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함께 한 목재의 역사
인류와 함께 한 목재의 역사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01.0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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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 공급 부족에 철·석탄 대체 수요 확대…산업혁명 촉발

 

목재 무역은 고대부터 시작되었다. 구약성서에 이스라엘의 솔로몬왕은 두로의 왕 히람에게서 목재를 수입해 야훼의 성전을 건축했다. 두로(Tyre)는 지금 레바논 남부에 위치한 페니키아의 주요 항구도시였다.

구약성서에 백향목은 수십회 등장한다. 백향목은 레바논의 2,000m 이상 눈 덮힌 고지대에서 자라는 상록수다. 송진이 향기롭다고 해서 백향목(栢香木)이라고 했다. 송진에는 방부제와 방충제가 함유되어 있어 고대 로마에서는 종이에 백향목 송진을 발라 책에 좀이 쓰는 것을 막기도 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오랜 기간 썩지 않는 고급 목재로 사용되었다. 고지대에서 자랐기 때문에 목재가 단단하다. 솔로몬의 성전이나, 베네치아의 바다 밑 침목에 주로 레바논 삼나무가 사용되었다.

고대에 레바논 산맥엔 백향목이 풍부했고, 백향목을 비롯해 목재가 페니키아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전해오는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백향목이 등장한다.

백향목은 선박 건조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물에 잘 썩지 않고 충격을 잘 견디기 때문에 조선 재료로는 으뜸이다. 페니키아인들은 일찍부터 백향목으로 선박을 건조해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했다. 지금도 레바논 국기엔 백향목이 그려져 있다.

 

백향목 /위키피디아
백향목 /위키피디아

 

나무와 목재는 인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목재는 석기시대 이래 아주 중요한 건축소재였고, 도구이자 무기, 가구의 재료였다. 인간은 오랫동안 나무의 재질과 용도, 내구성 등을 면밀히 연구해 왔다. 나무는 귀중하게 다뤄졌고, 경제적 효용성이 중시되었다. 원목에서 판재는 세심하게 잘려 나갔고, 흠은 제거되거나 메워졌다.

인류는 석기(石器)에 앞서 목기(木器)를 사용했다. 인류 최초의 발전단계로 설명되는 석기 시대 이전에 목기 시대가 있었다. 목재는 자연에서 채취하기가 쉽고, 가공하기가 수월하며, 돌이나 금속에 비해 가볍다. 하지만 나무는 재질의 특성상 썩기 쉬워 고대인류가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희박했다.

이런 의문을 풀어준 단서가 독일에서 발견되었다. 1994~1999년 사이에 독일 니더작센주 쇠링겐(Schöningen) 갈탄광산에서 목재 무기가 발굴되었다. 목재 무기는 창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끝이 뾰족한 탄두형으로 잘 다듬어져 있었다. 고대의 사냥꾼들은 이 창을 효율적인 무기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고학자들은 쇠링겐 창의 연대를 4만년전 구석기시대로 추정한다. 구석기인들은 이 창으로 대형 맘모스를 잡았을 것이다. 쇠링겐 창은 현재까지 발견된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목재 도구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쇠링겐 발굴지에선 석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석기시대 이전에 목기시대가 있었음을 반증하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쇠링겐 창의 하나 /출처=위키피디아
쇠링겐 창의 하나 /출처=위키피디아

 

인간은 나무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석탄과 석유가 대중화되기 전에 주요 연료는 나무였다. 나무를 태워서 그 열로 조리를 하고 난방을 하고 철을 녹이고 그릇을 구웠다. 나무가 없었으면 인류는 겨울을 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무는 또 집을 짓는 주요 재료였다. 나무 껍질에서 옷을 만들었다. 선박을 만드는 주재료가 나무였다. 나무에서 물감을 얻었고, 화장품 원료를 채취했고, 약재를 구했다. 숲에서 제공하는 임산물은 먹을 것을 제공했고, 부식토는 비료로 사용되었다. , 그리고 나무는 인류 역사의 오랜 동반자였다.

인류 역사에 근현대사를 주도한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까지 목재는 건축과 도구, 기계, 공장, 운송수단, 저장시설, 신발, 가구의 기본 소재였다. 수천가지 목재 제품이 나왔다. 최초의 인쇄기는 나무로 만들어졌고, 직기도 나무 부속품로 조립되었다. 금속 기계가 나오기 이전의 기계 대부분이 거의 나무 제품이었다.

하지만 목재의 시대는 중세를 넘어가면서 정점을 이루고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데다 재질이 갖는 한계성이 높은 강도를 보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목재는 소재에서 금속과 콘크리트, 연료에서 석탄과 석유에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산업화 이전에 유럽에도 중세 이전엔 숲이 울창했다. 아우구스투스 시기에 로마군이 토이토부르거에서 전멸한 것은 독일의 숲이 가로막았기 때문이었고, 로빈 후드가 의적 활동을 한 것은 13세기 영국 숲이 대단히 울창했음을 반증한다. 인류는 오랜 기간 동안에 자연을 개척해왔고, 숲은 인간에 의해 변형되어 왔다. 농경지를 개간하면서 숲이 줄어들었고, 목초지 확대는 숲을 파괴했다. 그렇더라도 중세이전까지 인간과 숲은 비교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산림의 균형이 깨진 것은 유럽 인구가 증가하면서부터였다. 15세기에 페스트 펜데믹이 잠잠해진데다 작황도 비교적 순조로왔다. 인구증가는 새로운 위기를 초래했다. 숲을 가진 자와 새로운 진입자 사이에 투쟁이 벌어진 것이다.

 

원목 /출처=위키피디아
원목 /출처=위키피디아

 

영국에선 런던을 중심으로 한 동남부에서 이미 11세기말부터 숲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숲이 농경지화하면서 삼림의 황폐화가 구조적으로 나타났다. 늘어 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구릉이나 낮은 산지가 농지로 변해 갔고, 숲이 빠르게 사라졌다. 땔감 수요가 증가하면서 나무의 성장 속도가 목재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다.

숲과 농지는 회복기간이 다르다. 농토는 휴경을 하더라도 수확한 후 1~2년이면 회복이 가능한데 비해 임야는 일단 벌목되면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야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인구증가는 우선 급한대로 회복기간이 긴 산림을 벌목해 농지로 전환하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영국 뿐 아니라 중부 유럽도 숲의 황폐화 과정을 밟았다. 울창하던 독일의 숲은 인구 증가와 영주의 탐욕에 점점 농지로 변해갔다. 땔감 부족으로 뗏목을 이용해 나무를 먼 곳으로 운반하는 직업이 생겨났다. 대장간에서는 목재 부족으로 쉬어야 하는 곳이 있었다. 프랑스 왕실의 재무 장부에 땔감이 귀해지고 생활 필수품의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런 현상을 반영했다.

 

영국의 숲 비율 추이 /출처=위키피디아
영국의 숲 비율 추이 /출처=위키피디아

 

나무 부족은 국가의 개입을 초래했다. 이 시기에 유럽 각국에 봉권 영주의 권력이 약화되고 왕권이 강화되는 추세였다. 개인 간의 숲 분쟁에 국가 또는 왕실이 개입하면서 숲에 대한 국가 보호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1(재위 1558~1603) 시기에 영국 의회는 수목 벌채를 금지하는 법령을 통과시켰다. 법령은 강의 20km 이내에 있는 나무의 벌채를 금지했다. 코번트리라는 도시는 숲에서 목재를 가져다가 붙잡힌 사람은 다리에 평틀을 세워 공개하도록 규정했으며, 두 번 위반하는 사람은 시에서 추방되었다.

목재부족은 네덜란드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서유럽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영국과 네덜란드에 목재 무역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발트해와 스칸디나비아, 러시아엔 목재가 풍부했다. 재정 위기에 빠진 북유럽의 영주들은 나무를 팔아 번 돈으로 교회를 짓고 호화묘지를 만들고 성채를 지었다.

해양진출이 가속화하고 선박이 대형화하면서 조선용 자재의 수입이 늘어났다. 13~16세기에 베네치아, 16세기엔 네덜란드, 16~17세기엔 영국에서 조선산업이 발달했다. 조선소들은 외국에서 나무를 수입했다. 처음에는 강 주변에서 벌채를 해 뗏목으로 운반했다. 목재 수요가 확대되면서 벌목이 내륙 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철도가 놓이고 임도(林道)가 뚫리면서 유럽의 울창한 숲이 대단위로 잘려 나갔다.

 

16세기 이후 유럽에서 전쟁은 일상화되었다. 전쟁으로 숲은 황폐화되었고, 전쟁에 필요한 전함 건조와 무기 제조에 나무가 필요했다.

1톤의 철을 생산하는데 숯 1,000톤이 필요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금속의 용융점까지 온도를 올리는 연료는 목탄 밖에 없었다. 목탄을 조개탄처럼 만들어 바람을 불어 넣으면 열의 온도를 1,100°C까지 올릴수 있다. 구리는 의 용융점은 1,083°C여서 숯을 잘 가열하면 구리를 녹일수 있다. 철은 용융점이 1,539°C로 높다. 목탄()을 가열하면 철을 완전히 녹이지는 못한다. 말랑말랑해진 철을 두드리고 식히기를 반복해 강철을 만들어 냈다.

선박 건조에도 많은 목재가 소요되었다. 선박용 목재는 땔감용 나무보다 재질이 우수해야 했다. 영국이 해양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함대 건조용 목재를 조달하느라 산림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16세기 중반 이후 산림 면적이 국토의 30%에서 15%로 줄어들게 되었다.

민간 상선도 늘어나면서 영국에서 목재는 점점 귀해졌다. 영국은 당초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제조업을 육성하지 않을 방침을 세웠지만 목재 가공업과 조선소만은 동부 해안에서 허용했다. 1714~1763년 사이에 영국 해군의 신규 군함은 두배로 늘어났고, 여기에 들어간 목재 대부분은 아메리카 식민지의 울창한 숲에서 벌목된 것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뉴잉글랜드엔 목재가 풍부했다. 뉴햄프셔 피스카타쿼 강 주변엔 1655년경에 20여개의 제재소가 설립되어 운영되었다. 1705년엔 70개로 늘어났다. 다른 강 주변에도 제재소가 들어섰다. 뉴잉글랜드는 1771~1773년 사이에 제재목 18, 지붕널 14, 통널 13를 본국에 수출했다. 영국의 목재 부족이 아메리카 식민지의 산업화를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스위스 국립공원의 숲 /출처=위키피디아
스위스 국립공원의 숲 /출처=위키피디아

 

목재부족 현상이 심각해 지면서 1780년 이전까지 영국에선 철()을 국내에서 생산하기보다 수입하는 것이 더 쌌다. 영국은 부족한 철을 스웨덴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그 이유는 철을 녹이는데 연료로 사용하는 목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석탄을 이용한 제철기법이 개발되기 이전에 유럽에선 목재와 숯을 제련 연료로 사용했다.

이에 비해 유럽의 변방이었던 러시아와 스웨덴에서는 울창한 숲이 보존되어 있었고, 목재가 풍부했다. 게다가 러시아와 스웨덴에는 질 좋은 철광석이 지하에 풍부한 매장되어 있었다. 18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철의 수요가 급증했다. 영국은 국내산보다 더 싼 외국산 철을 수입하게 되었다. 목재 부족으로 제철용 숯의 가격이 비쌌기 때문이다.

목재가 부족해지면서 영국 가정에서는 석탄을 땔감으로 사용했다. 석탄에는 유황이 석여 있기 때문에 매케한 냄새가 났고, 연기는 빨래를 더럽혔다. 처음에는 빈민층에서 석탄을 썼고, 부자들은 목재와 숯을 사용했다. 하지만 목재 부족이 심해지면서 17세기엔 부유층도 석탄을 써야 했다. 영국을 방문한 유럽 사람들이 석탄을 사용하는 빈민층의 지저분한 모습을 거지처럼 여겼다고 한다.

 

제련에 사용되는 엄청난 양의 목재는 제련업자들에게 많은 부담을 유발했다. 이런 가운데 석탄층이 인접한 곳에 있던 제철업자들이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용융점이 낮은 납 제련에 석탄을 사용했다. 영국 브리스톨 근처의 납 제련소에서 목탄 대신에 석탄과 이탄, 토탄을 혼합해 밀폐된 용광로에 납을 융해하고 정련하는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1678년에 특허권을 출원하면서 그 배경으로 목재 가격의 상승과 부족을 피할수 있다는 사실에 석탄의 이점이 있다고 밝혔다.

이후 영국은 석탄을 이용한 제철, 제강법을 개발해 나갔고, 마침내 1856년 헨리 베세머에 의해 강철 제조법이 개발되었다. 석탄을 활용하면서 영국의 제철산업은 급속하게 팽창하고, 산업혁명을 가속화했다

 

브라질 에탄올 공장 /출처=위키피디아
브라질 에탄올 공장 /출처=위키피디아

 

산업혁명 이후 목재는 소재에서는 철강과 콘크리트, 에너지에선 석탄과 석유에 밀려 났다. 그렇지만 목재는 여전히 인류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세기 이후 환경과 지구온난화 논의가 활발해 지면서 산림과 목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논의의 핵심은 목재의 합성과 에너지원으로의 활용이다.

20세기엔 다양한 종류의 합성 목재가 등장했다. 나무의 부산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섬유판(파이버보드)이 개발되었다.최근엔 다양한 종류의 목제 합성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숲과 나무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자는 개념이 바이오매스(biomass). 대자연은 쉼 없이 식물과 미생물의 에너지원을 만들어 낸다. 나무와 풀, 뿌리, 열매, 풀을 먹고 배출하는 가축의 분뇨, 음식물 쓰레기 등을 통털어 바이오매스다. 광합성으로 생긴 식물과 그 부산물을 에너지화로 보자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1년간 생산되는 바이오매스는 석유의 전체매장량에 맞먹는다는 추산이 나온다.

바이오매스 개념이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석유·석탄 등의 탄소에너지가 고갈 위기에 처하고, 이들 에너지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다. 바이오매스는 무한히 창출되고 석유·석탄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극히 적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바이오매스로 고안된 에너지로 바이오에탄올과 목재펠릿이 대표적이다.

나무는 미래에도 여전히 중요한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숲은 인간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휴양지를 제공한다. 숲은 지구온난화를 저지하는 마지막 보루로 보호되어야 한다. 목재는 여전히 아름다운 가구의 소재로 활용될 것이다. 보호와 이용이라는 이중의 기준이 숲과 거기서 생산되는 목재의 미래를 규정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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