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AIG는 살리고 리먼은 포기한 까닭
2008년, AIG는 살리고 리먼은 포기한 까닭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03.2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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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부족이었다”…벤 버냉키 등 세 주역, 저서 ‘위기의 징후들’에서 뒤늦게 설명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에 연준(Fed) 의장은 벤 버냉키, 재무장관은 헨리 폴슨, 뉴욕Fed 총재는 티머시 가이트너였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말기에 일어난 미국의 금융위기는 버락 오바마 정부로 이어졌다. 티머시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맡았다. 이 세 사람이 미국이 파산할 위기를 극복한 주역들이다.

세 주인공은 위기가 극복된지 10년째 되는 20194월에 후세에 교훈이 되고자 당시의 경험을 모아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원제는 “Firefighting - The Financial Crisis and Its Lessons”이다. 이 책은 2년후(2021) 국내에서 번역되었는데, 출판사는 제목을 위기의 징조들이라고 바꾸고, 부제를 금융위기는 반드시 다시 온다!’고 달았다. 지금의 시점에서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나는 은행 위기들을 지켜보면서 15년전 주역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읽어보면 데자뷔라는 느낌이 든다. [관련기사, 2008년 미국 파산위기]

 

벤 버냉키, 헨리 폴슨, 티머시 가이트너(왼쪽부터) /위키피디아
벤 버냉키, 헨리 폴슨, 티머시 가이트너(왼쪽부터) /위키피디아

 

2008년 미국 금융위기 극복의 주역들에게 가장 궁금했던 점은 왜 AIG는 구제하고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하도록 내버려 두었는지 여부였다. 그들은 리먼브러더스를 살리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토로했다.(142p)

리먼을 구제하지 않은 것은 부실을 일으킨 은행을 처벌하기 위해,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리먼브러더스는 지원하기에 담보가 너무 적었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구제하려면 2,000억 달러나 되는 엄청난 돈을 투입해야 한다. 그 돈이면 연방정부가 오히려 파산할 가능성이 있다. 물에 빠진 주정뱅이를 구하려다 구원자가 익사할 위험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리먼브러더스의 붕괴는 결과적인 현상이었다. 리먼의 포지션은 부동산시장에 과도하게 노출되었고, 단기자금에 지나치게 의존했으며, 금융시스템에 깊게 연계되어 있었다. 6개월 전에 또다른 비은행계회사 베어스턴스를 구제할 때만 해도 연방정부와 연준은 실탄이 있었다. 베어스턴스의 경우에 JP모건이란 구원자가 등장했는데, 연준이 JP모건에 대출을 해주고, JP모건은 그 돈으로 베어스턴스를 떠맡았다. 그후 연준이 나서 주택담보대출 전문은행인 페니메, 프레디맥도 구제했다.

20089월 들어 리먼브러더스가 휘청거리자 헨리 폴슨과 벤 버냉키는 인수자를 물색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영국의 바클레이스가 리먼에 관심을 가졌다. BoA는 리먼에는 건성이었고, 오히려 메릴린치에 적극적이었다. 메릴린치도 리먼브러더스처럼 레버리지가 높았고 주가가 폭락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월가 IB중에는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정도만 수면 위에 간신히 헤엄치고 있었다. 세 당국자들은 BoA에 메릴린치를 맡기고, 바클레이스에 리먼을 떠넘기기로 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사업 실패를 보상해주는 것을 중단하라는 논평을 냈다. 영국 금융감독당국도 부정적이었다. 영국 금융감독청 캘럼 매카시 의장은 바클레이스가 리먼의 채무를 보증할 능력이 의심된다며 합병을 승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헨리 폴슨은 영국 재무장관 앨리스테어 달링을 설득했으나, 그도 마찬가지로 완강하게 거부했다. 영국은 미국보다 금융산업 비중이 높기 때문에 미국 금융기관의 부실을 떠안을 여력이 취약했다.

결국 바클레이스에 걸었던 마지막 희망도 물거품이 되었다. 연방정부와 중앙은행이 리먼브러더스를 구제할지 최종적인 결정을 해야 했다. 리먼브러더스엔 대규모 환매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업성, 브랜드, 경영진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이마 바닥으로 떨어졌다. 중요한 것은 리먼브러더스를 구제하기 위해 재원을 쏟아부을 경우 연방정부와 연준의 대응능력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는 점이다. 리먼을 살리면 다른 금융회사를 살릴수 없는 한계점에서 선택한 것은 러먼에게 구제금융의 밧줄을 던지지 않는 것이었다.

915일 월요일 자정을 넘긴 새벽 145, 리먼브러더스는 파산을 신청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파산이었다. 다음날 오전 BoA는 메릴린치 인수를 선언했다.

 

뉴욕 월가엔 광란이 시작되었다.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의 채권스프레드가 두배로 폭등했다. 초우량기업인 GE마저 기업어음 만기연장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티은행의 CDS 프리미엄이 폭등했다.

폴슨과 버냉키는 리먼브러더스를 구제할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미국의 무능함을 노출시키고, 시장은 공황에 빠져들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0년뒤에야 그들은 회고록에서 미국의 무능력을 인정했지만, 당시엔 정부에 실탄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국가기밀에 해당했다. 저자들은 저서에서 카드가 더 이상 없어서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는 것을 두고 복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158p)

책 표지
책 표지

 

그러면 리먼 파산 직후 위기의 수렁에 빠진 AIG는 왜 구제했는가. 리먼은 담보물이 없었는데 비해 AIG는 담보물이 있었다는 게 그들의 답변이다.(164p)

리먼이 파산하자 시장은 AIG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대규모 자금유출 사태가 빚어졌다. 세 당국자들은 AIG를 리먼처럼 파산하게 내버려 둔다면 엄청나게 심각한 경기침체가 유발될 것임을 깨달았다.

AIG의 가입자는 18만개 기업, 7,600만명에 이르렀다. 미국 근로자의 3분의2에 해당했고, 이들의 퇴직연금과 생명보험. 자동차보험, 동산보험을 보증했다. 그러면서도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지 않았고, 헤지펀드나 다름 없는 영업활동을 해왔다. 파생상품 계약에 걸린 금액만 27,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한때 150달러나 하던 주가는 5달러까지 떨어졌다.

폴슨과 버냉키는 AIG를 구제하는데 필요한 돈이 750억 달러로 추산했다. 연준이 보험회사를 구제하는 것은 전례가 없고 법률상 어렵지만 특별규정을 확대해석해 AIG 지분 80%를 담보로 850억 달러의 신용한도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AIG측은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연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결국 연방정부는 리먼브러더스는 포기했지만 보다 규모가 큰 AIG를 구제한 것이다. 저자들은 “2008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바로 다음날 우리가 AIG를 구제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바로 재앙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167p)

 

그해말 대선에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당선되고, 해를 넘겨 2009년에 티머시 가이트너가 재무장관이 되었다. 권력이동기에 민주·공화 양당은 국가적 차원에서 국난 극복에 참여했다. 7,500억 달러의 TARP(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를 조성하고, 전 금융기관에 대해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했다. 이런 조치를 통해 미국은 1929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극복하는데 성공했다.

저자들은 다른 주요 나라와 비교하거나 과거 미국의 경기 침체와 비교해 봐도 2008년 금융위기는 결과적으로 덜 심각하고 회복 속도는 더 빨랐다. 비록 많은 사람이 기대한 것처럼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지는 못했지만, 경제회복은 대단히 안정적으로 진행됐다고 자평했다. (246p)

버냉키, 폴슨, 가이트너는 저술작업을 마무리할 무렵에 우리는 여전히 다음 금융위기를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지금의 금융상황을 예측한 것이다.

 

리먼브러더스(왼쪽)와 AIG(오른쪽) 본사 /위키피디아
리먼브러더스(왼쪽)와 AIG(오른쪽) 본사 /위키피디아

 

세 사람이 공저 위기의 징조들에서 남긴 말들 중에 주요한 대목을 정리한다.

금융위기는 대부분의 경우 신용 버블, 즉 과도한 차입 때문에 촉발된다. 규제와 보호 감독이 미치지 못하는 금융기관에 단기대출에 너무 많이 노출될 경우 위험하다.

금융위기는 대통령 선거기간에 일어났다. 블라디미르 레닌의 말을 빌리자면 단지 몇주 사이에 수십년에 걸쳐 일어나야 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연준이 일반 상업은행에 대해서는 권한이 있었지만 비은행권 금융기관에 대한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의회를 설득해 연준이 필요한 권한을 갖게 만들어 무차별 환매에 나선 사람들을 진정시킬수 있었다.

규제 완화와 시장 자율 기능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그리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은 손은 전면적인 금융 붕괴를 막을수 없다. 오로지 정부의 직접적이 개입만이 이를 막을수 있다.

불이 나지 않는 건물이 없는 것처럼 금융위기에 대한 완벽한 예방책은 없다. 미국은 민간 금융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에 대한 국민 반발이 심하다. 2008년 금융위기의 피해가 컸던 이유 중 하나는 정부에 금융위기 초기부터 사용할수 있던 강력한 정책 도구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초기부터 사용할수 있는 정책들이 과거에 비해 적고, 부여된 권한도 과거에 비해 약해진 상황에서 또다른 금융위기를 맞이할수 았다는 점이 우려된다.

제임스 볼드윈의 말을 빌리자면 위기는 결국 다가올 것이다.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금융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게다가 금융위기는 강물이 바위를 돌아서 흐르듰 규제 장벽을 피해 옮겨 다니는 경향이 있다.

금융공황을 피할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없다. 금융위기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발생할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누구나 결국 한번은 죽는 것처럼 금융위기도 반드시 발생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금융불안에 너무 빨리 대응하면 무책임한 투기를 조장하고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수 있다. 그러나 금융 시스템 전반에 걸쳐 위기가 발생할 것이 확실해 진다면 소극적인 대처는 과잉 대응보다 위험하고, 늑장 대응은 신속한 조기 대응과 비교할 때 상당히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설령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는 일이 이ㅆ더라도 위기를 종식시키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역사는 정확한 형태로 반복되지 않지만 그 패턴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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