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지만 아름답게 그려진 누만티아 포위전
졌지만 아름답게 그려진 누만티아 포위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05.25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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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33년 스페인에서 있었던 켈트족과 로마의 전투…전원 자결로 저항

 

유대인들이 강력한 로마군에 맞서 자결로 항전한 마사다 전투는 많이 알려져 있다. 기원후 72~73년의 일이다. 그에 앞서 200여년전에 유럽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에서도 죽음으로 저항한 전투가 있었다. 동양식으로 표현하면 옥쇄(玉碎) 투쟁이다. 대의나 충절을 위해 죽음을 옥처럼 아름답게 버린다는 뜻이다.

로마제국은 BC 2세기초부터 이베리아반도 지중해 해안을 정복하고, 서서히 내륙으로 들어갔다. 내륙에는 켈트족이 살고 있었다. 켈트족은 BC 181년 이후 두차례의 켈트 전쟁을에 패해 BC 151년에 로마에 복속했다. 하지만 유독 한 곳에서 로마에 저항하고 있었으니, 누만티아(Numantia)에 살고 있던 부족이다.

누만티아는 스페인 북부 소리아주의 작은 언덕에 위치한 유적지다. 이 언덕에서 BC 133년에 역사적인 전투가 있었다.

 

누만티아 유적 /위키피디아
누만티아 유적 /위키피디아

 

누만티아의 저항은 10년전인 BC 143년부터 시작되었다. 누만티아 부족이 로마의 지배를 거부하고 독립을 요구했다. 로마는 여러 차례 군대를 보내 설득도 하고 공격도 했지만 그들은 끝내 복속을 거부하고 독립을 요구했다. 이 조그마한 땅 하나 떼주어도 될 터인데 제국은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 한군데라도 자유를 주면 다른 곳도 들고 있어나 자치든 독립을 외칠 것이므로 용서할수 없었다. 예외는 없어야 했다.

누만티아 위치 /위키피디아
누만티아 위치 /위키피디아

 

결국 로마 원로원은 당대 최고의 장군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Scipio Aemilianus)를 원정대 대장으로 파견하기로 했다. 그는 3차 카르타고 전쟁에서 승리해 카르타고를 폐허로 만든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조그마한 부족 전투에 투입키로 한 것이다.

병력은 2~4만명으로 추산된다. 누만티아의 병사는 4,000명으로 비정되는데 로마는 그의 5~10배나 되는 대병력을 투입한 것이다. 게다가 북아프리카의 기병대, 12마리의 코끼리도 동원횄다. 스키피오는 전투를 할 생각이 없었다. 엄청난 군대와 막강한 무기로 겁을 주어 항복을 받아내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누만티아는 항복은커녕 강하게 저항했다. 스키피오도 명장중 명장이다. 작은 것과 싸워 희생자를 내기보다는 괴롭히자는 쪽으로 전투 방향을 정했다. 로마군은 누만티아 성 둘레 9구간에 높은 울타리를 치고 해자를 파서 그 땅을 고립시켜 버렸다. 주변엔 높은 탑을 세워 적이 넘어오면 저격했다. 꼼짝 못하게 가둬 굶어 죽이자는 것이다.

로마군의 포위전략으로 굶주림과 고립을 견디다 못해 누만티아측은 협상자를 보냈다. 사자들은 자유를 달라고 했다. 스키피오는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완전한 항복을 요구했다. 서로 협상의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누만티아의 사자는 진영으로 돌아갔다. 의심 많은 누만티아 군중들은 사자가 타협을 하고 돌아왔다고 의심하면서 죽여버렸다. 그들은 일체의 협상을 거부하고 항전에 지속했다. 굶주림은 계속되었다.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런 것은 굶주림이다. 카니발리즘도 있었다. 포위는 8개월이나 지속되었다. 더 이상 버틸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그들은 노예가 되느니, 자결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성을 불태우고 자결해 버렸다.

스키피오가 누만시아에 발을 디뎠을 때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스키피오는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너는 죽었지만 나를 이겼구나.”

 

누만티아 전투장면 그림 /위키피디아
누만티아 전투장면 그림 /위키피디아

 

이 끔찍한 역사는 정복자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로마의 역사가들은 적이었지만 끝가지 투쟁한 루만티아를 아름답게 서술했다. 돈키호테의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희곡 누만시아’( La Numancia)를 써서 그들의 고통과 애환을 후대에 전달했다. 스페인 왕국은 1882년 누만티아 폐허를 국가기념물로 지정해 보전하고, 1919년엔 박물관도 만들었다. 만화작가들은 전투를 지휘한 가상의 인물 엘 자바토(El Jabato)를 지어내 영웅시했다.

루만티아들은 지금 스페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다른 종족이다. 하지만 스페인인들은 자기네 땅에서 벌어졌던 고귀한 투쟁을 자신들의 역사에 남겨 젊은이들의 롤모델로 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마사다 옥쇄를 기리는 것과 다른 양상이다.

 


<참고자료>

Wikipedia, Siege of Numantia

Wikipedia, Numan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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