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중국 황하유역에 코끼리도 있었다
고대중국 황하유역에 코끼리도 있었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7.0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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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2도 높은 온난다습…대나무 자라고, 삼림이 풍부, 벼농사와 옷감 지어

 

중국은 우리의 이웃나라여서 기후도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중국문화의 중심인 황하 일대의 기후변화는 우리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할수 있다.

고대 중국의 날씨는 어떠했을까. 대만 기상학자 유소민(劉昭民)은 고대 중국의 기온은 지금보다 2°C 정도 높은 온난다습한 기후였다고 진단한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유소민은 저서 기후의 반역에서 중국 역사에 기후가 5차례의 온난기와 4차례의 한랭기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의 분류는 다음과 같다.

1차 온난기: BC 3000~BC 1000, 황제(黃帝) 이전부터 주 목왕(穆王) 2년까지

1차 한랭기: BC 1000~BC 700, 주 목왕 2년부터 동주 평왕(平王) 동천까지, 소빙기

2차 온난기: BC 700~BC30, 동주 평왕 원년부터 전한 성제(成帝) 3년까지

2차 한랭기: BC29~AD 600, 전한 성제 4년부터 수 문제(文帝) 20년까지, 2차 소빙기

3차 온난기: AD 600~985, 수 문제 20년부터 북송 태종 2년까지

3차 한랭기: 985~1192, 북송 태종 2년부터 남송 광종(光宗) 3년까지 3차 소빙기

4차 온난기: 1192~1277, 남송 광종 3년부터 남송 단종(端宗) 2년까지

4차 한랭기: 1368~1800, 명 태조 원년부터 청 광서 6년까지

4차 한랭기에는 3번의 소빙하기가 왔다.

1458~1552, 명 영종 2년부터 명 세종 31년까지, 4차 소빙기

1600~1720, 명 신종 28년부터 청 강희 59년까지, 역사상 가장 한랭건조한 제5차 소빙기

1840~1880, 청 도광 20년부터 광서 6, 6차 소빙기

5차 온난기: 1880~현재, 청 광서(光緖) 6년 이후

 

자료: 유소민저 ‘기후의 반역’
자료: 유소민저 ‘기후의 반역’

 

1만년 전에 뷔름 빙하기가 끝나고 고대중국은 지금보다 따듯한 기후를 맞이 했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BC 3000, 즉 지금부터 5000년전에 중국 황하유역은 온난다습했는데, 지금의 양쯔강 유역 기후와 비슷했다고 한다.

현재 섬서성 시안 부근의 반파촌(半坡村) 앙소(仰韶)문화 유적지에서는 사슴, 호저(豪猪), 자라의 잔해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온난다습한 지역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이다. 황하 유역에 삼림이 차있고, 습한 소택기후였다는 것이다.

1921년 스웨덴 학자 앤더슨이 하남성 민지현 앙소촌에서 출토된 채색토기에서 곡식 껍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감정결과 이는 인공 재배한 벼와 조의 껍데기였음이 밝혀졌다. 현재 하남성에는 벼가 생산되지 않고 있는데, 고대부터 하()나라 시대에까지 황하 유역에서 따듯한 기후로 인해 벼를 생산했다고 관측되었다.

 

고대중국 앙소문화권역 /위키피디아
고대중국 앙소문화권역 /위키피디아

 

1926년에 중국 고고학자는 산서성 서음촌(西陰村) 앙소문화 유적지에서 누에고치 흔적과 돌방추차, 도기방추차 등 유물을 발굴했다. 섬서성의 또다른 고대문화유적지에서 다량의 방추차와 골침, 방직물조각(麻布)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중국 문화 발원지인 황하강 유역에서 선사사데 이래로 비단과 삼 등의 옷감을 짰다는 증거로 제시된다.

중국 고서적에 복희씨(伏犧氏)가 양잠을 쳐서 세백(繐帛)을 만들었다. 황제(黃帝의 부인 서릉씨(西陵氏)가 백성들에게 양잠을 하고 고치를 쳐서 의복을 만드는 것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최근 발견된 고고학적 흔적들이 이 기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양잠과 마()는 기후가 온난한 지역에서 가능한데, 당시 화북지방의 기후가 오늘날보다 따듯했다는 증거가 된다.

최근 시안 근처 앙소문화 유적지에서 죽서(竹鼠)라는 생물의 유해가 대량 발굴되었는데, 측정 결과 5,000년 전의 생물체로 확인되었다. 죽서는 양쯔강 이남 화남 지역에서 살던 것으로, 수천년전에 화복지방이 따듯했음을 보여주는 또다른 예가 되고 있다.

이밖에도 산동지방에서 남방 생물인 노루와 남방 식물인 대나무 마디가 발견되었다.

서경(書痙) 우공(禹貢)편에 우 임금이 토지를 구획하고, 산에 나무를 베며 높은 산과 큰 내를 정하셨다고 했는데, () 대에 화북 지방에 강우량이 많아 초목이 아주 무성했음을 드려내고 있다.

 

죽서(竹鼠) /바이두백과
죽서(竹鼠) /바이두백과

 

()나라 시대의 유물인 갑골문자에서는 기온을 측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독일 고고학자 아우구스트 위트포겔(Karl August Wittfogel)14,500 개의 갑골 조각(卜辭) 중에서 317편의 골편에 몇월에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 또는 내릴 것인지를 예측한 기록이 적혀 있음을 확인했다.

위트포겔은 또 은나라 유적지 은허(殷墟)에서 발굴된 물사슴(수륵), 죽서, (), 물소, 코끼리등의 유해를 통해 은나라 시대의 기후가 오늘날보다 온난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중국학자 호후선(胡厚宣)은 은대 갑골문자를 통해 황하 유역의 기후가 오늘날보다 더웠음을 8가지 증거를 통해 증명했다.

갑골문자에 눈이 오는 것보다 비가 오는 것을 더 많이 점쳤다. 한겨울에도 비가 온 기록이 있는데, 하남성 지역에 오늘날 겨울에 비가오는 일이 결코 없다는 사실에서 은대에 더 따듯했음이 입증된다.

갑골문자에 쉬지 않고 며칠째 비가 왔다는 기록이 많다. 오늘날 이런 기후는 양쯔강 유역에서나 볼수 있는데, 은허 근처의 날씨가 남방기후였다는 것을 입증한다.

갑골문자에 벼의 이모작 흔적이 보이는데, 이는 화북지역이 따듯했다는 증거다.

쌀을 의미하는 문자가 가장 많은데, 고대에 화북지역이 쌀의 생산지였다. 지금은 쌀의 생산이 화남지방으로 내려갔다.

남방계 물소를 의미하는 갑골 문자가 많이 나타난다.

남방에서 서식하는 코끼리 상아와 상아로 만든 그롯이 많이 발견된다. 코뿔소에 관한 문자도 나타난다.

은허에서 발굴되는 동물 유해가운데 남방 삼림지대에 서식하는 죽서, 노루, 물소, 코끼리 등의 뼈가 발굴된다.

갑골문자에 수렵에 관한 글자가 많은데, 황하 유역이 광대한 삼림이거나 초원지대였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보다 기온이 습했다는 증거다.

 

은허(殷墟)에서 발굴된 갑골문자 /위키피디아
은허(殷墟)에서 발굴된 갑골문자 /위키피디아

 

중국 고서 여씨춘추(呂氏春秋)은나라 사람들이 코끼리에 멍에를 씌워”, “호랑이, 표범, 코뿔소, 코끼리를 몰아내어 멀리 쫓으니등의 표현이 있는데, 황하유역에서 남방계 동물들이 서식했음을 알수있게 하는 대목이다.

 

유소민의 주장에 따르면 은나라 시대에 황하 유역에 대나무가 많이 자랐고, 벼를 재배했으며, 누에도 치고, 견직업이 발달했다. 온난다습한 기후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고고학적 유물이나, 갑골문자, 고서적등을 고찰하면 고대에 중국 황하강 유역의 기후는 오늘날보다 따듯했음을 알수 있다.

유소민은 고대 황하 유역에선 경작기간이 오늘날보다 1개월 이상 길었으며, 당대 연평균 기온이 오늘날보다 2°C 이상 높았으며, 1월 평균 기온은 오늘날보다 3~5°c  높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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