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라츠의 사요히메 전설
일본 가라츠의 사요히메 전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05.2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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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원정군 남편을 배웅하다 망부석이 됐다는 전설…박제상 부인 전설과 대조

 

일본 사가(佐賀)현 가라츠(唐津)시는 대한해협 건너편 큐슈 해안에 있는 도시다. 가라츠시는 예로부터 한국·중국을 오가는 교통과 무역의 요충지였고, 일본이 한반도를 공격하거나 한반도의 정벌대가 일본을 침공하는 첫 번째 기착지이기도 했다. 백제 25대 무령왕이 이곳 인근의 가카라시마(加唐島)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만든 가라츠도기(唐津燒)가 이곳에서 생산되었고, 이 도시의 에이니치사(惠日寺)란 절엔 고려 동종이 걸려 있다.

 

마쓰우라 사요히메 동상 /위키피디아
마쓰우라 사요히메 동상 /위키피디아

 

카라츠시의 카가미산((鏡山, 284m)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가라츠 시내와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현해탄이고, 저 건너편에 한반도의 남동쪽 부산이 있다. 카가미야마 전망대에는 마쓰우라 사요히메(松浦佐用姫) 동상이 서 있다. 정벌을 위해 출항하는 남편을 전송하는 아내의 동상이다. 이 스토리의 전말을 보자.

 

마쓰우라 사요히메의 송별 그림 /위키피디아
마쓰우라 사요히메의 송별 그림 /위키피디아

 

서기 53710월 이곳에서 센카(宣化)천황의 명령을 받은 오토모노 사테히코(大伴狭手彦)라는 장군이 신라를 공격하기 위해 원정대를 이끌고 출항했다. 사테히코는 일본서기에 두차례 한반도를 공격하는 장군으로 서술되어 있다. 첫 번째가 이 때이고, 두 번째는 긴메이(欽明)천황 23(562) 8, 수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고려(고구려)를 치고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이 동상의 스토리는 사테히코의 첫 번째 원정인 537년 때의 일이다. 일본서기에는 신라가 임나(가야)를 침공했기에 가야를 지키기 위해 일본이 구원하러 원병을 보냈다고 적혀 있다.

일본의 만요슈(萬葉集)에 따르면 왜국은 임나를 지원하기 위해 원정병을 가라츠에 집결시켰는데, 사요하메라는 지역 호족의 처녀가 원정대장인 사테히코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출정일이 다가왔다. 사요히메는 남편을 전송하기 위해 가라츠에서 가장 높은 마쓰우라 운덕에 기어 올라갔다. 여인은 입고 있는 옷을 벗어 흔들며 남편을 전송했다. 남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녀는 울다 지쳐 망부석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삼국유사에 일본에 사신으로 건너간 박제상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치술령에서 망부석이 되었다는 스토리와 비슷하다.

 

오토모노 사테히코와 사요히메의 이별 그림 /위키피디아
오토모노 사테히코와 사요히메의 이별 그림 /위키피디아

 

사요히메 전설은 다양한 버전이 있다. 사요히메가 남편에게서 거울을 선물받았는데, 거울을 바다에 빠뜨렸다. 여인은 거울을 찾으러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것이다. 또다른 버전은 남편이 떠난후 머리는 뱀인 괴물이 남편의 모습으로 둔갑해 나타나 정을 통했으나 들통이 났다는 것이다. 여인은 그후 사라졌다고 한다.

사요히메의 전설은 일본 무용극인 노()의 소재가 되었고, 에도시대의 작가 다키자와 바킨(滝沢馬琴)의 소설 주제가 되기도 했다. 가라츠에는 사요히메를 모시는 신전도 있다.

 

사요히메 신전 /위키피디아
사요히메 신전 /위키피디아

 

사요히메의 전설 이후 1,000년이 지나 일본은 조선침략을 준비하고 가라츠에 병력을 집결시켰다. 임진왜란의 출정이 이곳에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가라츠는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두 나라의 좋은 관계가 지속될 경우 해저터널이 열릴 곳도 이 곳이 될 것이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Matsura Sayohime

Wikipedia, Ōtomo no Satehi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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