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치학자의 문학사 평론, ‘한국인의 발견’
한 정치학자의 문학사 평론, ‘한국인의 발견’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05.09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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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운, 소설을 통해 해방후 한국의 현대사 접근…‘한국인의 탄생’ 연속작

 

서양인들은 19세기 조선을 견문하고 은둔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그러던 나라가 150여 세월을 보내면서 자유롭고 활기찬 나라로 변해버렸다. 그동안 시련도 많았다. 이 땅은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국제정세에 의해 해방되고 내전, 혁명과 군사쿠데타를 겪었다. 경제도 발전했다. 그렇게 한세기 반을 보내면서 한국인들은 다른 인종이 되었다. 성리학의 억압에 짖눌려 있던 그들은 자유와 풍요를 누리고 있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겐 이 격변이 좋은 주제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학자는 물론 외국인에게도 한국은 주요 연구대상이 된다. 대하드라마와 같은 지난 150여년을 연구한 저술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 부류의 하나가 최정운 교수가 저술한 한국인의 탄생한국인의 발견이다. “한국인의 탄생은 구한말에서 식민지까지, “한국인의 발견은 해방이후 1990년대까지를 다뤘다.

책 표지 /네이버 책
책 표지 /네이버 책

 

한국인의 발견”(2016, 미지북스)한국 현대사를 움직인 힘의 정체를 찾아서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최정운 교수는 소설의 흐름에서 한국인의 사상사를 짚어나갔다. 그 이유에 대해 최정운은 소설 작품들을 통해 당대의 지식인 예술가들은 동시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느껴온 사람들의 생각, 의식, 의식 밑바닥의 악몽과 소망, 심리적 문제들가지 인식해 가며, ‘메타 픽션으로서의 현실, 그리고 깊이 숨겨진 은밀한 차원의 현실을 표현해 왔다고 했다. 최정운은 우리나라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서구식 사상 연구의 전형적 자료의 자리를 대신하기에 소설만한 지적 생산품은 별로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학자 최정운이 소설을 통해 한국 사상사를 추적한 것은 일부 대목에서 무리를 드러냈다. 그 시대 상황을 대변할 소설을 인위적으로 골라야 했고, 시대상황에 대한 분석도 최정운의 개인적 해석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노출했다. 예컨대 황순원의 소나기의 주인공 소녀를 이 시대를 견디지 못하고 쇠락하여 멸망해간 도시 부르주아의 마지막 자식이라고 해석한 것은 견강부회라는 느낌을 준다.

소설가들은 관념적 경향이 강한 소시민 계층이다. 해방이후 격변기에 소설가들이 쏟아낸 관념의 찌꺼기들이 사상사를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설들이 사회상을 반영하고는 있지만, 소설가가 속하고 보고 느낀 일부의 세계를 그려낼 뿐이다. 공지영의 고등어1990년대 풍요의 세계에 자유를 방출하는 인간상을 서술하지 않는 것처럼.

 

최정운은 시대를 해방직후, 6·25전쟁, 두 개의 혁명,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의 연대기별로 나눴다. 두터운 책을 읽으며 우리 현대사를 되짚어볼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사상의 대립이 강한 이 나라에서 특정시기에 대한 해석에 최정운의 개인적 정치편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역사의 격동에서 멀찌기 떨어져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는 학자의 먹물 근성도 엿보인다.

 

해방과 건국

일제 경찰에 종사하던 한국인들이 해방직후 대부분 도주했다고 한다. 그러나 1946101일 대구봉기 이후 이들은 본격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최정운은 우리 독립투사들을 때려잡고 고문하던 친일파 일제경찰들을 민족국가 대한민국은 국가공무원으로 채용하여 근무하도록 했다고 했다. 이때는 엄밀하게 말하면 미군정기 아닌가. 최정운은 정부 기구에 친일 경찰을 대규모 영입한다는 결정은 대한민국 정통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고 했다. 이승만 정권을 친일로 몰아 건국을 부정하는 세력의 논리를 받아들였다.

 

전쟁과 아프레게르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전반까지 대표적인 소설들에 나타난 모습은 죽음, 그리고 죽음에 끌려가며 다른 사람도 죽음으로 끌고가려 애쓰는 죽어가는 자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소설들에서 죽음의 늪에서 헤어나 욕망의 주체로 인간이 그려지게 되었다. 욕망은 좌절의 계기였고 좌절은 분노로 이어졌다. 선우휘의 불꽃’, 장용학의 역성서설같은 작품이 이런 시대상을 반영했고, 1958년에 손창섭의 잉여인간으로 절정을 이뤘다.

 

4·195·16 두 개의 혁명

최정운은 4·195·16을 쌍둥이 혁명이라고 했다. 1950년대에 이미 그 혁명의 기운이 태동했으며, 어느 것이 먼저냐의 문제를 떠나 정치적 억압과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욕구가 순차적으로 분출한 것으로 보았다. 최정운은 4·19에서 구두딱이 등 기저층의 시위에 주목했다. 하지만 기층민중의 움직임은 정치적 동력을 갖지 못했다. 최정운은 5·164·19의 반동이 아니라고 했다. 이 견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쨌든 최정운은 최인훈의 광장에 나오는 주인공 이명준을 4·19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았다. 이명준은 직접 제 발로 계시 받은 특별한 운명을 찾아 광장을 찾아가봐야 했다.

5·16 이후 지식인들은 한국의 후진성을 의식했고 서둘러 근대화시킬 수 있는 인물들을 만들어 나갔다. 경제발전의 성과는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개성찰 찾고 생명을 만찍하기 시작했다. 풍요하지는 않지만 먹고사는 문제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되었다. 자유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국인의 모습을 그렸다.

 

1970년대

한국인의 해방은 정치투쟁의 결과만은 아니다. 경제적 풍요, 기술과 문명의 발달이 한국사람들을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했고, 여성을 해방시켰다. 1970년대는 고도발전의 시기였다. 경제성장률이 10%대를 넘어섰고, 세계인들이 한국경제의 발전을 기적이라 불렀다. 최정운은 경제적 풍요가 가져다준 인간의 해방적 부분을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은 것 같다. 공업화가 농촌을 파괴시키고, 도시 근로자를 양산했다. 계급분화로 인한 빈익빈부익부가 심해졌다.

1970년대 한국인들의 고통과 고뇌에 찬 여정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표현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유신정권과 대적해야 했고, 권력의 깊고 넓은 속성을 파악하게 되었다. 나아가 인간 존재와 존엄성의 가치를 발견했다.

 

1980년대

1980년대는 격동의 시대로 출발한다. 장기독재정권이 붕괴하고 광주민주화운동과 5공정권의 탄생이 이어진다. 최정운은 이 시기에 30대를 보냈다. 1980년대에 대한 그의 평은 혹독하다.

이러한 전시적 폭력의 문제는 그것이 윤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정당화될수 없다는데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군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집단적으로 우리는 악마다라고 소리치며 보이는 시민들마다 살인의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은 끔찍한 정치적 문제였다. …… 5·18에서 이러하나 계엄군의 폭력 양상은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띤 것으로 그 메시지는 대한민국은 민족국가나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너희들을 짓뭉개는 악마다!’라는 말로 해석될수 있으며, 이 메시지의 정치적 결과는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지식인에게 1980년대는 투쟁의 시대였다. 한편으로 이 시대에 한국인들은 극도의 의식 혼란기였고, 정체성 위기를 겪은 시대였다. 최정운은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에서 이 시대 한국인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이 소설은 작가의 의도와 별개로 1980년대 한국 사회가 모든 이념과 가치가 붕괴되고 말과 사물이 따로 놀며 세상이 의미를 잃는 이른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임을 드러내는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최정운은 영화 고래사냥처럼 1980년대 중반 운동권 대학생들의 충동이 세속화되었다면서, 이는 대체물을 대량으로 제공하는 5공 정권의 전략이었다고 했다. 이 시대는 3저의 호황을 구가하던 시절이었고, 경제적 풍요는 대중과 운동권 지도부와의 괴리를 키웠다. 단지 5공 정권의 운동권 무력화 시도라고 볼수만은 없다.

 

1990년대

1990년대에 대한 최정운의 설명은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이 시기엔 자유와 풍요를 동시에 누리던 시기였다. 운동권이 대중과의 괴리가 심해졌다. 그들은 NL이니 PD니 하면서 싸웠다. 사상의 규제가 없었다. 북한을 따르는 노선도 대학가를 파고들어 이념투쟁에 승리했다. 물질적 풍요는 사치를 유발했고, 과소비, 과잉생산은 경제는 1990년대말 .IMF위기로 치닫게 했다.

최정운이 적시한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공지영의 고등어는 대중으로부터 괴리된 운동권 지도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목표로 하는 세상이 도래하고, 그들이 선망하던 사회주의국가는 붕괴되는데 이념을 고수할 것인지, 버릴 것인지의 고민이 드러난다.

소설가들도 개인주의를 추구하고 상업화했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책이 팔리지 않는다. 소설이 더 이상 세상을 대변하지 않는다. 최정운의 한국인의 발견은 마지막 부분에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채 흐트러졌다.

 


<최정운>

1953년생. 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을 거쳐 미국 시카고대학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식국가론’. ‘오월의 사회과학’, ‘한국인의 탄생. ’한국인의 발견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푸코의 눈: 현상학 비판과 고고학의 출발‘, ’권력의 반지: 권력담론으로서의 바그너의 반지 오페라‘, ’국제정치에 있어서 문화의 의미‘, ’새로운 부르주아의 탄생: 로빈슨 크루소의 고독의 근대사상적 의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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