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조사한 송산리 고분군, 이제야 탐사
일제가 조사한 송산리 고분군, 이제야 탐사
  • 이인호 기자
  • 승인 2019.07.1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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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물리탐사 통해 무녕왕릉 주변에 41기 고분 존재 가능성 확인

 

일본은 조선을 강점할 때 백제의 고분을 상세하게 발굴하고 조사했다. ()와 백제의 친연선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70여년이 지났는데도 백제 고분군에 대한 우리의 발굴은 한참이나 뒤져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백제 웅진 도읍기의 왕실묘역으로 추정되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사적 제13)이다.

이 일대에 백제의 왕릉이 있다는 사실은 조선시대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등에서 이미 알려져 있었다.

일본 강점기에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이란 고고학 전문가와 조선총독부박물관이 1927년에서 1933년 사이에 이 지역에 대한 발굴을 실시해 당시 총 29기의 고분이 있음을 보고했다. 그때 보고서에 사신도(四神圖)가 그려진 벽돌무덤(塼築墓, 6호분)과 돌방무덤(石室墓, 1~57~829) 8기의 발굴기록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는데, 그게 송산리 고분군에 대한 기록의 전부였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문화재청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문화재청

 

이제 문화재청 산하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송산리 고분군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2~3월에 문헌조사와 사진조사를 동반한 실내조사를 시행한 뒤에 4월 이후에 고고학 지표조사를 시행해 41기의 존재 가능성을 확인했다.

백제 고분은 신라와 가야 고분과 달리 지하에 매장시설을 두고 봉분을 크지 않게 조성했기 때문에, 지표면에서 고분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번 조사에는 현대적 탐사방법인 지하물리탐사 기술이 동원되었다. 전기와 진동을 이용해 땅 속의 구조물이나 매장문화재의 분포를 판단하는 기술인데, 이 방법으로 그동안 위치를 알 수 없었던 7~9호와 29호분의 흔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일제가 고분의 위치를 표시한 사진자료와 현재 촬영한 사진자료를 기초자료로 활용해 고분들의 현재 위치를 추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추가로 발견한 41기의 고분이 일제 때 보고된 29기와 얼마나 중복되는지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고 부여문화재연구소측은 밝혔다. 다만 일본인들의 기록상에 남아있던 고분들의 위치를 추가로 파악했다. 연구소는 내년부터 추정 고분들의 본격적인 조사를 단계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 조사 전경 /문화재청
공주 송산리 고분군 조사 전경 /문화재청

 

이번 짧은 조사에서 연구소측이 성과로 내놓은 것은 지표면에서 발견한 중방(中方)’이란 글자가 새겨진 벽돌이다. 무령왕릉과 6호분에 벽돌을 쌓아 터널형태의 무덤방을 만들었는데, 그 무덤방에 나온 벽돌 가운데 중방이란 글씨가 새겨진 30여점의 벽돌과 유사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그동안 주로 일본인에 의해 조사되었고, 이후로도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송산리 고분군을 우리 손으로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었다.

 

지하물리탐사를 통해 확인한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문화재청
지하물리탐사를 통해 확인한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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