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에 유사한 개입이 발생했다. 미국 재무부가 대형은행들의 팔을 비틀어 부실은행을 구제했다.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에 뉴욕연준(Fed)이 개입한 것과 비슷한 미국식 관치금융이 재발한 것이다.
CNN에 따르면,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지난주 이틀에 걸쳐 대형은행 11곳을 설득해 퍼스트리퍼블릭은행(First Republic Bank)에 300억 달러의 자금을 마련해 밀어넣어 줬다. 참여은행은 뱅크오브어메리카(BoA), 시티그룹, JP모건, 웰스파고,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BNY멜런, PNC, 스테이트스트리트, 트루이스트, US은행이다.
이번 구제금융은 3월 14일 옐런 장관이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를 설득함으로써 이뤄졌다고 미국언론들이 보도했다. 다이먼은 다른 대형은행 설득에 나섰다. 일부에서는 이의를 제기했다. 왜 다른 은행 구제에 나서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고, 이런 조치가 실효성이 있느냐는 항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은행엔 옐런이 직접 설득했고, 제프 자이언츠 백악관 비서실장과 레이얼 브레이너드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도 협상 진행 과정에 참여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미국은 대외적으로 자유시장 경제를 천명한다. 평상시엔 연방정부와 Fed가 은행경영에 간섭하지 않는다. 다만 위기의 순간에는 감독당국이 개입한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팔 비틀기(arm-twisting)라고 표현한다. 감독당국이 팔을 비트는데 거부할 경우 앞으로 영업에 상당히 까탈스럽다는 것을 은행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당국의 요구에 응한다. 일종의 간접 규제방식인데 미국에선 잘 통한다.
이렇게 해서 은행 11군데에서 300억 달러를 조성, 16일자로 퍼스트리퍼블릭 계좌에 넣어주었다. 금액은 큰 은행과 작은 은행에 차이가 있다. 발표자료에 따르면, 대형은행인 BoA, 시티, JP, 웰스파고는 50억 달러씩,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25억 달러씩, 나머지 5곳은 10억 달러씩이다.
1998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그해 9월, 뉴욕 Fed의 윌리엄 맥도너 총재는 한꺼번에 투자자들의 돈이 빠져나가 파산위기(fund run)에 처해 있던 헤지펀드 LTCM을 살리기로 결정했다. 뉴욕Fed는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 등 10여개 금융기관 경영진을 소집해 LTCM에 36억5,0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합의를 이끌어 냈다.
중앙은행(Fed)가 없던 시절엔 최대은행인 JP모건이 그 역할을 했다. 이 은행의 설립자인 존 피어폰트 모건은 1907년에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은행에서 돈을 꺼내 부실은행을 구제해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다. 지금 그 은행의 후손이 연방정부에 협조헤 구제금융에 대표로 나선 것이다. 여전히 미국 금융계에 JP모건의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은행들이 십시일반으로 부실은행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방식은 정부의 공적자금을 피하기 위한 방안이다. 공적자금은 재정에서 조달되므로 세금이 투입된다. 이번 퍼스트리퍼블릭에서 미국 재무부나 과거 LTCM에서의 Fed가 은행의 팔을 비튼 것은 공적자금 투입을 가급적 피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LG카드 구제에 은행들이 참여한 적이 있다.
300억 달러 실탄 지원에도 불구하고 퍼스트리퍼블릭의 주가는 지난주 금요일(17일) 32% 폭락했다. 아직도 50억 달러가 더 필요하다는 일부 분석이 있는데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17일 이 은행의 등급을 7단계나 떨어 뜨려(B2) 투자주의등급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신평사들이 금융위기에서 뒷북을 치며 위기를 조장하는 경향은 언제나 있었다.
퍼스트리퍼블릭은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상업은행으로, 캘리포니아, 뉴욕, 캘리포니아, 매스추세츠, 플로리다 등 11개 주에 93개 지점을 두고 있다. 1985년에 설립된 비교적 신생은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