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제국⑥…황후에게 정사를 맡긴 자한기르
무굴제국⑥…황후에게 정사를 맡긴 자한기르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01.0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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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아편, 사냥에 탐닉하다 아들들 반란…새 황후 누르자한이 실권자 부상

 

자한기르는 무굴제국 제4대 황제로, 1605~1627년 사이에 22년간 재위했다. 왕자 시절의 이름은 살림(Salim), 아버지 악바르 황제가 오래 재위하자 일찍부터 어버지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려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던 그가 36세의 나이에 황제에 올랐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제국은 전성기였다. 도전세력은 없었고, 물자가 풍부했다.

막상 권력을 잡고 보니, 모든 게 허무했다. 술과 아편, 사냥으로 세월을 보냈다. 복속한 소왕국과 결혼동맹을 체결하느라, 할렘엔 부인이 무려 30명이나 되었다.

무슬림 수니파였지만, 그는 인도인이었다. 인도인은 삶과 죽음이 연장되고, 현생의 삶은 전생의 업보를 짊어 지고 산다고 믿었다. 그는 재위 기간 내내 현생에 업보에 짖눌려 지냈다.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킨 업보는 아들들의 반란으로 나타났고, 자신과 아들의 갈등에 애태우다가 죽은 부인의 숙명은 아예 또다른 아내에게 권력을 맡기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는 슬픔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아편을 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술주정뱅이처럼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허무해서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셨다.

 

무굴제국 4대 황제 자한기르 /위키피디아
무굴제국 4대 황제 자한기르 /위키피디아

 

자한기르(Jahangir)란 말은 세계의 정복자라는 의미다. 그는 인도라는 세계를 정복했다. 카슈미르와 구자라트의 메와르 지역을 정복했다.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친 영국의 사절단이 항구를 내달라고 자한기르에게 사정사정했다. 황제는 시혜를 베풀듯 영국 동인도회사에 수라트(Surat)에 상관설치를 허용했다.

그러나 세상은 마냥 태평하지 않았다. 반란은 집안에서 시작되었다. 즉위한지 5개월째인 16064월 맏아들 쿠스라우(Khusrau)가 반란을 일으켰다. 자한기르는 스물다섯에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켰으나, 그의 아들은 열아홉에 덤벼들었다. 애비가 한 짓을 아들이 그대로 배운 셈이다. 물론 악바르가 아들의 버릇을 고쳐놓기 위해 손자 쿠스라우를 총애한 것이 원인이 되었을수도 있다.

아버지는 아들 쿠스라우의 군대를 제압했다. 쿠스라우는 펀잡의 라호르로 도주했다가 포로가 되어 자한기르에게 끌려왔다. 자한기르는 아버지 악바르가 자신에게 한 것처럼 아들을 용서하고 감옥에 가두었다. 공모자들은 모두 처형했다. 쿠스라우는 아버지의 자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년후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이번엔 아버지도 독하게 나왔다. 철사로 아들의 눈을 찌르게 했다. 쿠스라우의 눈은 불빛만 보일 정도로 반봉사가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불쌍해 궁궐 내에 돌아다니는 것을 허용했다.

 

반란을 일으키다 아버지 자한기르에게 포로로 잡힌 쿠스라우 /위키피디아
반란을 일으키다 아버지 자한기르에게 포로로 잡힌 쿠스라우 /위키피디아

 

자한기르는 아버지 악바르의 정책기조를 따랐다. 그는 정복지에 이슬람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다. 힌두 부인과 시녀들은 궁궐에서 자신의 종교를 이어갔다. 부인들은 거의 정략결혼으로 궁궐에 들어왔고, 대부분 힌두 라지푸트의 공주들이었다.

조강지처는 황제가 되기 직전 남편과 아들 쿠스라우 갈등에 자결했다. 첫 아내를 잃은후 자한기르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왕자 시절에 첫눈에 반한 여성이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 이주한 페르시아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권력을 동원하더라도 결혼한 여인을 뺏는 것은 이슬람 율법이 허용하지 않았다.

기회가 왔다. 여인의 남편이 전쟁터에서 사망한 것이다. 이때 자한기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 항간에는 황제가 그녀의 남편을 죽게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재위 6년차인 1611, 황제가 할머니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그 여인이 그 옆에 시중을 들고 있었다. 자한기르는 그 여인을 부인으로 맞았다. 그가 누르자한(Nur Jahan) 황후다.

 

누르자한은 아름다웠고, 영리했다. 야심도 있었고 무술도 뛰어났다. 그녀는 베일을 쓰고 사냥을 나갔다. 가뜩이나 세상사에 관심을 잃은 황제는 누르자한이 하자는대로 했다. 그러다가 어느 사이에 정무를 황후에게 모두 넘겨버렸다.

절대왕정의 무굴제국에 누르자한은 공동황제였다. 공식문서에도 자한기르와 누르자한이 공동 서명했다. 누르자한이 새겨진 주화, 옥새가 만들어졌고, 실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오히려 황제가 허수아비로 보일 정도였다. 그녀의 아버지 미르자 기야스 벡(Mirza Ghiyas Beg)은 재상이 되었고, 오빠 아사프 칸(Asaf Khan)도 여동생 덕분에 장군이 되었다.

누르자한은 황후의 자리도 모자라 자신의 세력을 키웠다. 누르자한에게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딸이 있었다. 라들리(Ladli) 공주였다. 누르자한은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켜 눈이 먼 쿠스라우에게 라들리 공주와 결혼할 것을 요청했다. 누르자한은 전 황후가 낳은 쿠스라우를 사위로 삼아 남편이 죽은 후에도 권력을 유지하려는 속셈이었다.

쿠스라우는 누르자한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에겐 이미 부인이 있었다. 망가진 몸을 수발해주는 조강지처를 버리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부인은 제발 자신과 이혼하고 라들리와 결혼할 것을 남편에게 간청했지만 쿠스라우는 거절했다. 그 길이 남편을 살리는 길이라고 본 것이다.

누르자한은 앙심을 품고 쿠스라우를 자한기르의 막내 아들 쿠람(Khurram)에게로 보냈다. 야심만만한 쿠람은 부하를 시켜 자신의 경쟁자를 죽여버렸다.

 

누르 자한 /위키피디아
누르 자한 /위키피디아

 

누르자한은 쿠슈라우에게서 거절당한 전남편 소생의 딸 라들리를 또다른 의붓아들인 샤르야르(Shahryar)와 결혼시켰다. 샤르야르는 후궁의 소생으로 누르자한의 딸을 받아들였다. 누르자한의 관심은 사위로 삼은 샤르야르에게 쏠렸다.

그것도 모자라 누르자한은 오빠 아사프의 딸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쿠람 왕자에게 시집보냈다. 쿠람 왕자가 나중에 샤 자한 황제가 되어 아내 뭄타즈 마할을 위해 지어준 무덤이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 타지마할이다.

 

술과 아편에 쩌든 자르기한 황제는 나이 오십줄에 들어선 1620년엔 거의 병상에서 살았다. 왕자의 난이 본격화되었다. 가장 야심이 많은 왕자는 쿠람이었고, 누르자한은 사위 샤르야르를 밀었다. 그런데 누르자한의 오빠 아사프는 사위인 쿠람의 편을 들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오누이가 사위를 후임 황제로 옹립하기 위해 치열하고 치사한 음모를 벌였다.

1622년 성급한 쿠람이 아버지의 퇴위를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쿠람을 진압한 장군이 아버지의 측근 마하바트 칸(Mahabat Khan)이었다.

마하바트 칸은 자한기르 황제의 오른팔과 같은 장군이었다. 그는 자한기르가 왕자일 때부터 무공을 세우고 쿠람 왕자가 일으킨 반란도 진압했다. 쿠람에게는 마하바트가 넘기 힘든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누르자한은 마하바트에게 너무 많은 힘이 실리는 것을 경계했다. 황제가 병석에 누워 있는 와중에 황후는 마하바트를 벵갈 총독으로 가라고 발령을 냈다. 벵갈은 수도에서 멀었다. 누르자한의 음모는 유사시, 즉 자한기르 황제가 죽었을 때 마하바트가 무력을 동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마하바트는 황후가 내린 발령을 거부했다. 누르자한은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마하트바를 법정에 세웠다. 그러자 마하트바가 황제가 요양하고 있는 라호르로 달려가 알현을 요청했다. 황제는 황후의 눈치를 보느라, 마하트바의 면담요청을 거절했다.

마하바트는 라호르에서 자한기르를 유폐하고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누르자한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라호르로 달려가 마하바트의 반란군을 격퇴했다. 마하바트 칸은 도주하면서 쿠람 왕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 동지가 된 것이다.

그사이에 자한기르 황제가 세상을 떠났다. 황제가 사망하자 샤르야르와 쿠람 두 진영이 세 대결이 전개되었다. 수도에 머물고 있던 샤르야르가 먼저 황제에 올랐다. 아사프 칸은 누이 누르자한을 천막에 가두고 샤르야르의 영향력을 제한시켰다. 그 사이에 쿠람이 수도로 올라와 황제가 되었다. 샤르야르의 형식적 재위 기간은 두달에 불과하며, 정식 황제로 보기 힘들다. 자한기르에 이어 무굴제국의 제5대 황제는 우리에게 타지마할의 주인으로 알려진 샤 자한이다. (누르자한은 오빠에게 감금되었다가 라호르에 유배되어 1645년에 68세로 사망했다.)

 


<참고한 자료>

Wikipedai, Jahangir

Wikipedai, Nur Jahan

Wikipedai, Khusrau Mirza

무굴황제, 이옥순, 2018, 틀을깨는생각

이야기 인도사, 김형준, 2020,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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