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왕 로베르 2세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
프랑스왕 로베르 2세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01.1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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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혼이란 이유로 교황이 베르타와 결혼 반대…국왕의 허약함 보여주는 사연

 

프랑스라는 나라의 형체가 막 생겨날 때 카페 왕조에 로베르 2(Robert II, 재위 996~1031)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명색이 국왕이지었만 자기 마음대로 아내를 구하지 못했다. 자유연애 하면 프랑스를 꼽지만 1천년 전엔 그러지 못했다.

당시 프랑스 국왕은 힘이 없었다. 국왕은 대귀족들이 선출했고, 그의 아버지 위그 카페가 국왕에 선출되어 카페 왕조를 열었다. 프랑스는 대영주가 페리고르, 앙주, 샹파뉴, 아키텐, 블루아, 부르고뉴, 플랑드르 등지를 각각 지배하는 봉건시대였고, 국왕도 자기 영지를 통치하는 대영주에 불과했다.

아버지 위그 카페는 왕국을 강화하기 위해 정략결혼을 추구했고, 장남 로베르를 플랑드르 백작의 미망인 로잘라(Rozala)와 결혼을 강요했다. 로잘라는 이탈리아 왕 베렝가리오 2세의 딸로, 이미 결혼해 사별한 처지였다. 로베르 2세는 자신보다 22살 많은 로잘라를 싫어 했으나, 아버지의 강권을 이기지 못해 결혼했다. 그의 첫결혼은 3~4년만에 끝났다. 996년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로베르는 단독 왕이 되었고, 바로 로잘라와 이혼했다. 로잘라와의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프랑스 국왕 로베르 2세가 베르타와 결혼하려 하자, 교황이 파문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그림. /위키피디아
프랑스 국왕 로베르 2세가 베르타와 결혼하려 하자, 교황이 파문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그림. /위키피디아

 

로베르 2세는 마음에 드는 왕비를 찾아 결혼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는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원정에 나서던 중 부르고뉴의 공주 베르타(Bertha)에 반해 그녀와 결혼하기로 했다. 그런데 로베르의 어머니와 베르타의 어머니가 이종사촌 사이였다. 즉 외할머니 대에서 친자매로 연결되었다. 이게 교회법에 어긋났다. 교회법에는 외가로 연결된 결혼도 근친혼으로 분류되었다.

로베르 2세는 교황 실베스테르 2세에게 베르타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청원했으나, 교황은 둘이 결혼할 경우 파문에 처하겠다고 선언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놓치기 싫어 로베르는 재차 교황에게 청혼을 했지만, 교황은 완강했다. 결국 로베르는 굴복했다. 결국 법적 결혼을 하지 못한채 그들은 헤어졌다.

로베르 2세 국왕은 1003년 아를 백작 기욤 1세의 딸 콩스탕스(Constance)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로베르는 콩스탕스와 사이에서 4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을 낳았다.

 

이 사연은 프랑스 초기 국왕의 권력이 미약했음을 보여주고 잇다. 교회의 권한이 속세 국왕의 권한을 넘어섰다. 교황이 파문하면, 국왕은 결혼은 물론 국정을 운영할수 없는 처지였다. 프랑스왕 로베르 2세의 로맨스는 이뤄지지 못하고, 전설로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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