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이 끝나자 영국은 1945년 9월 5일 말레이반도에 복귀했다. 영국은 일본이 태국에 넘겨준 북부 4개 주를 돌려받았다.

전쟁으로 반도의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일본이 지배하던 4년 동안에 말레이인 술탄과 귀족들은 일본에 협조했고, 중국인으로 구성된 말레이공산당(MCP)이 영국의 지원을 받아 일본군에 저항했다. 밀림에서 항일투쟁을 벌이던 인민군(MPAJA)는 그해 12월 해산하고 후일을 대비해 무기를 숨겨두었다. 공산당이 자싱에 올라와 대중투쟁을 벌였다.

영국은 전쟁 중에 준비해 두었던 말라야연합(Malayan Union) 방안을 꺼내 들었다. 말라야 9주와 영국 직할령 2주(말라카, 페낭)를 합쳐 11개 주로 편성하되, 독립할 때까지 영국이 직접통치한다는 것이었다. 싱가포르는 제외되었다. 이 방안에는 술탄제를 폐지하고, 말레이인과 비말레이인을 등등한 시민으로 대우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부역자들을 끌어내리고 동맹세력을 지원하려는 영국의 속셈이 비쳐졌다.

말라야연합은 1946년 4월 1일 시행되었다. 이 제도는 전쟁 전에 영국이 “말라야는 말레이인의 나라”라며 중국인과 인도인을 차별하던 정책과 배치된다. 게다가 잠시 돈벌러 왔다가 돌아갈 것이라던 중국·인도인들이 눌러 앉을 경우를 합법화하고 동등한 시민권을 준다면 본토박이 말레이인을 무시하는 처사가 된다. 가장 분노한 계층은 술탄과 귀족계급이었다. 말레이인 지배자들은 제한적인 자치권도 빼앗겼다. 술탄과 귀족층들은 말레이인을 부추겨 영국이 주도하는 말레이연합에 저항했다.

1946년 5월 10일 말레이인 지배계급은 연합말레이인민족기구(UMNO, United Malays National Organisation)를 결성하고 의장에 조호르주 수석장관 출신인 다토 온 빈 자파르를 선출했다. 말레이 지식인으로 구성된 말레이국민당(MNP)도 영국의 직접통치를 반대했다.

 

 

전후 세계는 빠른 속도로 냉전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영국과 말레이공산당과의 우호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공산당은 즉각적인 독립을 요구하며 영국군의 철수를 주장했다. 공산당내에도 강경파 친펭(陳平)이 당권을 장악하고 투쟁일변도 노선을 이끌었다.

공산당은 전국적인 총파업을 전개했다. 농촌에서도 지주계급에 대한 저항운동이 확산되었다. 식민당국은 파업을 분쇄하기 위해 경찰과 군인을 투입했다. 기업가와 지주들은 파업참가자들을 대량해고했고, 당국은 이들을 본국으로 추방했다. 좌익 행동주의자들이 지주와 지배인을 잇달아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식민당국은 좌익을 제압하기 위해 지배 계급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영국은 시행한지 2년이 채 못되어 말라야연합을 철회하고, 1948년 2월 1일부로 말라야연방(Federation of Malaya)으로 전환했다. 말라야연방은 직할령인 말라카 2개주와 9개 술탄주로 구성된다. 9명의 술탄이 복귀했다. 영국 보호령의 상태에서 그들은 자치권을 부여받았다.

식민당국은 곧이어 1948년 6월 16일부로 치안유지를 위해 비상사태(State of emergency)를 선포했다. 비상사태 하에 식민정부는 반영단체를 불법화하고 해체했다. 공산당이 해체되고, 반영운동에 적극적이던 말레이국민당도 소멸 위기에 처했다. 좌파정당이 제거된 공간에서 UMNO는 말레이인 지배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독보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다.

공산당은 게릴라전으로 전환했다. 그들은 1949년 말레이민족해방군(Malayan National Liberation Army)을 조직하고, 숨겨두었던 무기를 들고 다시 밀림으로 들어갔다. 말레이공산게릴라들은 많았을 때 1만3,000명에 이르렀다.

 

 

영국은 말라야연방의 독립을 추진했다. 2차 대전 직후 영국은 재정적으로 파산상태였고,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의 노동당 정부는 해외파견 군인의 철수를 희망했다. 이에 영국은 순차적으로 현지인에게 권력을 돌려줄 생각이었으나, 공산화는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식민당국은 정글에서 준동하는 공산군을 소탕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공산당은 밀림에 사는 소수민족 오랑아슬리(Orang Asli)족에게서 병력을 충원하고 식량을 조달했다. 그럼에도 주류는 중국인이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자, 영국은 중공의 영향이 말레이공산군에 미칠 것을 경계했다.

1851년 공산게릴라들은 헨리 건니 총독대리를 살해했다. 이어 총독으로 부임한 제럴드 템플러는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였다. 작전을 지휘하던 해럴드 브릭스 장군은 중국인 소개령을 내렸다. 이를 브릭스 계획(Briggs Plan)이라고 한다.

2차 대전 증 일본군이 중국인을 대대적으로 숙청할 때, 중국인들이 밀림으로 숨어들었는데, 그 인구가 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었다. 당시 말라야 인구의 10%에 해당했다. 이들이 공산주의에 동정해 게릴라들을 숨겨주고 지원하는 바탕이 되었다. 브릭스 장군은 밀림에 사는 중국인불법 이주자들이 살 뉴빌리지(新村)를 건설하고, 이들을 이주시켰다. 마오쩌둥은 공산당과 인민을 고기와 물로 비유했다. 브릭스 장군은 마오의 전략을 역이용해 물을 없애 물고기를 말라 죽게 하는 전술을 도입한 것이다. 공산군을 지원하고 에워싸주던 주민이 소개되면서 영국군은 서서히 게릴라들을 고사시켜 나갔다. 게릴라 세력은 점점 약화되었고, 태국 국경으로 이동해 저항하다가 소멸했다..

 

 

공산주의자의 무장투쟁은 중국인 대중의 마음을 떠나게 했다. 말이 계급투쟁이지, 인종갈등의 연장이었다. 온건한 중국인들은 1949년 MCA(Malaysian Chinese Association)라는 정당을 만들었고, 탄쳉록(陳禎祿)이 이끌었다. 다수 중국인들의 생각은 말레이인들이 땅 주인임을 인정하지만, 우리도 함께 살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1951년 케다주 왕자 출신의 툰쿠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이 UMNO 새 의장에 선출되었다. 라만은 MCA에 동맹을 제의했다. MCA는 UMNO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 중국인 정당은 말라야에서 말레이인의 우월권을 인정했다. 말레이인 국왕과 술탄이 국가를 대표하고, 학교에서 말레이어 교육을 실시하되, 내각과 의회에서 일정비율의 중국인을 임용할 것을 요구했다. 말레이인 정당은 UMNO도 이를 받아들여 두 정당의 동맹이 맺어졌다. 말레이인의 우월권은 인정하되 중국인에게도 권력의 일부를 나눠 달라는 것이었다.

이어 인도인 정당 MIC(Malayan Indian Congress)도 동맹에 합류했다. 반목의 골이 깊었던 세 인종의 화해가 이뤄지면서 보수세력이 다수의 지지를 얻어 좌익의 준동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섰고, 영국은 말라야연방의 독립을 채비했다. 1955년 영국은 말라야연방의 헌법을 만들고, 빠른 시일 내에 연방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1955년 7월 27일 52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제헌의회 선거에서 UMNO 34석, MCA 15석, MIC 2석을 얻었고, 동맹세력이 52석 가운데 51석을 쓸었다. 나머지 1석은 범말레이이슬람당에게 돌아갔다.

1956년 2월 8일 런던에서 영국정부와 말라야 정치인들은 이듬해 8월 31일에 독립한다는 내용의 런던조약을 체결했다. 곧이어 제헌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동맹을 형성한 세 정당이 독립국의 정치체제를 논의했다. 국왕을 국가수반으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기로 했다. 양디-페르투안 아공(Yang di-Pertuan Agong)라 불리는 국왕은 9명의 술탄이 5년 임기로 돌아가면서 맡기로 했다. 또 영어와 말레이어를 공용어로 하되, 10년후 말레이어를 유일한 국어로 한다는 원칙에도 합의했다. 중국인과 인도인들은 말라야 시민권을 획득했다. 차별을 인정하는 공존의 모색이었다.

독립 선언을 막는 돌발사고는 없었다. 예정대로 1957년 8월 31일 말라야연방은 독립을 선언했다. 초대 총리는 UMNO 의장으로 인종간 화해를 이끌어낸 압둘 라만이었다.

 

 

말라야연방은 두단계로 구분된다. 1948~1957년 사이는 영국보호령 상태의 말라야연방이고, 이후부터 1963년까지 말라야연방은 독립국이다. 현재의 말레이시아 연방(Federation of Malaya)은 1963년 9월 16일에 선포되었으며, 옛 말라야연방에다 싱가포르와 보르네오 북부의 사라와크와 사바가 포함된 개념이다. 싱가포르는 2년간 말레이시아연방의 일원이었으나, 1965년에 탈퇴했다. 이 과정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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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자료>

Wikipedia, History of Malaysia 

Wikipedia, Malayan Emergency 

Wikipedia, Malayan Union 

Wikipedia, Federation of Malaya 

동남아시아, 소병국, 2020, 책과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