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으로 추앙받은 프랑스 국왕 루이 9세
성인으로 추앙받은 프랑스 국왕 루이 9세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01.23 2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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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를 돌봐주고, 기독교 정신으로 판결…두번 십자군 전쟁에 출병

 

프랑스 국왕 루이 9(Louis IX, 재위 1226~1270)생 루이’(Saint Louis)라고도 한다. ‘성인(聖人) 루이라는 뜻이다. 그는 프랑스 국왕 가운데 유일하게 로마 교황청이 성인’(Saint)으로 시성한 인물이다.

생 루이 /위키피디아
생 루이 /위키피디아

 

중세의 국왕들은 대체로 그 인품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었다. 그런데 루이 9세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일생을 철저하게 신앙적이었고 도덕적으로 살았다. 그는 한번이면 족할 십자군 원정을 두 번이나 나갔으며, 두 번째 십자군 원정에 나선 튀니스에서 풍토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내정이나 외교 전반의 일을 기독교 정신으로 처리했다. 그는 검소한 생활과 선정으로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매일 아침 미사를 올리고, 점심 후에는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그는 기사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귀족의 반란을 진압하고 장엄한 붉은색 코트를 입고 군대를 지휘했다. 하지만 부하와 신하들을 다룰 때에는 다정다감했다. 왕은 가까운 신하들은 침대 아래에 앉히고 농담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루이 9세는 사회적 약자들을 돌봐주는 일을 직접 실천했다. 나병 환자와 맹인들을 위해 구호소를 세워 직접 돌봐주었고, 빈민들에게 세족식을 실시했다. 그는 집사이자 친구인 주앵빌에게 나병이 걸리는 것과 죄를 짓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주앵빌이 죄를 택하자 루이 9세는 그를 나무랐다. 국왕은 빈민의 발을 씻어주는 행사를 꺼리는 주앵빌에게 좋은 말로 타이르면서 발을 씻어주라고 했다.

그는 왕자들에게 미풍양속을 존중하고, 신을 경배하고, 빈자와 약자를 부조하며 욕심이 없고 청렴한 사람을 측근으로 두라고 가르쳤다.

 

루이 9세는 파리 뱅센의 숲(Bois de Vincennes)에서 재판을 했다. 국왕은 최고의 재판관이었다. 루이 9세는 뱅센의 느티나무 아래에 카펫을 깔고 판관들과 함께 상설 법정을 열었다. 판결을 내릴 때 그는 소송인들의 편을 든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는 교회의 정신으로 판결을 내렸다.

루이는 기독교에는 충실했지만, 유대교와 무슬림 등 비기독교에 대해선 가혹했다. 1970년 그는 두 번째 십자군 원정에 나서 튀니지에 도착했다. 루이는 무슬림 태수에게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권고했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십자군 장병은 전투도 하기 전에 무더위 때문에 열병에 걸려 쓰러졌다. 루이 자신도 병을 얻어 마침내 그곳에서 숨지고 말았다. 나이 56세였다.

그가 죽은 후 프랑스에서는 루이 9세를 성자로 시성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1297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루이 9세를 성자로 시성했다.

 

파리 뱅센의 숲에서 재판을 여는 루이 9세 /위키피디아
파리 뱅센의 숲에서 재판을 여는 루이 9세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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