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지방제도⑤…전주(全州), 마한의 영역
신라의 지방제도⑤…전주(全州), 마한의 영역
  • 아틀라스
  • 승인 2019.03.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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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 소경, 10개 군, 31개 현 설치…마한 문화가 꽃피운 곳

 

전주(全州)는 백제의 완산주(完山州)를 이어받아 만든 9주의 하나다. 대체로 지금의 전라북도와 오버랩되는데, 충남 지역에 진례군(금산군)과 덕은군(논산시)이 보태졌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진흥왕 16(서기 555)에 주로 만들었다가 10년 후인 진흥왕 26년에 주를 폐지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진흥왕 때 신라가 전북 지역을 완전히 병합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진흥왕은 재위 16(555년에 화왕군(火王郡, 경남 창녕)에 완산주(完山州)를 설치하고 하주정(下州停)을 두었지만, 진흥왕 26년에 하주정이 대야주(大耶州 합천)로 옮기면서 폐지되었다.

660년 백제가 신라에 의해 패망하자 당나라는 백제의 고토에 웅진 도독부를 설치했다. 웅진도독부는 전라북도 일대에 고사주(정읍), 노산주(익산 함열 일대), 지심주(남원, 임실지방) 3개주를 구획했다. 3주는 명목상의 행정구획으로 백제 부흥운동과 나당 전쟁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이내 무너졌다.

685년 신문왕 5년에 전국의 행정구역을 9주로 재정비하면서 백제의 중부지방에 지금의 전주시 일원을 치소로 완산주를 설치했다. 757년 전국의 행정구역명칭에 대한 개혁을 단행하면서 완산주를 전주(全州)로 개명했다.

치소(治所)는 지금의 전주다. 757년 개편 당시 완산주는 남원경의 1개 소경(小京)10개 군, 31개 현을 통치했다.

신라군은 이 지역에 군사구역 10()의 하나인 거사물정(居斯勿停)을 설치했다.

 

그림=김인영
그림=김인영

 

 

전주와 그 남쪽의 무주는 마한의 영역이었다.

백제 온조왕이 마한을 공격하자 마한의 잔여세력은 노령산맥 이남으로 내려가 소국 집단을 형성했다.

백제는 신라와 가야와 발전과정이 달랐다. 신라는 진한의 한 부족에서 출발했고, 가야는 변한에서 나왔다. 이에 비해 백제는 마한과의 충돌과정을 거치면서 한강유역에서 충청권, 호남지역으로 남하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는 온조로 대표되는 고구려계 유이민들이 마한지역에 유입해 마한을 병합해 나갔으며, 호남지역이 가장 늦게 백제에 병합됐다. 그러면 백제가 병합하기 이전의 호남지역의 마한은 어떤 문화를 형성했을까.

전남대 임영진 교수(인류학)에 따르면 호남의 마한 문화는 경기 충청 지역의 백제 문화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마한이 중국·일본과 활발한 교류를 했고, 이웃 문화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백제 문화와 차이점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호남의 마한 문화의 특징을 임 교수는 다음 몇가지로 설명한다.

벼농사 시작: 우리나라 벼농사는 중국 양쯔강 유역에서 해로로 호남지역에 도입됐을 가능성이 높다. 나주시 가흥리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벼의 꽃가루가 그 가능성을 일부 입증한다.

중국 강남지역의 지석묘와 관련성: 중국 절강성에서 소수의 지석묘가 발견되는데, 지석묘가 성행한 호남지역을 기원으로 했을 가능성이 있다.

동사(銅鉇)의 사용: 종이가 개발되기 이전의 고대에는 기록을 나무 조각에 새겼는데, 이를 목간(木簡)이라고 한다. 목간에 글을 새기려면 칼이 필요한데 이것이 동사다. 기원전 2세기경의 것으로 보이는 동사가 마한 권역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중국 초나라에서 성행했던 것이다.

도씨검: 도씨검은 고대 중국의 대표적인 동검으로,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이 사용했다. 이 도씨검이 완주·익산·함평 등지에서 출토됐다.

분구묘: 분구묘는 지상에 거대한 분구를 만들고, 그 안에 가족을 매장하는 합장묘다. 영산강 유역에서 분구묘가 성행했는데, 중국 강남지역의 토돈묘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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