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객사 나주 금성관, 보물 지정된다.
조선 시대 객사 나주 금성관, 보물 지정된다.
  • 이인호 기자
  • 승인 2019.08.2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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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령전 운한각·복도각·이안청, 안성 칠장사 대웅전 보물 지정

 

문화재청은 전남 나주시에 있는 나주 금성관(錦城館)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금성관은 현재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주 금성관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동안에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또 경기 수원시에 있는 수원 화령전 운한각·복도각·이안청(水原 華寧殿 雲漢閣·複道閣·移安廳)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35호로,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칠장사(七長寺) 대웅전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36호로 지정했다.

 

나주 금성관 전경 /문화재청
나주 금성관 전경 /문화재청

 

보물 지정 예고 나주 금성관

조선 시대 전패(殿牌)와 궐패(闕牌)를 모시고 망궐례(望闕禮)를 행하던 객사 건물이다. 객사란 조선 시대 지방 관아의 하나로 고을마다 두며 궐패를 모셔 두고 초하루와 보름마다 망궐례를 올리며, 지방에 오는 관원을 접대하는 공간이다.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목조 가구와 공포형식은 1775년과 1885년 중수 당시의 기법을 보여주며 각종 기록으로 보아 전체적인 규모와 골격은 1617년 중수 당시의 형태로 추정된다.

금성관은 주심포(柱心包) 계 양식의 요소를 채용한 익공(翼工) 계 공포(栱包) 구성이 돋보인다. 월대(月臺)와 건물의 외관 그리고 내부 천장 등을 일반적인 객사와 달리 궁궐의 정전과 유사하게 구성한 점은 금성관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금성관 정청은 조선 시대 객사 건축물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클 뿐 아니라, 팔작지붕을 하고 있어서 일반적인 맞배지붕의 정청(正廳, 객사 건물 가운데 중심 건물)과 대비돼 희귀성을 갖는다. 인근에 자리한 나주향교 대성전이 일반적인 조선 시대 지방향교 대성전의 맞배지붕과 달리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점에서 지역적인 특수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금성관은 무엇보다 지역의 대표적인 역사문화유산이라는 점,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오랫동안 나주군청과 시청으로 사용되면서도 전반적으로 원형을 유지해온 역사적 건축물이다. 금성관은 나주 읍치(邑治)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대표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원래 자리를 잘 지키고 있으며, 다른 객사와 뚜렷한 차별성을 띤 격조 높은 건물이다.

 

보물 제2035호 수원 화령전 운한각·복도각·이안청 /문화재청
보물 제2035호 수원 화령전 운한각·복도각·이안청 /문화재청

 

수원 화령전

현재 사적 제11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화성 축조(1793~1796)를 주도한 조선 22대 임금 정조(1752~1800)가 승하한 뒤 어진을 모실 영전(影殿)으로 사용하기 위해 1801년 건립되었다. 전주의 경기전과 함께 궁궐 밖에 영전을 모신 드문 사례로서 정조 이후의 모든 왕이 직접 이곳을 방문하여 제향하였다는 점에서 그 위상이 매우 높다.

운한각과 복도각, 이안청은 수원 화령전 내에 위치한 중심 건축군으로 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운한각은 화령전의 중심인 정전(正殿)이고, 운한각 옆면을 바라보고 서 있는 건물이 이안청, 두 건물을 잇는 통로가 복도각이다. 이안청은 불가피한 상황에 어진을 임시 봉안하는 곳인데, 정자각 정전에 이안청이 별도로 있던 조선 초기 영전과는 달리 정전(운한각)과 이안청을 복도각으로 연결한 건물 구조는 조선 후기의 변화된 새로운 형식의 영전 공간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운한각(정전)의 평면구성은 중앙에 어진을 봉안하는 합자(閤子)를 두고 좌우에 온돌이 있는 협실을 두었으며, 여러 물품을 보관했던 퇴칸을 배치하여 주칸의 크기를 달리했다. 기둥의 가공이나 창호, 창틀, 지붕마루, 기단 석축 가공 등 세부적으로도 격식이 돋보이는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승정원일기와 순조실록에 건물 준공과정과 화령전응행절목(華寧殿應行節目)에 제사 절차와 건물 관리 규범, 각 건물에 보관한 기물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전해오고 있다.

수원 화령전 운한각·복도각·이안청 세 건물은 이후 수원의 근대적 도시 발전 과정에서도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고 1801년 창건 당시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건물의 역사적 기록도 잘 남아 있다. 19세기 궁궐건축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장인의 동원과 기술, 기법이 건물 각 세부에 충분히 적용되어 있어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의미에서 보물로 지정가치가 있다.

 

보물 제2036호 안성 칠장사 대웅전 전경 /문화재청
보물 제2036호 안성 칠장사 대웅전 전경 /문화재청

 

안성 칠장사 대웅전

1790(정조 14) 중창되고 1828(순조 28) 이건된 건물로서, 경기도 권역에 조선 후기 사찰 중심 불전의 건축 상황을 잘 보여주는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큰 건축물이다.

전체 평면은 정면 3, 옆면 3칸으로 화려한 다포식 공포를 전후면에만 두고, 구조는 짓고 관리하기 쉬운 2고주 5량의 맞배집으로 처리하였다. 이는 전반적으로 교세가 위축되어 있던 조선 후기에 지어진 불전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대웅전은 공포의 구성과 더불어, 덩굴무늬를 그린 초각(草刻), 내부의 가구(架構) 구성과 불단의 조성, 소란반자와 연등천장, 닫집을 함께 사용한 천장의 처리, 대들보와 기둥은 자연 그대로의 휘어진 나무를 활용한 점, 사방의 벽면에 둔 창호의 배열 등 18~19세기 불전 건축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아울러, 고려 전기 이래로 면면히 이어온 유래 깊은 사찰 건축의 전통에서 비롯한 특수한 모습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대웅전 전면의 석축과 계단, 초석 등에서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수준 높은 석공작의 기법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우물천장 널판에는 화초 모양을 도드라지게 그린 금색의 고분단청이 일부 남아 있는데, 현재까지 전해오는 사례가 적어 가치가 크다. 고분단청은 호분(胡粉, 흰색 안료의 일종) 등으로 여러 번 칠해 도드라지게 한 다음 채색하여 입체감을 주는 채색법이다.

칠장사(문화재자료 제24)1014(고려 현종 5) 혜소국사(慧炤國師)가 중창(重創)하였지만, 정확한 창건 시기는 전하지 않는다. 대웅전에는 1685년 만들어진 안성 칠장사 목조석가삼존불좌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13)이 모셔져 있고, 1628년 그려진 칠장사오불회괘불탱(국보 제296), 1710년에 그려진 칠장사삼불회괘불탱(보물 제1256)이 전한다. 또한, 칠장사 경내에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보물 제488) 등 고려 시대의 불교 유적 등 다수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으며, 사찰의 역사를 전하는 사적기(寺籍記)와 현판 등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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