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바섬의 통치자 나폴레옹
엘바섬의 통치자 나폴레옹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02.2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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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동안 작은 섬의 영주…처음에는 열심히 노력했으나 끝내 탈출

 

엘바섬(Elba)은 지중해 티레니아해에 위치하며, 이탈리아에서는 시칠리아, 사르데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이탈리아 투스카니 해변에서 10km, 프랑스 코르시카 섬에서 50km 떨어져 있다. 면적은 224로 서울시 면적의 40% 정도이며 현재 인구는 3만명이다. 이 섬이 유명한 것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가 300일 정도 유배된 곳이기 때문이다. 엘바섬 인근에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이 된 몽테크리스토섬이 있다.

 

엘바섬의 위치 /위키피디아
엘바섬의 위치 /위키피디아

 

나폴레옹은 러시아 침공에서 패배한 이후 퐁텐블로 조약에 의해 1814411일 프랑스 황제에서 물러났다.

나폴레옹은 파리가 러시아군에 점령되었을 때 자살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합군이 그를 엘바섬으로 추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고쳐 잡았다. 엘바섬을 나폴레옹의 영지로 만들고, 황제직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조건이었다.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군주들은 나폴레옹을 전범으로 몰지 않고 비록 작은 섬이지만 왕국을 하나 만들어 준 것이다. 당시 엘바섬은 프랑스령이었고 12,000명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다.

한때 7천만명의 백성을 거느리던 황제가 작은 섬의 군주가 되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는 그것도 운명이라 생각하며 순순히 받아들였다. 심지어는 흥미까지 느껴 엘바섬에 관한 서적을 구해 연구도 했다고 한다.

민심은 요동쳤다. 어제까지 나폴레옹에 열광하던 프랑스인들은 끈 떨어진 황제의 등 뒤에서 욕설을 퍼부었다. 나폴레옹은 그런 수치를 견뎌내며 181454일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감시를 받으며 새로운 영지 엘바섬으로 건너갔다.

 

엘바섬의 나폴레옹 /위키피디아
엘바섬의 나폴레옹 /위키피디아

 

처음엔 작은 섬을 이상향을 만들어보려고 했다. 그는 연합국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400명의 근위대를 편성해 국방력도 키우고, 백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경제적 사회적 개혁을 단행하기도 했다. 나폴레옹은 선천적으로 부지런했다. 그는 섬의 광산을 개발하고 도로를 건설하며 학교도 지었다. 법률 구조도 완전하게 개혁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상은 하루하루 덧 없기만 했다. 전처 조세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엔 절망했다. 후비인 마리 루이즈는 아들 나폴레옹 2세와 함께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갔고 결혼 전의 애인과 사귀다 사생아를 출산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폴란드에서 하룻밤의 정을 나눈 발레프스카가 아들과 함께 찾아왔다. 그녀는 폴란드의 발레프스키 백작이 나폴레옹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나폴레옹의 침소에 보낸 20살 아내였다. 발레프스카는 백작 남편이 죽은 후 옛정을 잊지 못해 나폴레옹의 아들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나폴레옹은 마음이 울적해 폴란드 여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보냈다. 다만 엘바섬에서 샤라(Sbarra)라는 현지 여인이 돌봐주는 바람에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흔히 남들보다 키가 작다는 것에 열등감을 느껴 이에 대한 보상욕구로 타인을 지배하려는 심리적 경향을 나폴레옹 콤플렉스라고 한다. 엘바섬에서 나폴레옹은 다른 콤플렉스가 나타났다. 대제국의 황제가 작은섬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몰락한 보나파르트 세력들이 섬을 방문해 황제를 부추겼다.

프랑스 정부는 전후 재정이 고갈되었기 때문에 풍텐블로 조약에 의해 나폴레옹에게 주기로 한 연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그는 점점 곤궁해져 갔다.

 

1815년 2월 26일 엘바섬을 떠나는 나폴레옹 /위키피디아
1815년 2월 26일 엘바섬을 떠나는 나폴레옹 /위키피디아

 

1815226일 나폴레옹은 엘바섬을 탈출했다. 엘바섬에 온지 10월만이다. 그는 왕당파 지역인 프로방스를 피해 알프스를 경유해 그로노블로에 도착했다.

그를 체포하기 위해 부르봉 왕조의 루이 18세 국왕이 군대를 보냈다. 나폴레옹은 장병들에게 가슴을 내보이며 제군들 중에 황제를 죽일 사람이 있다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병사들은 아무도 그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나폴레옹은 파리로 입성, 다시 황제가 되었다. 나폴레옹이 재집권하자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는 다시 동맹을 결성했고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대는 패배했다.

나폴레옹은 100일만에 다시 포로가 되어 아프리카 서해안에 있는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었다. 이번에 그는 포로 생활을 했다. 이 섬과 인근 섬에 영국군이 배치되어 그의 탈출을 감시했다. 그는 이 섬에서 로마 시대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관해 집필하고, 영어를 공부했다. 그는 182155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나폴레옹이 죽고 엘바섬의 주인은 투스카나를 거쳐 이탈리아로 바뀌었다. 엘바섬 사람들은 나폴레옹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하고 그가 죽은 날을 기념해 매년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Elba

Wikipedia, Napoleon

Time, Why Napoleon Probably Should Have Just Stayed in Exile the Firs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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