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비판에 영화 ‘더 포스트’ 기억하나
청와대 비판에 영화 ‘더 포스트’ 기억하나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7.18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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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NYT 폭로…미 행정부, 자기 도발로 촉발된 통킹만 사건 역이용하려다 곤욕

 

청와대가 한일 경제 갈등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 칼럼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청와대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며 칼럼의 일본어판 제목을 지적했다.

고민정 대변인이 나섰다. 고 대변인은 17일 브리핑에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칼럼들이 일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제목이 바뀌었고, 일본 국민들에게 한국의 여론을 잘못 이해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것이 진정 우리 국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인지 묻고 싶다면서,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지혜를 모으려고 하는 이때에 무엇이 한국과 우리 국민들을 위한 일인지 답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두 신문 칼럼의 일본어 번역에 대한 문제가 MBC의 한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알려졌고, 언론시민단체들이 16일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이어 청와대 대변인이 공식 입장을 발표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국 민정수석도 페이스북에서 두 언론사 일본어 번역판을 문제 삼으면서 매국적 제목이라고 비난했다.

고 대변인은 칼럼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본인들 구미에 맞게 제목을 단데 대해 이의를 제기했지만, 속내는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고 대변인이 두 언론의 번역 기사가 야후재팬에서 2, 3위에 랭크되었다는 점을 밝힌데서 청와대의 의중을 읽을수 있다.

 

고 대변인과 조 수석의 메시지가 나오자 KBS, YTN, 한겨레신문 등 친여 언론들이 나서 두 언론의 칼럼에 포화를 퍼부었다.

한겨레는 “‘혐한부추기는 조선일보 등의 일본어판 제목 왜곡’”이라는 18일자 칼럼에서 “(두 신문이) 일본어판 제목을 그렇게까지 바꾼 건 의도적으로 팩트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면서 아무리 일본 포털 조회수나 정파적 이해가 중요하다 해도 언론으로서 적절한 선은 지키기 바란다고 했다.

 

영화 ‘더 포스트’ 포스터 /네이버 영화
영화 ‘더 포스트’ 포스터 /네이버 영화

 

당사자의 하나인 중앙일보가 18일자 사설에서 언론이 정부 비판하면 매국인가라며 청와대의 인식에 대한 입장을 내놓았다.

중앙일보 사설은 서두에서 베트남전의 실상을 알린 워싱턴포스트와 미국 정부의 갈등을 그린 영화 더 포스트의 사례를 들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국익을 해친다는 이유로 보도를 막기 위해 법원에 보도금지 조치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미국 법원은 권력의 일방적 판단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으며,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 보장돼야 한다며 워싱턴포스트의 손을 들어줬다.

중앙일보 사설은 청와대의 시각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편협한 시각과 사고가 걱정스럽다. 청와대의 고위 공직자가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언론관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해국(害國)’ 행위다. 그리고 무엇이 국익을 위하는 것인지를 정치권력인 청와대가 판단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독선(獨善)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잘못된 정책으로 가는 정부를 보고도 언론이 입 다물고 눈치만 보는 게 과연 국익을 위하는 것인가. 중앙일보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망국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면 중앙일보가 예시한 영화 더 포스트’(The Post)의 내용과 당시 상황을 알아보자.

더 포스트는 언론의 참 가치를 보여준 타큐멘터리 영화로, 1971년 펜타곤 문서를 폭로한 워싱턴포스트의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

 

196482일 북베트남 통킹(Tonkin)만 해상에서 해군은 북베트남 해군에 선제공격을 가했다. 이에 북베트남 어뢰정 3척이 미 해군 구축함 USS 매독스함에 반격했고, 미 해군은 항공모함과 함재기를 동원해 북베트남의 어뢰정 3척에 손상을 입히고 4명의 사망자와 6명의 부상자를 냈다.

미국은 자기들의 도발로 시작된 이 전투를 역이용했다. 당시 미국은 남베트남에 미군을 파견해 베트콩 진압에 나섰지만, 북베트남엔 개입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독립국인 북베트남을 공격하고, 전쟁을 확대했다.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는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기록물로 남겨 국방부1급 기밀문서로 보관하고 있었다. 펜타곤 문서(Penagon Papers)로 알려진 이 보고서는 2차대전 직후인 1945년부터 19685월까지 미국이 인도차이나에 개입한 기록을 담았다. 책임자는 맥나마라 장관이었고, 대니얼 엘스버그(Daniel Ellsberg)라는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 연구원이 문서작성 과정에 참여했다.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엘스버그는 전직 해군 장교로, 처음에는 인도차이나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적극 지지했으나 펜타곤 문서 작성이 끝나갈 무렵에는 미국의 인도차이나 개입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인도차이나에서의 미국의 저의를 폭로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을 강하게 느꼈고, 몰래 극비문서를 빼돌려 평소에 잘 알던 뉴욕타임스의 닐 시한(Neil Sheehan) 기자에게 넘겼다. 뉴욕타임스는 19716136개 면에 걸쳐 이 문서를 폭로, 보도했다.

이 펜타곤 문서 안에는 통킹만 사건을 비롯해 프랑스 점령시의 미군의 지원 베트남전 확대정책 북베트남 침공등의 극비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베트남 관계: 1945-1967’(United StatesVietnam Relations, 19451967)이라는 공식명칭의 이 보고서는 총 47권에 약 3,000쪽의 설명과 4,000쪽의 부속 서류로 구성되어 있다. 보고서에는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법률적,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내용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다.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영화 더 포스트1971년 뉴욕타임스와 함께 펜타곤 보고서를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실화를 소재로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지휘를 맡았고, 메릴 스트립이 워싱턴포스트의 오너인 캐서린 그레이엄 역할을, 톰 행크스가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 역할을 맡았다.

1971년의 상황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건물이 드러나고 활자 신문을 짜는 조판공, 윤전기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신문의 잉크 냄새 물씬 나는 영화다.

더 포스트는 미국이 30년간 은폐해 온 베트남 전쟁의 비밀이 담긴 정부기밀문서를 세상에 폭로하기 위해 언론사의 운명을 건 워싱턴포스트 오너와 편집국장, 기자들 소명의식을 고스란히 그려냈다.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의 지시로 작성된 펜타곤 문서에는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미국 대통령이 어떻게 베트남전 개입을 숨겨왔는지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미국의 참전 계기로 알려진 북 베트남군 선제공격(통킹만 사건)이 모두 조작이었고, 승산 없는 전투에 계속된 파병, 선거 조작, 거짓 선언으로 전 세계를 우롱하며 전쟁을 확대해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펜타곤 문서작성에 참여한 댄 엘스버그는 진실을 깨닫고 7,000장에 달하는 이 문서를 뉴욕타임스에 제보했고, 1971613일 문서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후 1971615일 닉슨 정부는 이를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라며 후속 보도를 금지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도 그 중 4,000여 페이지를 입수했다. 여성 발행인이었던 캐서린 그레이엄은 보도를 망설였다. 이 문서를 보도할 경우 상장 무산으로 자금수혈이 어려워지고, 회사의 존폐를 고려해야 했다. 게다가 캐서린은 자신의 친구인 맥나마라에게 위험을 줄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언론인의 사명감으로 문서 보도를 주장한 편집장 벤 브래들리의 설득에 그녀는 백악관의 탄압에 맞서 보도를 결심했다. 워싱턴포스트의 펜타곤 문서보도 실화는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폭로로 남았고, 이후 미국 최대의 정치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이어졌다.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이끌렸다오늘날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놀라웠고,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영화 제작의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스필버그는 언론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자유로운 보도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라며 연출 의도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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