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 인도네시아④] 수하르토의 반발
[1997 인도네시아④] 수하르토의 반발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8.3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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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르토, 긴축 정책에 반대…IMF 압박에 2차 협정 체결, 족벌 경영해체

 

1998년 새해초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극약 처방을 내놓았다. 수하르토는 연두 연설을 통해 경제성장률 4%, 인플레이션 9%, 환율을 1달러당 4,000 루피아를 전제로 하는 1998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IMF와 합의한 내용대로 할 경우 성장률은 1% 이내, 3월까지 인플레이션 30% 이상을 각오해야 했다.

수하르토가 발표한 정책기조는 돈을 찍어 은행 파산을 막고, 경기를 부양한다는 것으로, 긴축을 요구하는 IMF의 지시와 정면으로 배치됐다. 텍사스로 가는 전용기 내에서 뉴스를 접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즉각 수하르토에게 전화를 걸어 발표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의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독일의 헬무트 콜 수상도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수하르토가 자국의 채권은행들이 빌려준 돈을 떼먹을까를 두려워했다.

클린턴에게 인도네시아라는 존재는 이중적 의미가 있었다. 그는 1996년 재선 직전에 인도네시아 재벌인 리포(Lippo) 그룹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언론의 집중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수하르토 정부는 아시아에 30여년 이상 공산주의 확대를 막는 보루였고, 미국의 오랜 우방이었다.

 

IMF의 협박은 가히 위협적이었다. 예산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구제 금융을 주지 않겠다고 나왔다.

자카르타 시내에는 시민들이 식량과 등유를 배급받기 위해 줄을 섰다. 수하르토 대통령과 캉드시 총재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을 담보로 배짱 싸움을 벌였다.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 하는 싸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국제 투자자들은 남아있는 돈마저 싹쓸이하듯 인도네시아를 빠져나갔고, 국제 외환시장에서 루피아화는 1달러당 1만을 넘어섰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인도네시아 기업들은 파산 위기에 몰렸다. 국제 금융계에서는 인도네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지 모른다는 루머가 돌았다.

그러자 IMF2인자인 스탠리 피셔 부총재, 미국 재무부에서 로렌스 서머스 부장관, 국방부에서 윌리엄 코언 장관이 잇달아 인도네시아를 방문, 수하르토를 접견하고 마음을 돌릴 것을 종용했다.

싱가포르의 고촉통 총리만은 수하르토의 편을 들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다. 아시아의 고난은 아시아인만이 이해할 뿐이다. 그는 수하르토를 만나고 돌아와 서구 식민주의의 재연을 우려했다.

아시아는 2차 세계대전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아시아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적도 아니고, 과거의 식민지 지배자도 아니다. 또 제국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니다. 그것은 얼굴 없는 국제금융시장이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이 1998년 1월 14일 미국의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과 면담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이 1998년 1월 14일 미국의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과 면담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수하르토는 열흘이 지나자 저항을 풀고, 캉드시에게 무릅을 꿇고 말았다. 그는 115일 굴욕적인 제2IMF 협정에 서명을 했다.

2IMF 협정은 1차 협정보다 가혹했다. IMF는 자신의 처방이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다고 보다 독한 약을 먹으라고 강요했던 것이다.

2차 협정의 타깃은 수하르토 가문의 기업이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이라기 보다 철저하게 수하르토의 굴종을 요구한 항복문서였다.

 

2차 협정의 골자와 목표는 다음과 같다.

98년도 성장률을 수하르토가 새해 예산안에서 밝힌 4%에서 0%로 하향 조정할 것. 인플레이션도 수하르토의 목표인 연간 9%에서 20%로 상향 조정할 것.- 이는 수하르토의 경기 부양책을 무력화시키는 거시 경제 목표 수정이다.

▲ 「자동차 산업에 대한 보호 관세를 철폐할 것. -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하르토 막내아들 후토모 만달라 푸트라(Hutomo Mandala Putra)가 추진해온 국민차 생산을 위해 외제차에 대해 보호관세를 물렸는데, IMF는 이의 철폐를 관철했다.

수하르토 아들 토미 수하르토(Tommy Suharto)가 운영하는 담배향(클로브) 생산공장의 독점을 해체할 것.

▲ 「수하르토의 친구인 모하마드 하산(Mohamad Hasan)이 경영하는 합판 공장의 카르텔을 해체할 것.

▲ 「수하르토의 측근인 하비비(B. J. Habibi) 장관이 추진해온 130인승 항공기 개발 계획에 대한 정부 보조를 중단할 것.- 나중에 하비비는 수하르토를 이어 대통령직을 승계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IMF의 눈에는 그도 수하르토의 측근으로 보였다.

▲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할 것. - 수하르토의 거시경제 장악을 분리하기 위한 것이다.

석유와 전기사업에 대한 정부 보조를 점진적으로 줄일 것. 그러나 빈민층이 사용하는 등유에 대한 보조는 특별 배려를 할 수 있다.- IMF는 석유와 전기 사업을 수하르토의 딸과 친구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보조를 중단하라고 명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석유와 전기 산업에 대한 보조를 중단하자, 석유와 전기 가격이 폭등했고, 결국은 물가 앙등을 촉발, 시민 봉기를 유발했다.

 

2IMF 협정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수하르토로 하여금 족벌 경영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었다. IMF는 수하르토의 독재와 경제 독점에 신음하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절대적 지지를 받을 줄 알았다. 또 그것이 목표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정치인과 지식인, 언론들이 IMF 처방의 의미보다는 수하르토의 굴욕적 항복에 동정심을 느꼈다. 수하르토도 그 동정심을 이용했다.

 

인도네시아 집권자들은 IMF를 격렬히 바판했다. 그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IMF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 기관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고, 모욕을 주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차라리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더 잘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2차 협정은 수하르토를 굴복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경제 위기를 응급처치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수하르토의 굴복은 인도네시아 기업의 굴복이었다.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려는 정책이 무산되자, 기업들은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IMF가 다시 자금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한지 3일째 되던 날 인도네시아 정부는 기업의 대외부채를 일시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모라토리엄이었다. 인도네시아의 기업 외채는 650억 달러에 이르렀다.

다급해진 것은 선진국의 채권은행들이었다. 그 무렵 선진국 채권은행단은 뉴욕에서 한국 정부와 외채 만기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과 빨리 협상을 마무리하고, 인도네시아의 채무 구조조정 협상을 전개할 필요성이 있었다. 자칫하다간 돈을 떼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인도네시아 모라토리엄 선언의 덕을 본 셈이다. 인도네시아 사태는 선진국 은행들로 하여금 만기 연장 외채의 이자율을 올리기 위해 협상을 질질 끌 명분을 잃게 했기 때문이다.

한국과의 외채 협상을 끝낸 128, 선진국 채권은행단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채무 구조조정 협상을 위해 싱가포르에 모였다. 한국의 외채는 주요 은행 몇 개에 집중돼 있었으나,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228개 은행에 산재해 있었다. 협상 창구가 다양했고, 정치적으로도 불안했다. 그러나 오랜 금융산업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선진국 은행들은 돈을 받아내는데는 귀신과 같은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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