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 인도네시아⑥] 수하르토 퇴진
[1997 인도네시아⑥] 수하르토 퇴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9.10 0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IMF 요구로 보조금 축소하자 물가폭등에 민중 폭동…수하르토 장기독재 종언

 

1998311일 수하르토가 일곱 번째 임기의 대통령직에 취임한 직후 인도네시아 정부와 IMF 사이에는 다소 유화국면이 펼쳐졌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IMF 조건을 이행하겠음을 천명했고, IMF도 그 동안의 일방적 공격에 일보 후퇴했다. 팽팽한 대결 국면이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IMF 2인자인 스탠리 피셔 부총재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개혁 프로그램에 신축성을 보일 용의가 있다“IMF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고정환율제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캉드시 총재가 고정환율제는 이상론이며 4월 이전까지 추가지원을 할 수 없다고 한 강경기조에서 일보 후퇴한 것이다.

IMF에 대한 국제적 비난도 빗발쳤다.. 인도네시아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는 일방적인 IMF 개혁 패키지가 인도네시아 시민 불안을 촉발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3월초 “IMF가 인도네시아 지원을 중단한 이유가 분명치 않고, 인도네시아 사태로 아시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경우 IMF와 미국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IMF가 인도네시아에 타협적 태도로 전환한 명분은 두가지다. 첫째, 수하르토 정부가 각종 보조금을 폐지하는 등 IMF 권고 사항을 상당부분 수용하고 있고, 둘째 2억 인구를 파탄에 이르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인도주의적 관점이다.

 

19983월말 IMF와 수하르토 정부는 다시 협상을 벌였다. 인도네시아는 통화위원회 제도 추진을 보류하고, 680억 달러의 민간 외채에 대해 정부의 지급보증을 해주기로 했다. IMF도 가솔린, 전기 등에 대한 보조금 폐지 시기를 다소 늦추어 주고, 식량 등 생활필수품에 대한 일부 보조를 인정했다. 그러나 수하르토의 족벌 기업, 즉 정실자본주의의 철폐에 대한 원칙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4월초 인도네시아는 IMF와 세번째 협정을 체결했다. 수하르토 정부는 더 이상 IMF 조건을 이행하지 않다간 경제가 파멸로 갈 것임을 깨달았다. 저항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그러나 수하르토는 동전의 다른 면을 보지 못했다. IMF에 순응하는 것이 그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54일 가뜩이나 교통체증이 심한 자카르타 시내는 차가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그날 자정부터 휘발유 가격이 70% 인상된다는 소식에 기름 한 방울이라도 더 넣으려는 자동차 운전자들이 주유소 주위에 진을 쳤기 때문이다.

수하르토 정부가 IMF가 주기로 한 10억 달러의 추가지원금을 받기 위해 석유, 전기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55일부터 중단하기로 하고, 이들 산업에 대한 가격 통제를 해제했다. 이에 따라 휘발유 가격은 71%, 항공기유 가격 43%, 등유 25%, 디젤유 39% 인상됐고, 버스료도 67%나 폭등했다. 전기료는 5월에 20%, 620%등 단계적으로 40% 인상이 예고됐다.

물가와 세금은 민중 폭동의 원인이다.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도 지도자들이야 혁명이념에 불탔지만, 민중들은 과도한 물가 상승과 세금 부과에 봉기했다. IMF 경제학자들은 인도네시아의 시위가 격화되고 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물가 폭등을 유발시켰던 것이다.

원래 IMF는 석유 및 전기 산업에 대한 보조금 중단 시기를 4월로 주장했으나, 인도네시아 정부의 요구로 한달 늦춰 줬다. IMF가 수하르토 정부의 수명을 한달 더 연장해준 셈이다.

수하르토 정부가 연료 가격을 인상하던 날 싱가포르에 와있던 미셸 캉드시 IMG 총재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IMF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며 환영했다. 1)

그러나 IMF5월에 주기로 예정한 10억 달러를 수하르토가 사임할 때까지 주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달러에 허기졌던 수하르토 정권은 단돈 10억 달러에 권력을 내주는 비운을 맞이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주요 산업인 석유와 전기 사업도 수하르토의 친척과 친구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IMF는 수하르토 족벌 기업을 해체하기 위해 정부의 보조금 중단을 요구했고, 보조금 중단은 물가폭등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워보자. 수하르토 정권은 전통적인 자바 왕가를 모델로 권력을 유지했고, 7년 단위의 형식적인 선거를 치르기는 했으나, 자바 왕의 종신제를 답습했다. 왕국에선 국가의 재산이 왕가의 재산이다. 왕가의 재산은 국영 기업의 역할을 한다. 수하르토는 자신이 자바 왕이라고 생각했고, 왕실 재산을 아들과 막료들에게 맡겨 운영하려고 했던 것 같다. 보르네오섬 북부의 산유국 브루네이 왕국에선 왕이 유전을 소유,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부자다. 따라서 공공재 성격의 석유와 전기 산업은 왕실 소유로 해서 공기업화함으로써 정부 보조금을 대주었고, 이에 따라 백성들에게 싼 기름과 전기를 쓰게 시혜를 베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IMF나 미국식 자본주의 시각에서는 공화정의 최고통치권자가 자신의 가족들이 알짜 기업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부패의 소산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충격에 사로잡혔다. 그들의 눈에 적은 IMF가 아니라 수하르토였다. 연료 가격 폭등은 민중 시위에 불을 붙였고, 마침내 500여명이 사망하는 사태로 번져갔다. 비동맹회의 참석차 이집트를 방문 중이던 수하르토는 중도에 귀국해, 열흘만에 보조금 중단 조치를 철회했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수하르토의 자바왕국 붕괴는 눈앞에 다가왔다. 521일 수하르토는 새로 확보한 7년 임기중 두달을 갖넘기고 자신의 측근인 하비비(B J Habibie)에게 권좌를 맡기고 사임을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이 1998년 5월 21일 대통령궁에서 사임을 발표하고 있다. 그 옆에는 그의 후임 하비비 부통령. /위키피디아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이 1998년 5월 21일 대통령궁에서 사임을 발표하고 있다. 그 옆에는 그의 후임 하비비 부통령. /위키피디아

 

76세의 노회한 정객을 권좌에서 몰아낸 세력은 그가 오랫동안 토벌해온 밀림 속의 좌익 게릴라가 아니라, 온라인으로 전세계를 연결한 국제 자본의 힘이었다.

인도네시아에 찾아온 피플스 파워의 배후에는 1980년대 한국과 필리핀의 경우와 달리 지구촌의 머니 파워가 있었다. 수하르토의 몰락은 공룡처럼 비대해진 국제 자본에 저항하다가는 32년의 독재정권도 무너질 수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일깨워 줬다.

국제 자본시장은 투명하고, 서로 경쟁하고, 합리적인 것을 요구한다. 족벌 경영이나, 정경 유착, 이에 따른 부패는 글로벌 자본이 가장 싫어하는 요소다. 수하르토 일가는 자동차와 석유화학, 은행 등 국가 기간산업을 장악한 정경 일체의 재벌로, 국제 금융시장의 처벌 대상이었다.

막강한 정보력을 자랑하는 뉴욕 월가의 증권사들은 이미 며칠 전부터 수하르토의 사임일자를 정확히 재고 있었다. 월가의 메이저 증권사들은 월요일인 20(아시아 시간으로 21)D-데이라는 메시지를 교환하며 인도네시아 채권을 매입했다. 수하르토가 사임을 발표하기전인 20일 뉴욕 금융시장에서 인도네시아 단기채권 금리가 하루만에 1.0%나 폭락했다. 이들은 미국 국무부의 정통한 소식통으로부터 확실한 정보를 얻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제 자본의 논리를 대변하는 IMF는 수하르토 사임 하루 전에도 인도네시아에 대한 구제금융을 연기한다고 밝혀 그의 목줄을 죄었다. IMF는 수하르토가 인도네시아 개혁의 걸림돌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IMF는 인도네시아 사태를 계기로 국제적인 비난에 봉착했다. IMF는 인도네시아 경제를 안정화시키는데 실패했고,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불만을 고조시켰다. IMF가 처음부터 수하르토를 몰아내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였던 것이 아니라, IMF 처방의 실패가 민중 봉기를 촉발했고, 수하르토 사임의 결과를 빚어냈다. IMF는 인도네시아의 정경유착, 즉 정실 자본주의의 해체가 경제 개혁이고 국제 시장의 신뢰도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가설을 밀어부쳐 인도네시아 국민들에게 고통을 가중시켰다.

하바드대의 스티븐 라델렛(Steven Radelet) 교수는 IMF를 실날하게 공격했다. 2)

“IMF는 수하르토 일가와 친구들이 하는 사업을 종식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었지, 인도네시아 경제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IMF가 몇 달동안 자금 지원을 거부하는 바람에 기업들이 대외부채 지불을 연기했고, 루피아 하락에 따른 수출 촉진의 좋은 기회마저 놓치게 했다. IMF 프로그램은 잘못 디자인됐으며, 상황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IMF는 경제 구조조정의 사회적 비용을 전혀 고려치 않았다며 인도네시아 사태의 원인이 IMF에 있다고 비난했다.

 


1) WSJ, 9855Suharto, risking unrest, slashes subsidies

2) WSJ, 98518Time will tell if IMF helped save or wreck Indonesia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