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제국 멸망기③…눈 먼 황제
무굴제국 멸망기③…눈 먼 황제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01.1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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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타, 아프간, 영국에 밀려 델리 인근 소국으로 전락…권신들의 발호

 

1700년대 중반 이후 무굴제국의 영토는 델리 인근으로 축소되었다. 이 시기의 인도사에서 무굴제국은 주동적 위치에 있지 않았다. 인도대륙에는 힌두국가인 마라타 연맹과 이슬람국가인 아프가니스탄, 영국의 3파전이 전개되었다. 무굴은 제국이라 할수 없는 지위로 추락했고, 황제는 권신에 의해 허수아비처럼 지내야 했다. 나라가 쪼그라들면 권력투쟁도 격화되었다. 군주와 대신의 싸움에 마라타, 아프간, 영국이 개입했다. 중앙아시아에서 남하해 인도 평원을 휘어잡던 몽골의 기상은 사라지고, 힘센 자에 기대어 세력을 지키려는 비굴함만아 남게 되었다.

 

1750년의 인도 대륙 정세 /reddit
1750년의 인도 대륙 정세 /reddit

 

1748년 무하마드 샤가 사망하고 아들 아흐마드 샤 바하두르(Ahmad Shah Bahadur)가 즉위했다. 그는 놀기를 좋아했다. 하렘에서 후궁들에 빠지거나 며칠씩 사냥을 다녀왔고, 정무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라 일은 재상인 샤프다르 장(Safdar Jang)이 도맡아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두라니 왕조가 펀잡을 공격해 오자, 사프다르 장은 지레 겁을 먹고 평화조약을 체결해 펀잡과 카슈미르를 아프간에 떼주었다. 아프가니스탄이 계속 압박을 해오자, 적국인 마라타 동맹에서 군대 5만명을 데려와 견제하기도 했다. 이제 무굴은 서북쪽에선 아프가니스탄, 남동쪽에선 마라타의 공격을 받았다. 약소국이 된 무굴은 때론 이리 붙고. 때론 저리 붙으며 중간에서 몸부림쳐야 했다. 심지어 황제는 아들을 아프간 술탄에게 사위로 주어 달래기도 했다.

외적이 쳐들어와 나라가 어지러운 가운데 샤프다르의 세력이 커지자, 황제는 이마드 울 물크(Imad-ul-Mulk)를 끌어들여 제거해 버렸다. 늑대를 쫓아냈더니 이번엔 호랑이가 왔다. 이마드 울 물크는 황실 재신을 독식하고 횡포가 날로 심해졌다. 항제는 다시 샤프다르를 끌어들일 음모를 꾸몄다. 그러자 이마드 울 물크는 황제의 눈을 찔러 장님을 만들고 폐위시켜 버렸다. 재위 6년째인 1754년이었다. 아흐마드 샤 바하두르는 그후 20년을 더 살았다.

 

이마드 울 물크가 세운 황제는 파루크시야르에게 살해된 자한다르 샤의 아들 알람기르 2(Alamgir II)였다. 그는 폐위된 황제의 아들이란 이유로 40년간 감옥살이를 하다가 55세의 나이에 뜻하지도 않은 황제가 되었다. 그는 정치를 몰랐고, 이를 이용해 이마드 울 물크가 온갖 패악질을 했다. 이 독재자는 황제를 길들이기 위해 굶기기도 했다. 이마드는 힌두국가인 마라타와 손을 잡고 나라를 주물렀다.

이슬람의 무굴이 힌두세력을 끌어들이자 귀족들 사이에 불만이 쌓여갔다. 무굴의 이슬람 귀족들은 아프가니스탄에 지원을 요청했다. 두라니 왕조는 무굴을 침공할 좋은 핑계가 생겼다. 아프가니스탄은 델리를 침공해 이마드 세력을 쫓아냈다. 그러자 이마드 울 물크는 1760년 마라타군을 이끌고 델리를 쳐들어왔다.

이마드 울 물크는 황제가 아프가니스탄과 손잡을 것을 우려했다. 그는 황제를 죽이고 새 황제를 옹립할 음모를 꾸몄다. 이마드는 알람기르 2세에게 힌두교 성인이 알현을 요청한다고 속여 궁궐 밖으로 꾀어 냈고, 그 틈을 타 암살자가 황제를 살해했다. 알람기르 2세는 꼭두각시 노릇만 하다가 영문도 모른채 죽임을 당했다. 그의 재위기간은 5년반이었다.

 

이마드 울 물크는 알람기르 2세가 죽고 샤자한 3(Shah Jahan III)를 황제로 올렸다. 그는 아우랑제브의 막내아들 킴바크시의 손자였다. 마라타의 힌두세력은 샤자한을 세워 놓고 델리와 아그라를 약탈했다. 그들은 황실 소유의 모스크와 묘당을 파괴해 버렸다.

샤자한 3세는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났다.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나집 웃다울라 장군은 이마드 울 물크와 허수아비 황제 샤자한을 내쫓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델리를 공격했다. 배후에는 아프가니스탄이 있었다. 176010월 무슬림 귀족들은 죽은 알람기르 2세의 아들 샤 알람 2(Shah Alam II)를 황제로 올렸다. 알람 2세는 이마드의 괴롭힘을 피해 국외로 도피해 있다가 델리로 귀환했다. 그는 중간에 두달간 자리를 잃은 것을 제외하고 무려 46년 동안 재위했다. 이마드 울 물크는 그 틈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마드 울 물크가 쫓겨나고 무굴에 이슬람 세력들이 복권하자 마라타 군이 델리로 북진했고, 이에 무굴의 이슬람세력이 아프가니스탄에 도움을 요청했다. 1761114일 델리 북쪽 100km에 있는 파니파트에서 아프가니스탄과 마라타 동맹이 역사적인 전투를 벌였다. 회교와 힌두의 싸움이었다. 무굴은 두 세력의 싸움을 구경만 했다. 누구든 이기는 자에게 먹힐 판이었다.

파니파트 전투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승리했다. 패전한 마라타는 더 이상 북진을 하지 못하고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인도의 패권은 두라니 왕조에게로 넘어가야 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흐르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에 반란이 일어나 두리니의 군대가 급하게 회군했다. 그 틈을 타서 펀잡에는 시크 교도들이 세력을 확장, 델리 근처까지 약탈하고 돌아갔다. 영국은 플라시 전투(1757)에서 프랑스를 제압한 이후 인도 동부지역에서 영향력을 확장해 나갔다.

 

샤 알람 황제는 어려운 상황에서 나름 군대를 개혁하고 전력을 강화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이슬람과 힌두교도들 사이에 권력다툼이 심각하게 벌어졌다. 황제는 자신을 황제로 만들어준 나집 웃다울라를 중용했다. 그게 이번엔 황제의 목에 칼로 돌아왔다. 나집 웃다울라의 손자 굴람 카다르(Ghulam Kadir)가 자신을 재상이 되게 해달라고 황제를 겁박했다. 황제는 하는수 없이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굴람 카타르는 이마드 울 물크보다 더한 악당이었다. 굴람 카디르는 궁궐에 침입해 온갖 패악질을 저질렀다. 그는 샤 알람이 황제가 되게 한 은공을 돌려달라며 윽박질렀고, 궁전을 뒤져 25천만 루피에 달하는 보물들을 훔쳐갔다. 17888월 그는 황제의 눈을 찔러 장님으로 만들었다. 샤 알람 2세의 초상화를 보면 눈을 감은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는 황제를 부축하는 시종을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려 궁궐이 피로 흥건했다고 한다. 황녀들의 옷을 벗긴 뒤 능욕하고 나체로 춤을 추라고도 했다. 늙은 황제의 수염을 잡아 당겼다.

이 악당은 샤 알람 2세를 폐위하고 샤자한 4(Shah Jahan IV)를 새 꼭두각시 황제로 세웠다. 샤자한 4세는 이마드 울 물크에 의해 실각한 아흐마드 샤 바하두르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요새에 갇혀 있다가 느닷없이 불려와 황제 자리에 올랐다.

 

샤 알람 2세가 실각한지 두달이 지나, 힌두교도인 마하다지 신데가 군대를 이끌고 굴람 카디르를 죽이고 전 황제를 복위시켰다. 샤 알람 2세는 고마움을 표하고 그를 '무굴 제국의 보호자'라 불렀다. 마하다지 신데의 뒤에는 마라타 동맹이 있었는데, 무굴은 마라타 제국의 보호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2개월 짜리 황제 샤자한 4세는 다시 요새에 다시 갇혔다가 2년후에 살해되었다. 다시 황제가 된 샤 알람 2세는 장님으로 살았다.

 

영국 동인도회사 로버트 클라이브가 무글 황제 샤 알람 2세를 알현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영국 동인도회사 로버트 클라이브가 무글 황제 샤 알람 2세를 알현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1803년 샤 알람이 의지하던 마라타 연맹이 영국에 패망했다. 델리도 영국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무굴제국의 땅은 손바닥만큼 남았다. 그렇지만 영국은 황제를 정중하게 대우했다.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샤 알람에게 150만 루피의 연금을 주었다. 샤 알람은 아프가니스탄의 도움을 받아 황제가 되었고, 두 번째 재위기간에는 마라타의 보호를 받았고, 마라타가 붕괴한 후엔 영국의 품에 안겼다. 그는 180678세의 나이로 세상과 이별했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Ahmad Shah Bahadur

Wikipedia, Alamgir II

Wikipedia, Shah Jahan III

Wikipedia, Shah Alam II

Wikipedia, Mahmud Shah Bahadur

무굴황제, 이옥순, 2018, 틀을깨는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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