가 전복되었다", "사건현장에서 15km 떨어진 곳에서 방목하던 가축 천오백마리가 타 죽었다"고 증언했다.

 

대폭발 19년 후인 1927년 퉁구스카의 산림 파괴 사진 /위키피디아
대폭발 19년 후인 1927년 퉁구스카의 산림 파괴 사진 /위키피디아

 

조사단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소행성 충돌의 결정적 증거인 운석 조각이 발견되지 않아 그동안 많은 의혹이 제기되었다. 블랙홀이 추락했다는 설, 외계인 소행이라는 설, UFO의 충돌설, 혜성 추락설 등이 나왔다.

연구자들은 마침내 2013년에 그라운드제로에서 취취한 샘플에서 외계에서 온 물질을 발견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을 계기로 그동안 난무했던 여러 가지 이설이 사그러들었다.

아직도 1908년 퉁구스카 대폭발사건은 미결과제를 남기고 있다.

일부에서는 운석이 대기권에서 완전 연소되지 않고 일부가 지상에 낙하, 충돌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폭발지점 근처에 체코호(Lake Cheko)가 그 증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체코호가 운석으로 인해서 생겼다는 증거가 제시되지 못해 이 견해는 여진히 논란중에 있다.

핵폭발과 소행성충돌의 경우에만 형성된다고 알려진 충격석영(Shocked quartz)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퉁구스카 사건(Tunguska event)은 역사가 기록된 이래 최대의 소행성 폭발사건이지만,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소행성 충돌사건이 지구 표면의 지층에서 발견되고 있다. 인류는 소행성과의 충돌 위협을 안고 살고 있는 것이다. 2016년 유엔은 소행성 충돌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퉁구스카 사건이 발생한 630일을 소행성의 날’(Asteroid day)로 지정했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Tunguska even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