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명필 한석봉이 맡았던 ‘사자관’이란 관직
조선의 명필 한석봉이 맡았던 ‘사자관’이란 관직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3.01.0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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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사자관청 기록물 입수·번역…사자관청 업무와 사자관 활동 드러나

 

조선시대에 사자관(寫字官)이란 벼슬이 있었다. ‘베낄 사’(), ‘글자 자’()를 써 글자를 베끼는 관리를 말한다. 외교문서나 왕실의 기록물은 글자를 또박또박 잘 써야 한다. 요즘엔 컴퓨터로 글자를 치면 될 터이지만, 조선시대엔 그렇질 못했다. 따라서 외교문서와 왕실 기록물을 정사하는 사자관청(寫字官廳)이 따로 있었고, 승문원(承文院)에 소속되어 있었다. 사자관청에 속해 있는 전문직 관리가 사자관이었다.

이긍익(1736~1806)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따르면, 문신 중에서 글씨를 잘 쓰는 자를 사자관을 삼았으나, 글씨를 잘 쓰는 자가 매우 적어 선조 때부터 사대부와 서인(庶人)을 막론하고 사자관으로 삼았다. 조선의 명필 한호(한석봉)이 사자관의 시작이라고 한다. 한석봉이 사자관으로 중국 사신단을 따라 가 중국인들이 줄을 서서 그의 글씨를 받았다는 얘기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사자관청등록 /문화재청
사자관청등록 /문화재청

 

그동안 사자관에 관한 사료가 적었다. 그러던 중에 2021년 국립고궁박물관이 사자관청등록’(寫字官廳謄錄)이란 기록물을 입수했다. 이 자료는 조선 말기인 1877~1881(고종 14~19) 사이 6년간 작성된 관청일지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자료는 그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던 사자관청의 직제·조직문화·글쓰기활동 등 다양한 모습을 날짜별로 생생하게 담고 있다.

 

사자관청등록 /문화재청
사자관청등록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이 최근 구한 사자관청등록을 번역해 공개했다. 내용은 총 671개 기사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사자관의 직제, 수련 과정, 임명과 평가, 징벌 사항 등 사자관의 운영과 관련된 내용, 외교문서 및 왕실 기록물의 작성 등 사자관의 활동과 관련된 내용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기사들에는 사자관의 생도방(生徒房) 입속(入屬)부터 사망까지 기록되어 있다. (생도방이란 조선 시대에 임관 전에 소속 관아의 업무를 익히던 사람들의 수련 공간을 말하며, 입속은 어떤 기관의 구성원으로 들어가 속하는 것을 말한다.)

이 자료는 개별 사자관에 대한 인물 정보뿐만 아니라, 다른 기술직 중인과 마찬가지로 대대로 관직을 이어나가며 친족으로 얽혀있던 사자관청의 조직 문화까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번역 내용은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 사이트에 공개될 예정이다.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한다.

 

자료=문화재청
자료=문화재청
자료=문화재청
자료=문화재청
자료=문화재청
자료=문화재청
자료=문화재청
자료=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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