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수·당의 경계선 랴오허
고구려와 수·당의 경계선 랴오허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06.0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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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과 만주를 가르는 자연지형…1958년 랴오허와 혼하·태자하로 분리

 

중국의 중원과 만주를 가르는 지리적 경계가 랴오허(遼河)이다. 고대 이래 랴오허의 동쪽엔 한족과는 다른 민족이 살았다. 한족은 동쪽 이민족의 지역을 랴오허의 동쪽, 즉 요동(遼東)이라고 불렀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당나라는 요동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해 지배했고, 또다른 한족정권인 명나라가 요동 남부 일부를 점령해 만주족과 대치했다. 랴오허의 서쪽은 요서(遼西)라 했다.

 

랴오허 /위키피디아
랴오허 /위키피디아

 

고구려 영양왕 24(613)에 수 양제가 군대를 이끌고 요수에 도착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 이렇게 적었다.

모든 군사가 모여들어 강 앞에 큰 진을 쳤다. 우리의 병사들은 물을 사이에 두고 방어하였기 때문에 수나라의 병사가 건너오지 못하였다. 양제가 공부상서 우문개(宇文愷)에게 명하여, 요수의 서쪽 언덕에서 세 개의 부교를 만들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된 후, 부교를 끌어 동쪽 언덕으로 잇고자 하였다. 그러나 부교가 1() 정도 짧아서 언덕까지 닿지 못하였다.”

요수(遼水)는 랴오허를 말한다. 수 양제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치려고 랴오허를 넘어오는 장면이다.

랴오허는 고구려와 수나라의 경계선이었다. 당시 수나라 대군과 맞서 싸운 요동성과 안시성은 랴오허 동쪽에 쌓은 고구려 성이었다. 랴오허는 고구려가 한족 정권을 방어하기 위한 해자 역할을 했다.

 

랴오허 유역 /위키피디아
랴오허 유역 /위키피디아

 

랴오허는 중국 지역에 위치하고, 내몽골과 만주지역에서 가장 큰 강으로, 중국 7대강으로 꼽힌다. 이 강의 하류는 남쪽으로 할러 발해만으로 흘러 서해로 빠져나간다. 총길이는 1,390km이며, 유역면적은 21.9으로 한반도 넓이보다 조금 넓다.

강은 크게 동()랴오허, (西)랴오허로 나누어 진다. 동라오허는 지린성 동남부 하다링(哈达岭) 서북 기슭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흘러 랴오위안시를 지나 얼룽산 댐을 거쳐 랴오닝성 창투현 푸란뎬구에서 서원과 합쳐진다. 서랴오허는 내몽골을 흐르는데, 그 일부가 시라무렌 강이다.

 

랴오허 주변엔 고대부터 인구가 모여 살았다. 그 중심이 요심(遼瀋) 지역, 즉 랴오양(遼陽)과 선양(瀋陽). 푸순(撫順) 등이 있다. 랴오양과 선양은 요동 평원의 중심도시인데 선양은 랴오허의 지류인 혼하(渾河), 랴오양은 태자하(太子河)를 끼고 있다. 랴오허를 기반으로 거란족의 요()나라가 일어나 한족 정권인 송나라를 압박하기도 했다.

랴오허 유역에는 넓은 퇴적 평야가 발달해 예로부터 콩, 옥수수 등의 곡창지대다. 하천 유역은 비옥한 평야 지역으로 각종 지하 자원과 농작물이 풍부하다. 둥베이 지방 최대의 공업 지대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비가 집중되어 하천 유역에서는 홍수가 자주 일어나 특히 서랴오허 강 유역에 범람이 잦았고, 물길이 자주 바뀌었다. 하류엔 습지와 택지가 많아 고대로부터 대규모 치수와 자연개조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랴오허와 훈허(渾河), 타이쯔허(太子河)는 하나로 합류해 발해만으로 흘러 들어갔다. 바다에 다가가 둘로 갈라져 삼각주 지형을 이뤘다. 타이쯔허 강변 절벽에 고구려 백암산성(白巖山城)이 있었다.

중공정권은 1958년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일으켜 랴오허과 훈허, 타이쯔허를 갈랐다. 중국은 외()랴오허를 가로막아 훈허와 타이쯔허가 랴오허에 흘러드는 것을 막고 옛랴오허가 흐르던 바닥으로 강줄기를 만들어 독립수계를 만들었다. 훈허와 타이쯔허는 발해만 입구 잉커우(營口)로 빠져나간다. 이에 따라 옛 랴오허는 두 개의 독립된 강으로 분리되었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Liao River

남의현, 遼河로 다시 보는 글로컬 공간, 만주, 2019, 강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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