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상인 코사크족, 시베리아 약탈하다
모피상인 코사크족, 시베리아 약탈하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7.2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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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비르칸국 멸망후 50년만에 시베리아 확보…원주민 대학살

 

1598년 징기스칸의 후예 시비르 한국(汗國)을 멸망시킨 후, 러시아에겐 동쪽에 장애물이 제거되었다. 그들은 급속하게 시베리아로 진출했다. 러시아인들은 시비르 한국의 동부 지역을 시베리아(Siberia)라 불렀다.

러시아의 두 번째 팽창은 카잔, 아스트라한, 노가이 한국을 멸망시킨 첫 번째 팽창과 달랐다. 그들의 행로에는 막아서는 군주가 없었고, 그들의 침략은 외교적 마찰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당대 서유럽 열강들은 시베리아에 관심이 없었다.

황제(차르)는 자신이 책임지지 않고, 상인과 기업가, 코사크인에게 감독을 맡겼다. 보에보다(vojevoda)라는 지사는 지방의 준독립적 군벌조직으로, 황제를 대리해 국경을 동쪽으로 밀고 나갔다.

그들은 현지부족과 협상을 벌였다. 협상의 목적은 러시아의 안보가 아니라, 부를 긁어내는 것이이었다. 그들이 노리는 부()부드러운 금이라 불렸던 모피였다.

 

1522~1896년 사이 러시아의 팽창 /위키피디아
1522~1896년 사이 러시아의 팽창 /위키피디아

 

러시아의 17세기는 시베리아 진출기였다. 러시아인들은 점과 점을 선으로 연결하며, 동쪽으로 한발한발 나아갔다. 몽골-투르크 계통의 타타르인들을 공격하고 방어하기 위해 요새를 지었고, 강과 도로를 따라 선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코사크족을 앞세워 타타르족을 제압해 나갔다. 처음에는 평화를 제의했다. “너희들이 러시아 황제(차르)에 복종하고, 모피를 가져오면 댓가를 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군대로 복수를 할 것이다.” 굴복하는 종족도 있었고, 저항하는 종족도 있었다. 동양적 조공에 익숙한 타타르족에게서 러시아인들은 차르에게 바치는 조공(야사크, yasak)으로 모피를 요구했다.

저항하는 종족에게는 가차없는 보복이 가해졌다. 거의 씨를 말리다시피 진압했다. 몽골족이 대초원을 지나 유럽을 공략하던 때의 모습을 러시아인들의 앞잡이 코사크인들은 그대로 답습했다.

러시아인들은 1586년 튜멘(Tyumen), 1587년 토볼스크(Tobolsk) 요새에 이어 1594년에 수르구트(Surgut)와 타라(Tara)에도 요새를 건설했다. 시베리아 북쪽에도 진출해 1593년 베료조보(Beryozovo), 1600~01년에 망가제야(Mangazeya)에도 작은 요새를 만들었다.

러시아인과 그들의 앞잡이 코사크인들이 부딛친 종족은 추운 시베리아에 산재해 있던 소수 민족이었고, 인구나 무기도 변변치 않았다. 활이나 창이 고작이었고, 어떤 종족은 돌을 던져 방어했다. 코사크족들은 총과 야포로 무장했기 때문에 정복은 땅집고 헤엄치기 식이었다.

 

토볼스크 요새 /위키피디아
토볼스크 요새 /위키피디아

 

1602년에 케트스크(Ketsk)에 이어 1604년에 시베리아 중부에 톰스크(Tomsk)를 건설하고, 1606년에는 몽골에서 북극해로 흐르는 예니세이 강(Yenisei River)을 발견했다.

데미드 퍈다(Demid Pyanda)라는 전설적인 탐험가가 있었다. 그는 1620년부터 1624년까지 3년 반 사이에 미지의 시베리아 지역을 무려 8,000km나 탐험했다고 한다. 그는 레나(Lena) 강을 발견하고 야쿠트(Yakut) 족 거주지역까지 확인했다. 이어 바이칼호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몽골족 브라야트족과 접촉했다.

러시아인들은 탐험가들이 한번 스치고 지나간 땅을 자기네 땅으로 만들었다. 야쿠츠크, 예니세이스크, 브라트스크등 종족명을 따서 요새를 만들고, 그곳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그리고 그 거점을 통해 부족들을 지배하고 모피 조공을 받았다.

모스크바의 차르는 상인들이 가져온 모피와 담비가죽을 서유럽과 오스만투르크에 팔아 많은 이문을 남겼고, 그것을 재정에 보탰다.

 

데미드 퍈다의 탐험로 /위키피디아
데미드 퍈다의 탐험로 /위키피디아

 

러시아 제국은 요새를 통해서 시베리아에 진출했다. 러시아인들은 수로와 육로의 중심지에 요새도시를 건설했다. 먼저 코사크인들이 강과 계곡을 탐사하고, 보예보다가 병사들을 데리고 기지를 구축했다. 요새는 지역의 거점이었고, 요새와 요새 사이에 선으로 연결하며 동쪽으로 향했다.

요새의 목적은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인근 부족들을 복속시켜 모피와 담비 조공을 받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긴 교역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모피가 고갈되자, 러시아인들은 검은담비, 수달, 밍크와 같은 동물들을 찾아 동쪽으로 이동했다. 러시아인들에게 엘도라도(Eldorado)는 방한용 가죽을 제공하는 동물들의 서식지였다.

주둔지에는 러시아 병사들 스스로 먹을 것을 찾기도 어려웠다. 농산물이 적었기 때문이다. 요새와 요새 사이가 멀었기 때문에 서로의 연락도 쉽지 않았고, 본국과는 몇 달이 걸려야 보고와 지시가 내려왔다. 그들은 스스로 판단에 의해 진로를 결정해야 했다.

원주민들은 척박한 땅에서 사는데 익숙해 작은 농산물과 비축물로도 생계를 유지할수 있었지만, 외지에서 온 러시아인들은 자급자족을 하지 못했다. 모스크바의 중앙정부는 지방 정부가 알아서 해결하라며 지원을 중단했다. 결국은 시베리아의 러시아인 첨병들은 원주민 부족들을 약탈할 수밖에 없었다.

 

정복자들은 냉혹하고 잔인했다. 레나강 유역의 야쿠트족, 캄차카 반도의 코르야크족, 축치족은 살인마의 만행에 시달렸다. 정복자들은 다른 민족의 고유한 관습에는 흥미가 없었다. 시베리아 부족에 대한 선교적 열정도 없었다. 러시아인들의 눈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동물이나 다름없었다. 초원과 냉대삼림, 툰드라에 거주하는 부족들은 저항을 할수 없었다. 야쿠트족은 코사크인들이 요구한 모피 공물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목이 갈고리에 걸려 매달려 죽었으며, 인구의 70%가 줄어들었다.

러시아인들이 가져온 질병도 시베리아 부족들에겐 대량살상의 무기였다. 역사학자 존 리처드(John F. Richards)에 따르면, 1630년대에 서시베리아에 천연두가 전염되어 빠르게 동쪽으로 이동했다. 1650년에는 예니세이강으로 이동했고, 야쿠트족의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반 모스크비틴(Ivan Moskvitin)이란 탐험가는 1639년 마침내 태평양에 이르러 그 바다의 이름을 오호츠크해라고 명명했다. 1648년 알릭세이예프 포포프(Fedot Alekseyev Popov)라는 상인은 원정대를 구성해 동방으로 진출했는데, 그들은 최초로 시베리아 가장 동단까지 가서 베링해를 발견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시비르 한국을 멸망시킨후 50년만에 시베리아 전 지역을 발견했다. 러시아는 러시아인 또는 코사크족이 한번 밟은 땅을 자기네 땅으로 만들어 세계 최대의 영토를 확보하게 되었다.

 

1620~1630년, 러시아의 남하 /위키피디아
1620~1630년, 러시아의 남하 /위키피디아

 

동쪽으로 진행하던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단은 서서히 보다 따뜻하고 사람이 많이 사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들은 곧이어 남쪽으로 몽골족이 살고 있는 바이칼호와 중국과의 접경인 아무르강(흑룡강)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시베리아 남쪽에는 중국과 몽골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몽골족과의 첫 접촉은 바이칼호 주변에 사는 브라야트족이었다. 브라야트 족은 우리민족과 거의 비슷한 문화적 풍속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라야트족은 지금까지 러시아가 상대한 종족 가운데는 가장 강력한 종족이었다.

브라야트족은 외몽골의 칼하(Khalkha)족에 조공하는 속국임과 동시에 인근에 에벤키족으로부터 조공을 받는 상국이었다. 코사크인들은 러시아를 대신해 에벤키족을 제압하고, 브라야트족에게 조공을 바치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몽골에 조공하므로, 조공할수 없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브라야트족은 곧이어 코사크의 무장력에 굴복해 러시아 차르에게 조공을 바치겠다고 물러섰고, 러시아측도 브라야트 족장에게 러시아 귀족칭호를 주는 것으로 신속(臣屬)시켰다. 브라야트의 러시아 신속은 몽골을 통해 청()나라에 보고되었을 것이다.

이제 러시아인들은 아무르강 유역의 또다른 몽골족인 다우르(Daur) 족과 충돌하게 된다. 다우르 족은 청 황제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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