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전쟁까지 벌였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한때 전쟁까지 벌였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 아틀라스
  • 승인 2019.03.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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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말레이시아 총리와 회견서 인도네시아어로 인사…국민감정 무시한 외교 결례

 

문재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국빈방문 당시 인도네시아어로 인사해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는 지적에 대해 청와대가 실무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청와대는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방문국 국민에게 친숙함을 표현하고자 현지어 인사말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문제 제기는 없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인사말로 슬라맛소르(Selamat sore)’라는 현지어로 인사했다. 이 표현은 말레이시아가 아닌 인도네시아에서 쓰는 오후 인사다. 말레이어의 오후 인사말은 슬라맛쁘땅(Selamatpetang)’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오랜 역사를 공유하지만, 2차 대전 후 두 나라가 연방을 설립할 때 전쟁까지 벌였던 사이다. 따라서 양국의 정서와 감정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인사말은 충분히 외교적 결례가 된다.

 

청와대가 발표한 한-말레이시아 공동언론발표문 일부

슬라맛 소르 (안녕하십니까)!

나와 우리 대표단을 따뜻하게 환대해 주신 압둘라 국왕님과 마하티르 총리님, 그리고 말레이시아 국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중략)

다시 한 번 따뜻한 환대에 감사드리며, 올 연말 마하티르 총리께서 방한하실 때 환대에 보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뜨리마 까시(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말레이시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와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청와대
말레이시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와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청와대

 

 

역사적으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시아는 하나의 문화권이었다.

중세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하나의 왕조가 통치하는 나라였다. 근대에 들어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받았고,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독립과정에서 별개의 나라로 분리되었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이 열린 팔렘방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통치하던 고대 스리비자야(Srivijaya) 왕국의 수도였다. 통치기간은 650년에서 1377.

스리비자야 왕국은 9~11세기에 전성기를 누렸으며, 수도 팔렘방은 동남아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중국·인도 및 동남아시아 각지와 교역하고, 우리나라의 탐라국(제주도)과 교류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 섬은 고대부터 동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인도를 연결하는 동서 해상교역로로서 지정학적 이점을 누리고 있었다. 스리비자야는 7세기부터 이 해상교역로를 장악하고, 말레이 반도와 자바 섬도 지배했다.

()나라 시절엔 의정(義淨, 635-713)이라는 유명한 승려가 인도에서 공부하러 오가면서 스리비자에 몇 년간 머물렀던 기록을 자신의 여행기 남해기귀내법전(南海奇歸內法傳)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 남겼다.

스리비자야 왕국은 1025년 인도 촐라 왕조의 침략을 받아 쇠약해졌고, 수도 팔렘방도 수탈을 당했다. 왕국은 해상무역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농업 국가로 전환하면서 급격하게 세력이 약화되어 소국으로 전락했다.

 

고대 스리비자야왕국의 통치범위와 해상무역로 /위키피디아
고대 스리비자야왕국의 통치범위와 해상무역로 /위키피디아

 

 

16세기 이후 유럽 세력이 아시아로 진출하면서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의 운명이 달라졌다. 먼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자바섬의 바타비아(자카르타)를 점령해 서서히 식민영토를 넓혀갔다. 영국은 말레이 반도의 말라카와 싱가포르섬을 영유하면서 말레이 반도를 차지했다.

네덜란드와 영국은 보르네오섬에서 충돌했다. 영국은 보르네오 북부를 차지했고, 네덜란드는 남부를 경영했다.

2차 대전기간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동시에 일본군에 점렴되었다. 일본이 패전한 이후 영국과 네덜란드는 각자의 식민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현지 독립운동세력과 전쟁을 벌였다.

 

현재 분할된 보르네오섬 영역 /위키피디아
현재 분할된 보르네오섬 영역 /위키피디아

 

 

먼저 독립한 나라는 인도네시아였다.

수카르노를 중심으로 하는 인도네시아 독립세력은 일본이 패전한 이후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다시 식민지화에 나선 네덜란드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벌였다. 독립전쟁은 1945년에서 1949년까지 45개월에 걸쳐 전개되었고, 이 전쟁에서 80만명이 희생되었다.

네덜란드는 1947721일과 19481219일 두 차례에 걸쳐 군대를 인도네시아에 파병해 독립군과 전투를 벌였다. 네덜란드는 더 이상 독립을 저지하지 못했고, 마침내 인도네시아는 1949년 독립을 이루었다.

독립후 수카르노는 보르네오섬과 말레이반도의 영국령 식민지를 포괄하는 연방을 추진했다. 하지만 영국이 수카르노의 구상에 반대해 자국 식민지에 말레이시아를 독립시키려 했다.

영국은 19639월 말레이 반도의 말라야 연방과 싱가포르, 북보르네오 사바(Sabah) 식민지와 백인 왕국인 사라와크(Sarawak)를 통합해 말레시아 연방을 수립했다.

이에 인도네시아가 공격에 나섰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의 북부 보르네오를 공격했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 인도네시아가 말레이시아 창설에 반대하며 벌인 군사행동을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대치(IndonesianMalaysian confrontation) 또는 보르네오 대치(Borneo confrontation)라고 부른다.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 북부 공격에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군을 동원해 말레이시아를 위해 교전을 벌였다.

수카르노의 인도네시아군은 1964년 싱가포르 인종 폭동을 계기로 서부 말레이시아로 교전 지역을 확대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인도네시아서에 수카르노가 물러나고 수하르토가 권력을 잡으면서 분쟁은 잦아들었고, 19665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사이의 평화 협상이 시작되었다. 1966811일 인도네시아가 공식적으로 말레이시아를 인정하는 평화조약이 체결되면서 전쟁은 종결되었다. 이로써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별도의 국가로 독립하게 되었다.

 

영국군이 인도네시아군과 맞서기 위해 헬기로 보급품을 수송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영국군이 인도네시아군과 맞서기 위해 헬기로 보급품을 수송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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