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에서 후지산 보았다는 왜장
함경도에서 후지산 보았다는 왜장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05.22 1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토 기요마사, 안변에서 울릉도를 후지산으로 착각…일본에 그림으로 전해져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는 임진왜란 때 왜장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었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에 소속되기도 했다. 임진왜란에서 제2군 장수로 고니시 유키나가와 합세해 조선을 침공했으나 고니시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한양을 함락한 이후 가토와 고니시는 더 이상 함께 작전을 수행할수 없어 공격로를 달리하기로 했다. 결국은 제비뽑기로 결정했는데 고니시는 평양을 공격하고, 가토는 함경도로 진격하기로 했다.

 

함경도로 북진한 가토는 선조의 왕자인 임해군과 순화군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일본측 기록엔 두만강을 넘어 누르하치의 여진 지역을 건너갔다고도 한다. 하지만 함경도는 만만치 않았다. 인구는 적었으나 수풀이 울창해 조선인들이 산간으로 피난을 가거나 도망치면 찾기가 어려웠다. 조선인을 추격하면 적의 기습을 받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호랑이가 잠자는 왜병을 습격했다. 가토 기요마사는 호랑이 잡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전설에는 그가 창을 들고 호랑이와 싸워 포획했다고 한다. 가토 기요마사는 점령지인 함경도에서 호랑이 사냥을 자주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가토 기요마사를 호랑이 가토(虎加藤)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의 본거지였던 규슈 구마모토(熊本)성에는 지금도 조선 호랑이 그림이 걸려 있다.

 

가토가 함경도에서 퇴각할 때 후지산을 보았다는 스토리가 전해진다. 평양성을 지키던 고니시가 명군의 출현으로 퇴각을 하자 1592년말 동쪽의 가토 진영도 퇴각을 해야 했다. 그의 부대는 남하하면서 철령을 넘기 전에 함경도 안변(安邊)에 도착했다. 안변은 원산 남쪽에 강원도와 가까운 동해안의 지명이다. 북한은 안변을 강원도로 편입했다.

 

함경도 안변에서 후지산을 바라보았다는 가토 기요마사(그림) /일본 웹사이트
함경도 안변에서 후지산을 바라보았다는 가토 기요마사(그림) /일본 웹사이트

 

안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멀리 솔방울처럼 생긴 섬이 하나 보였다. 울릉도였다. 지금도 강원도 동해안에서 맑은 날에는 울릉도가 보인다. 가토는 근처 어부에게 저기 바다에 보이는 것이 무슨 산이냐고 물었다. 조선의 어부는 가토에게 그 산이 후지산이라고 거짓으로 대답했다.

후지산은 일본인들에게 영산(靈山)이다. 가토와 왜병들은 울릉도를 후지산으로 착각하고 조선에서 후지산을 바라본 것에 감격했다. 그들은 모자를 벗고 경건하게 해변에 꿇어앉아 향수에 젖은 눈길로 오랫동안 그곳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에서 후지산으로 본 것을 기념한 그림이 많이 남아 있다. 물론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더라도 그들은 조선을 점령하고 고국을 바라보았음을 기억하려는 것이다. 가토의 착각은 그림 뿐아니라 토산품에도 자주 그려지고 있다.

 

함경도 안변에서 후지산을 바라보았다는 가토 기요마사(그림) /일본 웹사이트
함경도 안변에서 후지산을 바라보았다는 가토 기요마사(그림) /일본 웹사이트

 

가토는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1597년 정유재란 때 조선을 재침했다. 그는 울산성 전투에서 농성을 했으나 조명 연합군에 포위당해 식량과 식수가 고갈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살아났다. 그는 구원군의 도움으로 퇴각했는데, 그때 나온 경상도 민요가 쾌지나 칭칭나네라고 한다. 철수하는 가토 군을 보고 조선민중이 쾌재라 청정(清正)이 나가네라고 환호한 것이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강원도 동해시 초록봉에서 바라본 울릉도 /촬영=이효웅
강원도 동해시 초록봉에서 바라본 울릉도 /촬영=이효웅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