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강국 스위스의 은행위기 대처법
금융강국 스위스의 은행위기 대처법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03.20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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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 투입 피하기 위해 1위-2위 합병 선택…휴일에 전격 성사

 

스위스는 인구가 대략 860만명, 면적이 4로 대한민국의 40%에 불과하다. 하지만 알프스 산중에 있는 이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8만 달러로, 평야지대에 있는 나라보다 높다. GDP는 관광·금융·제조업에서 주로 창출되는데, 특히 금융은 이 나라의 주력산업이다. 금융업 종사자가 20만명에 이르러 전체 일자리의 5.6%를 차지하고 있으며, GDP12% 가량을 창출하고 있다.

스위스가 유럽을 너머 세계금융국가로 발전한 것은 영세중립국의 이점과 예금자 비밀주의 덕분이다. 이를 활용해 전세계 국외 자산의 25%(6.5조 달러)가 스위스 은행에 예치되었으며, 전세계 역외펀드의 28%가 이 산악국가에 몰려 있다.

 

베른에 있는 스위스중앙은행 건물 /위키피디아
베른에 있는 스위스중앙은행 건물 /위키피디아

 

금융업으로 번창한 스위스에 문제가 발생했다. 2위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가 부실의 늪에 빠진 것이다. 원인은 탐욕이었다. 일확천금을 노려 고수익 상품에 투자했다가 줄줄이 터진 것이다. 그 결과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가가 폭락했고, 최근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의 불똥이 튀어 경영위기 사태를 맞았다.

중앙은행이 나섰다. 스위스국립은행은 315500억 스위스프랑(540억 달러)의 유동성을 빌려 주었다. 명목 GDP 8,000억 달러인 나라에서 엄청난 돈을 밀어 넣은 것이다. 그런데도 크레디트스위스 사태는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주가는 폭락했다. 공적자금을 넣기에는 덩치가 너무 컸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스위스가 관할 영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빅스텝을 밟았다.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을 표방하는 바람에 EU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금융선진국이 되었는데, 이젠 그게 한계로 작용한 것이다.

외부의 조력을 받을 길도 없었다. 스위스 연방정부와 중앙은행이 선택한 유일한 방법은 1위 은행 UBS와 합병하는 것이었다. 1위와 2위 은행을 합치면 공정거래법상 독과점의 문제가 생긴다. 스위스 금융감독당국(FINMA)은 이 문제도 넘어가기로 했다. 크레디트스위스가 파산하면 그 여진은 그라운드제로인 스위스 뿐 아니라 서방세계 전체에 파급되므로, 미국 Fed, ECB, 영란은행도 두 은행의 합병을 인정했다.

 

UBS는 크레디트스위스에 비해 건실했다. UBS는 지난해 76억 달러의 이익을 냈고, 2021~2022년 사이에 주가가 15% 상승했다. 이에 비해 크레디트 스위스는 지난해 79억 달러의 손실을 냈고, 2년 사이에 주가는 84% 폭락했다. UBS1862, 크레디트스위스는 1856년에 설립되었다. 26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두 회사는 최근에 서로 다른 길을 걸은 것이다.

두 은행의 합병작업은 지난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스위스중앙은행(SNB)가 주도해 두 은행의 대표자들을 불렀다. 감독당국은 주주총회를 거치지 않고도 합병이 가능하도록 예외조항을 인정했다.

장사치들의 협상은 가격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UBS는 자산 80억 달러의 크레디트스위스를 1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했다. 부실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후려친 것이다. 이에 크레디트스위스 측이 반발했고, 최종 인수가격은 30억 스위스프랑(322,000만 달러)로 낙착되었다. 주식인수 비율은 트레디트스위스 주식 22.48주가 UBS 1주로 교환되는 조건이다. 통합법인의 회장과 CEOUBS측의 현 경영진이 맡는다.

고용승계에 관해서는 스위스 정부와 중앙은행이 간여하지 않기로 했다. 인수은행이 피인수은행을 구조조정하고 인력을 조정하도록 자율을 주기로 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정부가 이 문제에 가장 신경 썼을 터인데, 스위스는 정부가 간여할 사안이 아니라고 보았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다만 공적자금이 들어가지 않도록 딜을 주선했을 뿐이다. 크레디트스위스의 고용인원은 전세계에 5만명, 스위스에 17,000명이다.

발표는 주앙은행이 맡았다. 스위스국립은행은 발표문에서 1,000억 스위스프랑의 유동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번의 것까지 합치면 1,500억 스위스프랑이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금융여력이 버틸수 있는 최대한까지 지원한 것이다.

 

한편 스위스의 이번 조치에 서방의 주요국 중앙은행이 협조했다. Fed, ECB, 영란은행, 캐나다중앙은행, 일본은행, 스위스국립은행은 공동자료를 내고, 기존 달러 유동성 스와프 협정을 통해 "7일 만기의 운용 빈도를 주 단위에서 일 단위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스위스의 결단이 성공할지 여부는 지켜보아야 한다. 크레디트스위스의 부실은 UBS로 전가되었을 뿐, 금리인상에 따른 전세계 금융파동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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