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정적 알렉세이 나빌니의 죽음
푸틴의 정적 알렉세이 나빌니의 죽음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4.02.1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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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차례 살해 위기에도 러시아로 귀국…시베리아 교도소에서 47세로 사망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최대정적으로 꼽히는 알렉세이 나발니가 현지시간 16일 시베리아 감옥에서 사망했다고 러시아 교도소 당국이 발표했다. 당국은 "나발니가 산책 후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즉시 의식을 잃었다"의료진이 응급조치했지만 사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47세의 젊은 나이다.

그는 여러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2017년에는 신원 미상의 공격자가 녹색의 화학물질을 얼굴에 던져 눈에 깊은 상처가 난 적이 있다. 이후 20208월 그는 시베리아 톰스크 공항에서 플라스틱 컵으로 차 한잔을 마시고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올랐는데, 비행기가 이륙 후 150km쯤 날았을 즈음에 갑자기 쓰러졌다. 독극물을 마신 것이다. 검사 결과 군사용 신경작용제 노비촉 계열 독극물이 검출되었고, 푸틴이 배후에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사경을 헤메던 그는 독일로 이송되어 치료받고 목숨을 건졌다.

회복한후 그가 20211월 러시아로 되돌아온 것이 이번 운명의 결과를 초래했다. 그는 귀국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당국에 체포돼 수감됐다. 그는 재판에서 30년형을 언도받고 모스크바에서 235떨어진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지난해 12월 혹독한 환경으로 유명한 최북단 시베리아 지역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 교도소로 옮겨가 마침내 변을 당하고 말았다.

 

알렉세이 나발니 /위키피디아
알렉세이 나발니 /위키피디아

 

알렉세이 나발니(Alexei Navalny)1976년 모스크바 인근 부틴에서 태어나 러시아민족우호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나발니는 러시아 정부의 부패와 푸틴에 대한 비판으로 국내외 주목을 받았다. 그는 SNS를 적극 활용해 시위 소식을 전하는가 하면, 해외 언론에 기고를 통해 푸틴 정부를 비판했다.

20116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정치 체제는 부패에 의해 매우 약화되고 있으며, 러시아 연방에서도 5년 이내에 아랍의 봄과 같은 반정부 데모 시위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진보당 대표로 출마해 27.24%를 득표해 돌풍을 일으켰다. 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 했지만, 선거관리위원회가 횡령죄를 씌워 출마 자격을 박탈했다.

푸틴은 나발니를 '블로거', '베를린의 환자' 등으로 칭하며 이름을 거명하길 꺼려했다. 2021년 수감된 이후 그는 줄곧 감옥에 갇혀 있었으며, 지난달에는 한국 컵라면 '도시락'을 여유롭게 먹고 싶다며 식사 시간 제한 폐지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하기도 했다. 나발니는 사망 이틀전인 14일에 변호사가 관리하는 텔레그램을 통해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에게 바치는 발렌타인데이 메시지를 보냈다. 그게 그의 마지막 인사였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정치탄압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비 앞에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추모 헌화. /위키피디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정치탄압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비 앞에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추모 헌화. /위키피디아

 

나발니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독재정권에서 반부패운동, 민주화운동을 펼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러시아 민족주의자였다. 2007년 나발니는 러시아 인민해방운동을 조직해 민주주의와 러시아인을 위해 싸우는 민족주의 정당을 지향했다. 이 정당은 불법이민을 반대하고 대러시아주의를 주창했으니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해 2011년 해산을 선언했다. 이후 진보당을 창당했다.

그는 인종주의적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나발니는 카프카스계 군인을 바퀴벌레에 비유하기도 했으며, 2006년에 '러시아인의 행진'을 주도해 반외국인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에서 이민자와 외국인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분리운동을 벌이는 남오세티야에 푸틴이 전쟁을 벌이자, 이를 지지하기도 했다. 그루지야(조지아)에 대한 적극적 봉쇄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했다.

나발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푸틴의 강압정책에 우크라이나인들이 분리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통합을 지지했고, 2014년엔 자신이 대통령이라면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되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대러시아주의자라는 점에서 푸틴과 공통점이 있다. 다만 민주화와 부패 척결에서 푸틴과 노선을 달리하다가 시베리아 오지에서 숨을 거뒀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Alexei Navalny 

CNBC, Jailed Putin opponent Alexei Navalny has died, Russian media 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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