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왕이 제사 지내던 공주 정지산 유적
백제 왕이 제사 지내던 공주 정지산 유적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03.0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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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과 송산리 고분 사이에 위치…제사유물 발굴돼, 빈전시설이라는 관측도

 

공주 정지산(艇止山)은 무령왕릉을 비롯해 백제 왕릉군이 밀집한 송산(宋山)이 흐르다가 금강에 막힌 곳에 위치해 있는데, 배가 멈춘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고도 57m 안팎의 얕은 구릉이며, 앞뒤 좌우가 확 트여 있다. 바로 앞에 금강 물줄기가 흐르고 건너편에 웅진시기 백제왕궁이 었던 공산성이 보인다. 뒤에는 송산 줄기가 뻗어 있다. 이곳에서 백제인들은 하늘을 쳐다보고 강을 내려다보며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정지산 유적지 항공사진 /문화재청
정지산 유적지 항공사진 /문화재청

 

공주 정지산 유적지는 도로공사를 하다가 발굴되었다. 애당초 공주에서 부여를 잇는 백제큰길 공사는 정지산 정상을 지나가도록 설계되었다. 1995년 공사에 앞서 사전 발굴조사를 하다가 백제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발굴되어 설계가 변경되었다. 산 아래 터널을 뚫게 되었으니 지금의 정지산 터널이다.

 

정지산 유적지에서 내려다본 금강 /박차영
정지산 유적지에서 내려다본 금강 /박차영

 

1996년 국립공주박물관이 발굴조사에 들어갔다.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이곳은 백제시대에 왕이 하늘에 천제(天祭)를 지내던 제단으로 추정되었다. 8잎의 연꽃잎이 새겨진 수막새가 발견되었고, 화려한 장식이 부착된 장고형 그릇받침 등이 출토되었데, 이런 유물은 국가 제사와 관련된 유물이다.

기와 건물터 1동과 벽주(壁柱, 벽과 벽 사이의 기둥), 건물터 7,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 울타리와 외곽의 목책시설, 저장 구덩이 등이 확인되었다. 기와 건물터는 32개의 기둥을 3열로 촘촘하게 배치해 만든 곳으로, 기와를 올렸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건물터에서 출토된 굽다리접시, 세발토기 등 국가 제사와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었다.

 

정지산 유적 배치도 /박차영
정지산 유적 배치도 /박차영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곳은 무령왕 왕비의 시신이 무령왕릉에 안치되기 전까지 27개월 동안 임시로 모셔두었던 빈전(殯殿)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지석(誌石)의 매지권에 왕릉의 위치를 신지(申地)로 적고 있는데(買申地爲墓), 여기서 신지란 남서방향을 말한다. 왕비지석에는 왕비가 사망하자 유지(酉地)의 땅에서 상()을 치르고(居喪在酉地) 27개월 후인 5292월에 대묘인 왕릉에 합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지란 서쪽방향이며 신지와는 약 30° 의 각도차가 존재한다. 공산성 내의 추정왕궁지나 기타 특정지점에서 왕릉방향을 신지로 본다면 자연적으로 유지는 중간 경지(庚地)를 거쳐 정지산 유적의 위치에 해당한다. 따라서 정지산 유적지가 제사시설임과 동시에 빈전이었다는 추정이 나온다.

정지산 유적지는 1998728일 충청남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06116일 국가지정 사적으로 승격되었다.

 

정지산 유적 건물지 /박차영
정지산 유적 건물지 /박차영
정지산 유적 건물지 /박차영
정지산 유적 건물지 /박차영
정지산 3호 대벽건물지 /박차영
정지산 3호 대벽건물지 /박차영
정지산 2호 대벽건물지 /박차영
정지산 2호 대벽건물지 /박차영
정지산 유적지 위치 /네이버 지도
정지산 유적지 위치 /네이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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