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복②…“너희가 감히 독도를 넘보느냐”
안용복②…“너희가 감히 독도를 넘보느냐”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7.1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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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도일에서 “울릉도·독도 조선 땅” 주장…“국토 수호 공로, 영원할 것”

 

1차 도해로 일본에 건너갔다가 조선에 돌아온 안용복은 조정의 허락을 받지 않고 해외랄 다녀왔다는 이유로 2년간 옥살이를 했다. 안용복은 억울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일본인들이 울릉도와 독도로 건너오는 것을 금지시켜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1696(숙종 22) 318, 안용복은 자신을 포함해 11명의 선원을 태우고 울산을 출발해 울릉도에 도착해 2개월을 머물렀다. 그는 울릉도를 침범한 일본 어부들을 쫓아내고, 다시 독도로 갔다. 그곳에 있던 왜인들을 다시 몰아내고 오키섬(隠岐島)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안용복이 비변사의 조사를 받으면서 발언한 내용이 숙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1)

제가 앞장 서서 말하기를, ‘울릉도는 본디 우리 지경인데, 왜인이 어찌하여 감히 지경을 넘어 침범하였는가? 너희들을 모두 포박하여야 하겠다.’ 하고, 이어서 뱃머리에 나아가 큰소리로 꾸짖었더니, 왜인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본디 송도(松島, 독도)에 사는데 우연히 고기잡이 하러 나왔다. 이제 본소(本所)로 돌아갈 것이다.’ 하므로, ‘송도는 자산도(子山島)로서, 그것도 우리 나라 땅인데 너희들이 감히 거기에 사는가?’ 하였습니다. 드디어 이튿날 새벽에 배를 몰아 자산도에 갔는데, 왜인들이 막 가마솥을 벌여 놓고 고기 기름을 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막대기로 쳐서 깨뜨리고 큰 소리로 꾸짖었더니, 왜인들이 거두어 배에 싣고서 돛을 올리고 돌아가므로, 제가 곧 배를 타고 뒤쫓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풍을 만나 표류하여 오키섬(玉岐島)에 이르렀는데…….”

 

안용복의 도해 /울릉도 안용복기념관
안용복의 도해 /울릉도 안용복기념관

 

오키섬에서 안용복은 일본관리들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울릉도와 자산도(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하며 돗토리 번주에게 보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번주로부터 대답이 없자 안용복등은 울릉자산양도감세장’(鬱陵子山兩島監稅將)이라 쓴 깃발을 내세우고 번청으로 달려갔다. 조선의 팔도’(朝鮮之八道) 지도를 가지고 독도가 조선 땅임을 주장했다.

 

안용복 일행의 2차 도일 당시, 오키섬 관할 번청이 보고한 안용복에 대한 공술문서가 시네마현 오키군의 무라카미가(村上家)에 소장되어 있다. 이 문서에는 안용복 등이 2차 도일 때 탔던 배와 인물, 도일 목적, 경위 등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그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용복 등 11인은 515일 울릉도에서 배를 타고 그날 독도에 도착했고, 16일 독도를 떠나 18일 아침에 오키섬 니시무라 해변에 도착해, 20일 오쿠마라로 갔다.

배에는 안용복과 이비원, 김가과, 승려 뇌헌과 연습,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속인 3, 승려 3인동 모두 11명이 타고 있었다.

안용복은 43세로 검은 갓을 썼고, 수정이 달린 줄과 얇은 목면 상의를 입었고, 허리에 패를 찼다. 겉에는 통정대부 안용복 갑오생(1654), 동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안용복, 뇌한, 김가과 등 3인은 번의 관리에게 조선의 팔도지도를 내보이며 8도의 이름을 조선말로 썼다. 안용복이 통역을 맡아 사정을 문답했다.

조선의 팔도 지도에는 다케시마(울릉도)와 마쓰시마(독도)는 강원도 내에 있으며, 마쓰시마는 자산도(子山島)이라는 내용이 있다.

 

안용복은 일본에서 추방되어 강원도 양양으로 돌아왔다. 안용복은 비변사의 조사를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주장하고, 쓰시마의 농간을 밝힌 공이 인정되어 유배형에 처해졌다. 이후 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자료: 이사부총서
자료: 이사부총서

 

성호 이익(李瀷)은 성호사설에서 안용복을 이렇게 평가했다.

안용복은 영웅호걸이라고 생각한다. 미천한 군졸로서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위해 강적과 겨뤄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했으며 한 고을의 토지를 회복했으니, 영특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포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앞서는 형벌을 내리고 나중에는 귀양을 보냈으니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안용복이 탄 배 /울릉도 안용복기념관
안용복이 탄 배 /울릉도 안용복기념관

 

안용복은 독도 문제가 다시 불거진 오늘날,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671월 박정희 대통령은 국토를 수호한 공로는 사라지지 않을 것”(國土守護, 其功不滅)이라는 휘호를 기증했고, 같은 해 10월 안용복장군 기념사업회에서는 부산 수영사적공원(현재 수영구 수영동)에 충혼탑을 세웠다.

 


1) 숙종실록 1696925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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