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시베리아 분리주의 운동
꿈틀대는 시베리아 분리주의 운동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2.12.2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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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1920년 내전기에 시베리아 공화국 대두…볼셰비키에 의해 진압

 

시베리아는 러시아 영토 가운데 우랄 산맥 동쪽에 위치한 지역을 말한다. 면적은 131, 러시아 영토의 77%를 차지하며, 세계 2위 캐나다보다 30% 이상 더 넓다. 인구는 3,730만명으로 러시아 인구의 5분의1 수준이다.

시베리아는 지리적 개념, 역사적 개념이다. 다양한 기후가 분포하고 여러 인종이 사는 곳이어서 정치적으로 통합되지는 않았다. 다만 러시아 혁명기에 백군이 시베리아를 차지하는 동안에 시베리아 분리주의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시베리아 /위키피디아
시베리아 /위키피디아

 

시베리아 분리주의 또는 자치주의는 우랄 산맥을 한 가운데 두고 유럽 러시아와 아시아 러시아를 분리하자는 주장이다. 두 지역이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 역사적으로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므로, 시베리아를 독립시키거나 자치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견해다.

이 견해의 뿌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르쿠츠크 출신의 역사학자 아파나시 시차포프(Afanasiy Shchapov, 1830~1876)는 시베리아가 인종적, 종교적으로 유럽러시아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시베리아 민족주의의 토대를 형성했다. 이후 그리고리 포타닌(Grigory Potanin, 1835-1920), 니콜리아 야드린체이(Nikolay Yadrintsev, 1842-1894)와 같은 학자들이 시베리아의 독자성을 강조했다.

1865년에 일부 과격파들이 시베리아에 독립국을 세워 미합중국과 같은 연방국가를 만드는 음모를 하다 발각되었다. 이들은 시베리아로 쫓겨간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과 합세해 폭동을 일으킬 것을 시도했는데, 차르 정권은 이 음모에 연루된 혐의로 44명을 체포했다. 혁명가 미하일 바쿠닌(Mikhail Bakunin, 1814-1876)은 시베리아에 미국과 같은 민주국가를 수립해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19세기말~20세기초 사이에 포타닌, 야드린체이 등은 각종 매체에 시베리아 분리를 주장하는 글을 썼는데, 네용인즉 러시아 제국이 추구하고 있는 시베리아 식민화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베리아 공화국 기 /위키피디아
시베리아 공화국 기 /위키피디아

 

1917년 러시아에 혁명이 발발하면서 시베리아 독립운동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났다.

19175월 이르쿠츠크에서 분리주의자들이 처음으로 회동해 시베리아 독립에 관한 테제를 논의했다. 그해 8월 세레브레니코프(I.I. Serebrennikov)를 중심으로 분리주의자들이 평의회를 열어 시베리아 자치에 관한 규약을 승인했다. 그들은 시베리아 독립국의 국기도 제정했다. 눈을 상징하는 흰색과 침엽수림(타이가)를 상징하는 녹색으로 국기를 제정했다. 해를 넘겨 19181월 분리주의자들은 톰스크에서 비밀리에 의회(두마)를 열어 자치 시베리아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임시정부에는 사회혁명당, 분리주의자, 소수민족, 멘셰비키가 참여했다. 이들은 하부조직을 갖지 못했다. 곧이어 볼셰비키가 시베리아로 쳐들어오자, 그들은 체코군단을 따라 블라디보스톡으로 거점을 이동시켰다.

초기의 시베리아 분리주의자들이 극동러시아로 도망쳐버리자, 그들에 합류했던 볼로고드스키(P.V. Vologodsky)가 옴스크로 돌아와 19186월 별도의 시베리아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이들도 뿌리를 내리지 내리지 못했다. 옴스크의 임시정부도 시베리아의 주권을 선언하하기도 했다.

시베리아 분리주의자들은 블라디보스톡과 옴스크의 두 개 조직으로 분리되어 따로 움직이다가 19189월 볼셰비키에 반대하는 전러 임시정부(Provisional All-Russian Government)로 통합되었다. 이 조직은 러시아 내전기에 백군(White Army)으로 불리는 조직으로, 사회혁명당, 멘셰비키 등 좌파도 포함되었다. 시베리아 분리주의자들은 볼셰비키에 대항하기 위해 독자성을 포기한 것이다.

 

알렉산드르 콜차크가 백군의 사열을 받고 있다. /위키피디아
알렉산드르 콜차크가 백군의 사열을 받고 있다. /위키피디아

 

백군 정부는 그해 11월 전직 해군 제독 출신인 알렉산드르 콜차크(Alexander Kolchak)의 쿠데타로 붕괴되고, 콜차크의 지휘 아래 들어갔다. 콜차크는 영국 등 연합국의 지지를 받았으며, 시베리아의 중심도시 옴스크에 수도를 정해 볼셰비키의 붉은 정부와 대항했다. 하지만 그는 시베리아 원주민인 소수민족의 자치를 인정하지 않았고, 백군 내 좌파들의 존재를 거부했다. 콜차크는 서방의 꼭두각시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내부 통합에 실패했다.

콜차크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의해 배신을 당해 포로로 잡혔다가 사회혁명당에 넘겨진 다음 19202월 볼셰비키측에 의해 처형되었다. 이후 백군은 급속하게 무너졌고, 시베리아 독립의 꿈도 물거품이 되었다.

 

2014년 행위예술가 아르티옴 레스쿠토프(Artyom Loskutov)가 블로그에 러시아 연방공화국 내에 시베리아 자치공화국을 창설하는 내용을 올렸다. 그는 그해 817일 노보시비리스크에서 시베리아 자치를 실현하는 행위예술을 선보였다. 러시아 당국은 이들의 행진을 금지하고 언론 보도를 검열했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이 이뤄지던 시기였다. 레스쿠토프는 서시베리아는 러시아에 석유와 가스를 공급하지만 거기서 얻어지는 세수가 모두 모스크바로 돌아간다며 시베리아의 자치를 요구했다.

2020년 하바로프스크와 일부 시베리아 도시에서 러시아 중앙정부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이들은 러시아의 정책이 유럽에 치우쳐 시베리아를 천대한다고 주장했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Siberian regionalism

Wikipedia, Siberian Republic (1918)

Wikipedia, Siberian Republic

Jamestown Foundation, Siberian Regionalism a Growing Threat to Mosc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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