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 바트화 폭락①] 1차전은 태국 승리
[1997 바트화 폭락①] 1차전은 태국 승리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8.0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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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핫머니 공격에 태국 중앙은행, 보유외환 풀고 금리 올려 방어 성공

 

재래식 통화전쟁은 핫머니와 중앙은행의 싸움으로 시작된다. 1992년 영국 파운드화 폭락과 1994년 멕시코 페소화 폭락 때도 그랬다. 고평가된 통화는 국제 외환 투기꾼들에게 절호의 찬스를 제공한다. 그 전쟁이 1997514~15일 다시 발발했다. 대상은 태국화폐 바트(baht)화였다.

바트화 공격전에 나선 선수들은 미국 월가를 주름잡는 헤지펀드들과 외환 딜러 조직들이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군단의 사령관 격인 스탠리 드러큰밀러(Stanley Druckenmiller), 줄리안 로버트슨(Julian Robertson), 레온 쿠퍼맨(Leon Cooperman) 등의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선두에 섰고, JP 모건, 씨티은행, 골드만 삭스등 월가 금융기관의 외환 딜러 조직이 가세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공격자들은 수십억 바트를 한꺼번에 팔아 제끼며 바트화가 떨어지는데 배팅을 걸었다. 당시 바트화 가격은 1달러당 26 바트였다. 헤지펀드들은 바트화 환율이 1달러당 28바트 또는 30바트로 떨어질 것을 기대했다. 예를 들어 바트 환율이 1주일만에 1달러당 26 바트에서 28.6 바트로 달러로 10% 떨어졌다고 가정해보자. 2만 달러 어치의 바트화를 가지고 있던 딜러가 비쌀 때 바트화를 팔았다가 1주일 후 바트화 값이 싸졌을 때 다시 산다면 짧은 기간에 2,000 달러를 순식간에 벌 수 있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각국 통화는 물건과 같은 개념에서 거래된다. 거래 가격은 곧 환율이다.

월가의 헤지펀드들이 바트화 공격에 나선 자금의 규모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당시 국제시장에서는 이 공격에서 투기꾼들이 3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는 루머가 돌아 다녔다. 루머를 토대로 할 때 그 무렵 바트화 값이 태국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방어로 10% 절상된 점을 감안, 바트화 공격에 사용된 자금이 20~30억 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하루에도 1조 달러 이상의 외환이 거래되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20~30억 달러는 아주 작은 돈이다. 일본 엔화나 독일 마르크화처럼 규모가 큰 외환시장은 하루에 2,500억 달러나 거래된다. 국제 거래자들이 한꺼번에 3,000억 달러를 동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초기 바트화 공격에 나선 월가의 헤지펀드들은 태국 중앙은행의 철벽 방어에 손해를 보아야 했다.

투기꾼들은 바트화 가격이 곧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달러에 대한 바트화의 환율이 상승할 것이 눈에 보였다. (바트화 환율과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달러에 대한 환율이 높아지면 바트화의 값은 떨어진다.)

태국 바트화는 미국 달러화를 중심으로 환율을 고정시키는 복수통화 바스켓 방식으로 조정되고 있었다. 태국 정부는 바트화 환율 변동 폭을 극히 제한된 수준에서 운영했다. 그해 상반기동안 환율 상승이 아주 완만하게 진행된 것도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한 것이었다.

 

외환 딜러들은 연초부터 태국 통화가 평가절하될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판단의 근거는 간단했다 연초부터 태국 경제가 둔화됐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다. 은행이 과도한 부동산 담보로 곤경에 빠졌으며, 경상수지 적자 폭이 증가 추세에 있었다. 이런 와중에 월가 증권회사인 골드만 삭스가 태국을 개발도상국 25개중 맨 마지막 순위로 평가 절하했다. 경제전망이 나쁘다는 이유였다.

국제 외환투기꾼들은 전선을 두 곳으로 확대했다. 첫번째가 현물 시장이었고, 그 다음이 미래의 어느 날짜를 지정해서 가격을 정하고 미리 거래하는 선물환 시장이다. 투기꾼들은 18개월 후의 가격을 전제로 거래되는 바트화 선물환 시장을 우선 공격했다. 미래의 바트화 가격을 떨어뜨려 현재 시장에서의 환율 상승 심리를 부추기기 위한 작전이었다.

투기꾼들은 수십억 달러 어치의 바트화를 일시에 매각했으나, 중앙은행인 타일랜드은행은 철저하게 방어했다. 외환시장에서 타일랜드은행은 보유외환에서 150~200억 달러를 꺼내 썼다는 루머가 떠돌았다.

타일랜드은행은 혼자의 힘으로 역부족을 느껴 인근 국가 중앙은행에 구조요청을 보냈다. 태국 정부는 앞서 1995년 자국 통화가 위기에 빠질 때 중앙은행간에 서로 도와주기로 한다는 쌍무협정을 주변국가들과 체결해 놓고 있었다. 타일랜드은행의 호소에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이 호응했다. 타일랜드은행은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인 네가라(Negara)은행, 홍콩과 싱가포르의 통화당국과 공동전선을 펴 120억 달러를 국제 외환시장에 풀었다. 그리고 헤지펀드들에게 매각한 바트화를 대량으로 매입, 가격을 안정시켰다.

타일랜드 은행의 조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태국은 522일 이중환율제를 채택, 보다 강력한 무기를 동원했다. 국제투자 전문가들은 태국 정부가 이 제도를 채택함으로써 세계 금융시장으로부터 고립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으나, 태국은 1994년 말레이시아 네가라은행이 성공한 방식을 답습했다.

타일랜드 은행은 또 자국 은행과 태국에 설치된 외국 은행 지점들에게 바트화를 해외에 팔지(대출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초강경 수단을 썼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투기꾼들에 바트화 공급을 줄임으로써 매도압력에 족쇄를 채우기 위한 목적이었다. 초기 공격에 실패한 투기꾼들이 바트를 사서 다시 단기매매에 나설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타일랜드 은행은 국외 투기자를 철저히 감시하자, 헤지펀드들은 태국에서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 재무부채권을 매각해서 돈을 모으고 있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그래픽=김현민
그래픽=김현민

 

바트화 가격이 상승했다. 중앙은행이 승리한 것이다. 65일 현재 바트화 환율은 1달러당 24 바트로 3주전 보다 10% 절상됐다. 바트화 절하를 노려 공격했던 헤지펀드들은 상대적으로 투자액의 10%에 해당하는 수억 달러의 손해를 보아야 했다. 단기 투자에서 3%의 수익을 올려야 남는 장사라는 헤지펀드의 세계에서 손해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빠져나오려고 해도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국제 시장에서 소로스의 퀀텀펀드와 로버트슨의 타이거 펀드가 큰 손해를 보았다는 얘기가 회자됐다. 그나마 선물 시장에 베팅했던 사람들은 당장에 큰 손해를 보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투기자들은 일본 엔화 투자에서도 손해를 보았다. 그들은 이자율이 낮은 엔화자금을 빌려 바트화나 다른 이머징 마켓의 고수익 상품에 부어왔다. 그런데 엔화는 51일 이후 12%나 상승했다. 투기자들이 거래 자금을 동원하는데 드는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바트화 전투 1회전은 헤지펀드의 패배로 끝났다. 탐욕스러운 투기자들은 4개국 중앙은행들이 일치해 방어하는데 당해낼 수 없었다. 외환 딜러들 사이에는 바트화 환율이 1달러당 22 바트까지 떨어질 것으로 분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헤지펀드들의 손해는 더욱 커지게 된다. 타일랜드은행은 국제 투기꾼들을 혼내주기 위해 매서운 회초리를 들었던 것 같다. 다시는 태국 시장을 넘보지 말라는 경고를 투기꾼들에게 보냈던 것이다.

그렇지만 1차 전투에서 바트화 고지를 방어했던 태국도 피해가 컸다. 연초부터 바트화를 방어하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썼다. 바트화 금리(국내금리)를 높여야 국제시장에서 바트화에 묻어두었던 달러가 빠져 나가지 않기 때문에 타일랜드은행은 헤지펀드의 공격이 있었던 5월 중순 바트화 단기 금리를 수직 인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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