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해양탐험가 김한경③…삼봉도는 독도
15세기 해양탐험가 김한경③…삼봉도는 독도
  • 이효웅 해양탐험가
  • 승인 2023.01.1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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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도 찾지 못한 이유로 억울한 희생양…탁월한 해양모험과 해양개척 정신

 

[에서 계속] 17875, 맑은 날에도 프랑스 라페루즈 원정대주1)가 동해를 탐사할 때 울릉도를 발견했으나 일본으로 가면서 독도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독도는 위치를 알면 쉽게 찾을 수 있으나 작기 때문에 방향을 모르고는 찾기 어렵다. , 표류하다가 우연히 만나는 구사일생의 섬이다.

2017, 독도 주민 김성도주2)는 독도 주위에 표류하는 북한어선을 발견하여 어부들을 자기 집(어민숙소)으로 데리고 와서 독도경비대에 신고하였다. 식사하면서 여기에 살겠는가?”라고 물었더니, “고향에 처자식이 있어 가야겠다.”고 하였고,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원산이라고 하였다.주3) 북한 어부들은 동해해경에 인계되어 판문점을 통하여 북송되었다.주4) 다섯 명의 어부들은 고향에 가서 독도라는 이름을 모른다면 어디에 갔다 왔다고 하겠는가? 그리고 2018년 일본 홋가이도 TV에서 홋가이도에 표류한 북한어선이 155척이라고 방송하였다.주5) 이와 같이 북쪽 어민들이 울릉도를 다니다 큰바람을 만나 동해상에서 표류하여 독도에서 운 좋게 살아서 돌아간 사람들이 요도, 삼봉도라고 소문내었을 것이다.

 

(사진 4) 1475년 김한경 삼봉도 탐험 /촬영=이효웅
(사진 4) 1475년 김한경 삼봉도 탐험 /촬영=이효웅

 

김한경은 무릉도를 네 차례(1471, 1472, 1475, 1476) 항해하면서 세 차례는 말응대에서 항해하였고 한 차례는 울진포에서 따라갔다. 그중에서 두 차례는 표류하면서 한 차례는 독도까지 표류하였다. 김한경이 항해한 말응대항로는 개인이 개척할 수 없는 항로라고 본다. 항해 거리가 500km가 넘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37일간 항해하는 항로를 둘이서 간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다. 연구자는 말응대항로는 11세기 동여진주6)의 울릉도항로라고 보며, 예전부터 동해바다의 무릉도, 삼봉도, 요도 등의 소문이 영안도 어민들에게 인구회자 되었다고 본다. 김한경은 항해탐험가로 동료 김흥과 함께 탐험을 시작하여 무릉도와 삼봉도를 탐험하였고, 무릉도항로를 개척하였다. 1475년 김한경 일행 6명은 독도 삼봉도까지 표류하였다가 새로운 전설이 생겼다.

1479년 영안도에서는 왕명으로 대대적인 삼봉도 탐색대를 만들어 32명의 지원자를 모집하였는데 김한경도 지원하였고 전에 세 차례 갔다가 왔다.”고 하였다. 세척의 삼봉도 탐색대는 14805월 출항 직전에 장마와 풍수로 삼봉도 행차를 정지하였다.주7) 그리고 나라에서는 삼봉도를 찾지 못하자 1480년 영안도 관찰사 이극돈의 계책에 따라 김한경 일행 6명을 극형에 처하여 희생양으로 삼고, 삼봉도는 금령의 섬이 되었다.주8)

 

(사진 5) 2002년 이효웅 독도 탐험 /촬영=이효웅
(사진 5) 2002년 이효웅 독도 탐험 /촬영=이효웅

 

연구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조선 초기의 삼봉도는 독도라고 추정한다.

 

첫째, 1479년에 김국광은 임금에게 보고하기를 사적에는 삼봉도가 없다.”고 하여 무릉도(울릉도)를 삼봉도로 인식하지 않았다.

둘째, 독도는 주봉인 서도의 대한봉(168.5m)과 탕건봉(97.8m), 동도의 우산봉(98.6m) 세 개의 봉우리가 뚜렷하고, 울릉도에서 남동쪽으로 항해하면 독도는 <사진 1>과 같이 삼봉도로 보인다.

셋째, 14765월에 김한경 일행 6(임도치·임유재·김옥산·이오을망·김덕생)은 경흥 말응대진에서 출항하여 무릉도로 가려고 하였으나 강한 서풍에 밀려 무릉도 동쪽 7, 8(3.4km)까지 왔으나 표류하였다. 서풍과 해류로 동쪽으로 표류하다가 수평선에서 삼봉도를 발견하였다. 삼봉도(독도) 100m까지 왔으나 섬 사이의 갯바위에 7, 8(강치)의 이상한 사람들이 서 있어서 입도를 포기하고 독도를 한 바퀴 돌아 귀향하였다.

넷째, 조선 초기의 영안도에 소문난 삼봉도는 독도라고 추정하며, 독도 삼봉도를 찾지 못하자 무릉도가 삼봉도로 변했다.

 

연구자는 해양탐험가로 2002년 작은 보트를 만들어 단독으로 독도탐사에 성공하였다. 오늘날에는 GPS 등 최신 항해장비가 있고, 일기예보로 기상 상황을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요트항로는 코리안컵 국제요트대회로 후포에서 독도왕복 약 500km 정도인데, 500여 년 전 왕복 1,100km가 되는 울릉도로 항해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다. 김한경 일행 6명은 나라에서 삼봉도를 찾지 못하자 억울한 희생양이 되었다. 543년이 지난 즈음에 김한경 일행의 해양모험과 해양개척 정신을 기려 독도 삼봉도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 []

 


주1) 『라페루즈의 세계 일주 항해기』 Ⅰ, 국립해양박물관, 번역총서 1, 2016, 526.

주2) 김성도는 최종덕에 이어 독도 지키미로 살다가 20181021일 별세하였다.

주3) 오문수, 흉허물 없는 사람 있소?, 비지아이, 2021, 174.

주4) “북한 선박은 기관 고장으로 동해를 표류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5명의 북한 선원들은 모두 북측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기사, 2017.02.15.).

주5) 이효웅, 해류병 실험을 통해 본 이사부함대의 동해 항로, 이사부와 동해16, 한국이사부학회, 2020, 236.

주6) 고려와 일본을 약탈한 동여진 해적은 포로모타부(蒲盧毛朶部)의 여진 집단들이다. 포로모타부는 한반도 동북 해안지대와 두만강 중하류 유역,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 포시에트만 연안 지역에 거주했던 여진족들을 지칭한다. 출처 : 아틀라스뉴스(http://www.atlasnews.co.kr), 11세기 동해안 약탈한 동여진해적우산국 멸망.

주7) 『성종실록, 성종 11(1480) 530.

주8) 『성종실록125, 성종 12(1481) 19. “처음에 이 말을 한 김한경의 무리들이 말로 속이고 대중을 미혹(迷惑)하게 한 죄가 분명하니, 극형에 처하여 그 시체를 온 도()에 전하게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보인다면, 어리석은 백성들도 삼봉도가 기필코 없다는 것을 알고 서로 선동(煽動)하여 미혹됨이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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