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 아시아 투기세력⑨] 소로스는 실패했다
[1997 아시아 투기세력⑨] 소로스는 실패했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8.21 10: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링기트화 하락의 완충 역할 했다” 주장…타이거 펀드는 아시아서 성공

 

조지 소로스는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에서 과연 엄청난 이익을 챙겼는가. 이를 입증할 객관적 자료나 조사가 없다. 헤지펀드들은 일반 펀드들처럼 정기적으로 결산서를 내지 않는다. 미국 증권거래소(SEC)와 같은 감독당국에 정기적인 영업 보고를 제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부인들이 어느 헤지펀드가 아시아 위기에서 얼마나 돈을 벌었고, 또 얼마나 잃었지를 정확히 가늠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월가의 딜러, 브로커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를 통해 돈을 번 펀드와 잃은 펀드를 대략 구별할 수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1997년 하반기 아시아 통화위기에서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으나, 줄리안 로버트슨의 타이거펀드는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면 소로스는 영란은행을 파괴했다는 전력 때문에, 1위의 헤지펀드 운영자라는 이유 때문에, 손해를 보고도 국제적인 비난의 타깃이 된 것인가.

 

여기서 월스트리트 저널지(199795)가 소로스의 야전사령관 격인 스탠리 드러큰밀러를 인터뷰해서, 퀀텀펀드의 득실을 분석한 기사를 살펴보자.

퀀텀펀드는 말레이시아 링기트화가 붕괴하기 직전인 5월에 링기트화에 대해 숏포지션(short-position)에 들어갔다. 숏포지션은 외환 거래에서 매도자의 위치에 서는 것을 말한다. 퀀텀펀드는 링기트화가 고평가돼있으며, 조만간 평가 절하될 것으로 판단, 외환시장에서 링기트화를 대량으로 팔아제꼈다.

헤지펀드는 파생금융상품(derivatives)을 이용해, 단기투자에 나선다. 그들은 주식 및 채권등의 금융 자산을 이용해 수십 배의 자금을 동원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이른바 레버리지(leverage) 기법이다. 그들에겐 과대 평가된 통화, 정부의 규제가 왜곡된 금융시장, 인위적인 고이자율이 좋은 먹이감이다. 레버리지 기법으로 빌린 단기자금은 이자율이 높다. 헤지펀드는 단기투자에서 3% 이상의 이익을 내야 한다는 것이 월가의 상식이다. 따라서 헤지펀드들은 결정적인 시기에 투자, 짧은 시간에 동원한 돈의 이자율보다 높은 이익을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보는 것이 헤지펀드의 베팅이다.

퀀텀펀드는 너무 일찍이 숏포지션을 취했다. 링기트화는 쉽게 붕괴되지 않았다. 199772일 바트화가 붕괴된 다음에도 링기트화는 건재했다. 드러큰밀러의 부하들은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들은 링기트는 바트와 같이 하락의 길을 걷지 않을 것이며, 마하티르 정부가 철저하게 링기트화를 철저히 방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손을 빼자고 드러큰밀러를 설득했다. 그때가 7월 중순이었다. 드러큰밀러는 부하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링기트화에 대해 롱포지션(long-position), 즉 매입자의 위치로 돌아섰다.

 

당시 소로스가 개입했는지 여부에 대해 드러큰밀러는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가 개입했다면 왜 그는 말레이시아의 모하마드 마하티르 총리를 처벌하지 않았던가. 소로스는 언젠가 마하티르에겐 조금도 동정심을 느끼지 못하지만, 주식시장이 붕괴해 피해를 입은 말레이시아인들에게 동정심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를 실천했던 것일까. 어쨌든 여기서는 의문부호를 찍어놓고 넘어가자.

퀀텀펀드가 말레이시아 화폐를 다시 사들이기 시작했을 때 링기트화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드러큰밀러는 링기트화가 하락하는 시점에서 다른 투기자들처럼 매각을 했어야 하는데, 말레이시아 중앙은행과 같은 위치에서 달러를 팔고 링기트화를 사들였다. 그의 말 대로라면 퀀텀펀드는 링기트화 하락을 부채질한 것이 아니라, 하락을 완충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드러큰밀러는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로스가 링기트화 하락의 주범이라는) 마하티르의 주장은 아이러니다. 우리가 위기(링기트화 붕괴)에서 한 일은 링기트화를 사들임으로써 급격한 하락을 막아주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는 그런 인도주의적 입장에 서있지는 않았다. 내가 펀드를 마음대로 운영했다면 그때 링기트화를 팔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러니 하게도 그 당시 말레이시아의 중앙은행이 했던 역할을 했다.”

드러큰밀러는 링기트화 투기에 얼마나 투자했는지, 수익 또는 손해가 얼마나 됐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물론 펀드의 전 자금을 동원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퀀텀펀드는 엄청난 손해를 링기트화 투자에서 보았을 것이다.

 

태국의 경우에서 퀀텀펀드는 연초부터 바트화 하락을 예상해, 매도 위치(숏포지션)에 섰던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퀀텀펀드측은 태국 정부가 바트화 방어에 나선 시점에 매입 위치(롱포지션)로 돌아서 결국 태국 중앙은행과 같은 입장에서 움직였다고 주장했다. 7월초 바트화가 수직 강하하는 시점에서 퀀텀펀드는 바트화를 사들이는 우를 범했다고 한다. 이 주장 역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퀀텀펀드는 바트화에서도 손해를 보았다.

드러큰밀러의 주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말레이시아 중앙은행도 투기에 나선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1992년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은 영국 파운드화가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 파운드화 매입에 베팅을 걸어 100억 링기트(389,000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때부터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국제외환시장에서 투기를 하는 것을 금지했다. 퀀텀펀드측이 이런 사실마저 폭로한 것은 투기란 이윤을 쫓아 금융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지, 부정적인 측면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또 누가 누구를 욕할 수 있느냐는 강한 반발심에서 나온 것이었으리라.

드러큰밀러가 이처럼 월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퀀텀펀드의 입장을 밝힌 것은 헤지펀드 매니저로선 이례적인 것이다. 그는 퀀텀펀드가 아시아 위기를 유발하지 않았고, 아시아 위기는 지역 국가들의 자체 경제구조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극구 변명한 것이다.

당시 드러큰밀러의 주장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그해 1/4분기 3.2%에 불과했던 퀀텀펀드의 수익률은 드러큰밀러가 신문에 등장한 93일까지 22%로 상승했다. 퀀텀펀드의 입장에서는 많은 수익은 아니지만, 월가의 평균작은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해명은 역설적으로 헤지펀드의 선두주자인 퀀텀펀드가 동남아 금융위기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하는 결과가 됐다.

 

그래픽=김현민
그래픽=김현민

 

국제 펀드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아시아 지도자들의 반발이 못마땅한 것일 수도 있다. 흥청망청 외화를 들여다 쓸 때는 외화 예찬론을 펴더니, 자본이 빠져나가도록 경제를 망쳐놓고 이제와 책임을 자신들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어쨌든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소로스의 퀀텀펀드가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재미도 못보고 욕만 얻어먹었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되어 있다. 세계 3대 금융시장의 하나인 런던 금융가에서는 소로스 왕국이 무너지고 있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는 아시아 금융위기를 잘못 판단하는 바람에 수억 또는 수십억 달러를 날렸고, 그에게 거액의 자금을 맡긴 투자자들이 지분을 빼내려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소로스는 자신의 헤지펀드를 관리하는 본연의 일보다는 동유럽에 거액을 기부하는 등 다른 일에 더 열중하고 있어 경영실종 및 투자 전략이 없다는 혹평도 국제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소로스는 특정 분야나 개별 기업에 대한 분석보다는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투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시장에 급격한 변화가 오면 투자의 취약성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시장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소로스가 유명세만 타고 이익을 내지 못하는 가운데 로버트슨의 타이거 펀드가 뒤를 바짝 좇고 있다. 19971215일 현재 퀀텀펀드의 자본금은 1834,000만 달러로 수위를 달렸지만, 타이거펀드는 그해 60억 달러를 보태 자본금이 150억 달러로 불어났다. 19971월부터 1215일까지 타이거펀드의 수익률은 63%로 퀀텀펀드의 13.7%보다 훨씬 높다. 퀀텀펀드의 수익률이 9월초 22%에서 연말에 13%로 떨어진 것은 아시아 시장에서의 패착에서 나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타이거 펀드는 그해 1월부터 동남아 외환위기 발생 직전인 6월말까지 1%의 수익률밖에 내지 못했다. 그러나 바트화 공격에서 10억 달러를 번 것으로 알려져 있다.(월스트리트 저널지) 타이거는 아시아가 망하는 것을 보면서 엄청난 이익을 챙긴 것이다. 아시아의 호랑이들은 월가의 타이거, 65세의 노익장 로버트슨에게 패한 셈이다.

타이거펀드는 동남아 외환시장은 물론 일본 주식시장에도 손을 댔다. 일본 증시는 1997년에 80%나 폭락했는데, 타이거펀드는 여기에 덤벼들었다. 주식시장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돈을 버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지만, 금융시장에서 머니게임을 하는 사람에겐 불황이 더 좋은 먹이감이다. 수천 가지의 파생금융상품은 이런 수익률을 보장해준다. 혼란기에 영웅이 나오듯, 그들에게는 무언가 잘못돼 시체가 즐비한 곳을 찾아가는 까마귀와 같은 존재임은 앞에서도 설명한바 있다.

그렇게 잘 나가던 로버트슨도 그해 12월말 일본 중앙은행(일본은행)과의 머리싸움에서 5억 달러를 날렸다. 일본은행은 40억 달러의 보유 달러를 매각, 엔화 방어에 나섰기 때문이다. 로버트슨은 그날의 기억을 역사상 최악의 밤이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1997년 타이거펀드의 펀드매니저들은 그해 모두 11억 달러의 거금을 나눠가졌다. 주로 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확산되고 잇는 6개월 동안 번 돈이다. 로버트슨은 이의 절반 이상을 먹었고, 타이거 펀드내 자신의 지분에서 나온 이익금까지 합쳐 11억 달러 이상을 챙길 수 있었다. 다음해(98) 태국이 월가에서 10억 달러의 글로벌본드를 발행하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했다. 헤지펀드 매니저 한 사람이 일개 국가의 위력을 넘어서는 횡포를 글로벌 경제가 만들어 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