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과거 연연말고 미래 보고 가야한다”
“대통령은 과거 연연말고 미래 보고 가야한다”
  • 이인호 기자
  • 승인 2019.07.06 16: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르하르트 서독총리가 박정희에게 충고한 말…과거를 묻고 실리를 챙기는 용기 필요

 

인터넷에서 우연하게 박정희 대통령의 통역관으로 일했던 백영훈씨의 회고담을 유튜브로 보게 되었다. 그는 196412월 박 대통령이 서독에 국빈방문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을 수행했고, 루드비히 에르하르트(Ludwig Erhard) 독일 총리와 면담한 일화를 소개했다(백영훈 회고 유튜브)

박 대통령이 한국 광부들이 가 있는 서독 광산을 찾아갔습니다. 얼굴이 새카만 광부들이 한국의 대통령이 온다니, 모두 왔습니다. 애국가가 울렸습니다. 목이 메어 애국가를 부르지 못했습니다. 모두 서로 껴안고 울기만 했습니다. 대통령도 연설문을 읽지 못하고 울어버렸습니다. 그들의 시커먼 얼굴이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거죠.

겨우 대통령이 연설을 했지요. ‘후세를 위해 열심히 일합시다.’ 모두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습니다. 한국 간호사들도 대통령에게 매달렸습니다. 광부와 간호사들이 차를 가로막는 바람에 아우토반을 올라타는데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겨우 차를 탔는데, 대통령은 눈물만 흘리며 뒤를 돌아 그들을 보았습니다. 나도 눈물이 나와 통역을 하지 못했습니다.

곧이어 에르하르트 서독 수상과 회담을 했습니다. 대통령은 수상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한국 국민 절반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 우리는 독일처럼 분단되었고, 반공국가입니다. 도와주십시오. 반드시 깊습니다.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애걸했지요.

에르하르트 수상은 대통령의 손을 잡고 도와 드릴께요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장관 때 한국을 두 번 다녀갔는데, 산이 많더군요. 산이 많으면 경제발전이 어렵습니다. 아우토반을 건설해야 합니다. 고속도로를 만들면, 그 위에 자동차가 달려야 합니다. 서독의 국민차 폭스 바겐은 히틀러가 제조한 것입니다. 자동차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철을 가공할 제철 공장을 짓고, 연료 생산을 위해 석유정제공장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라고 권했습니다.“

 

196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과 루드비히 에르하르트 서독 총리 /대한뉴스 캡쳐
196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과 루드비히 에르하르트 서독 총리 /대한뉴스 캡쳐

 

백영훈씨는 말을 더 이어나갔다. 그런데 에르하르트 총리가 느닷없이 일본과 손잡으시오라고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갑작스런 제안에 얼굴이 벌개졌다. 그러자 에르하르트 총리는 우리는 프랑스와 8번 전쟁을 했다. 우리는 전투에서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지만, 전쟁에서 한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우리는 2차 대전에서 패전국이 되었다. 나의 전임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가 프랑스 샤를 드골 대통령과 만나 두 손을 잡았다. 독일은 프랑스와 손을 잡고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지도자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박 대통령은 독일과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서로 싸웠지만, 우리는 일본이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일본이 36년간 우리를 지배하고도 한마디도 사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에르하르트는 도와 드리겠다고 말했다. 백영훈씨는 그때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방문에 앞서 일본 정부가 서독 정부에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중개를 요청했다고 회고했다. 그후 일본에서 오히라 외상이 방한하고 1965년 한일회담이 체결되었다.

 

백영훈씨의 회고를 들으면서 최근 한일간 무역분쟁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1964129일 서독 본에서 에르하르트 서독 총리는 박정희의 손을 잡고 경제 지원을 약속하면서 일본과 손잡으라고 주문한 말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요즘 일본과 외교적으로 협상하라, 과거사 문제는 접어두라고 말하면 토착왜구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하지만 에르하르트 총리의 말을 곰곰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중세 이후 서양사는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합스부르크, 신성로마제국까지 합치면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은 수십번이 넘을지도 모른다. 30년전쟁, 7년전쟁은 모두 두 종족간의 싸움이었다.

그러던 두 나라가 화해를 했다. 2차 대전 이후 그 첫 단추는 에르하르트가 소개했듯이 아데나워와 드골의 화해였다. 그리고 그들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만들었다. 철강과 석탄은 산업의 핵심원료다. 루르와 짜르, 알사스, 로렌을 서로 뺏으려고 싸운 것도 이 원료를 획득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우리 더 이상 싸우지 말고 이 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하자는 것이었다. ECSC는 발전과 변형을 거듭하며 50년후에 EC라는 거대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냈고, 공동통화까지 창출해 낸 것이다.

 

에르하르트가 박정희에게 한 말 중에 이제 미래를 보고 가야 한다는 대목이 귀에 들어온다. 우리는 너무나 과거에 매달려 있다. 물론 일본이 과거에 한 짓이 괘씸하다. 하지만 우리도 이제 미래를 향하려면 과거를 속으로 담아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었던 베트남이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은 1,000년 이상 중국에 지배받았고, 프랑스, 일본, 미국의 식민통치와 무력개입을 당했다. 그들은 그런 과거를 묻고 미국과 수교했고, 서방국가들과 화해했다.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에 진출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도 그들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의 과거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국가적 차원의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바라보자. 우리나라는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하면서 일본에게 배상금과 지원금 명목으로 큰 돈을 받았다. 그 돈으로 포스코를 건설했고, 포스코에서 생산한 철로 자동차, 선박을 만들어 수출했다. 덕분에 세계인들이 놀라는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일본은 여러차례 과거사에 대해 사과를 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요구했고, 일본은 마지 못해 조금씩 떼어주었다. 이런 상태를 언제까지 가야 할 것인가. 창피한 일이 아닌가. 베트남이 미국에 배상금 달라, 한국에 배상하라고 한 적이 있나.

반일 감정은 정부가 부추긴 측면이 많다.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제 우리는 역사를 이용하지 말고, 미래로 나가야 한다.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1일 일본의 3가지 반도체 소재 수출금지조치를 내린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일부 젊은 충에선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불붙고, 반일감정에 불타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한일 경제전쟁은 우리가 지는 게임이다. 힘이 없는 상태에서 명분만 고집하다가 망한 사례는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을수 있다. 과거사를 들춰내 상대방을 비난하면 속이 시원할지 모르겠지만, 그보다 더 용기 있는 일은 과거를 묻어두고 실리를 챙기는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