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LTCM 위기⑧] 천재들의 투자수법
[1998 LTCM 위기⑧] 천재들의 투자수법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9.19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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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버전스 트레이딩 기법 사용…분산투자 기법, 시장 왜곡 때엔 실패로 입증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는 투기적이고 위험한 투자를 했다가 실패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LTCM의 투자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험을 분산시키려고 무척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과도한 부채를 문제삼는 이도 있지만, 월가의 일반적인 투자은행들보다 LTCM의 부채 비율은 낮은 편이다.

스타 펀드매니저와 노벨상 수상자, 미국 중앙은행 고위간부등 25명의 경제학 박사들이 모여있는 천재적인 투자그룹은 가장 안전하고 명백하게 이익이 나오는 곳에 투자했다. 그들을 망하게 한 것은 러시아의 부채지불정지(모라토리엄) 선언에 따른 시장 교란 때문이지, 결코 그들의 투자가 잘못됐기 때문은 아니었다.

 

메리웨더의 헤지펀드는 철저하게 분산투자 기법을 채택했다. 분산 투자(diversification)란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 위험을 분산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론적으로 분산투자는 한군데서 손해를 보면 다른데서 낸 이익을 보충함으로써 손실을 보전해 준다.

LTCM은 미국 재무부 채권에서 뉴욕 증시의 블루칩 주식, 네덜란드의 담보부 채권, 이탈리아 채권, 영국 채권, 라틴아메리카의 브래디 본드, 정크 본드등 다양하게 투자했다. 그러나 분산투자는 금융시장이 정상일 때만 효력이 있다. 금융시장이 파국으로 갈 때는 모든 투자에서 손해를 보게 되므로 무용지물이다. LTCM이 그랬다.

윌리엄 맥도너(William McDonough) 뉴욕 연준 총재도 이 점을 인정했다. 그는 의회 청문회에서 헤지펀드에 대한 구제금융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서 전세계 시장이 동시에 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 LTCM의 분산 투자는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고 말했다.

메리웨더는 첨단 과학을 이용한 투자방법을 사용했다. 그가 가장 즐긴 투자기법은 컨버전스 트레이딩(convergence trading)’이었다. 부수적으로 총수익 스왑(total-return swap)’이라는 기법을 간간이 채택했다.

컨버전스 트레이딩1987년 블랙먼데이 때 메리웨더를 월가의 스타로 만들어준 투자기법이다. 조건이 비슷한 두 개의 유가증권이 현저한 가격차를 보이고 있을 때 비싼 것을 팔고 싼 것을 사두면 언젠가 가격이 한 지점에서 일치하고 그 차액을 얻는 수법이다.

LTCM은 가격차가 크게 벌어진 비슷한 종류의 유가증권을 찾으러 전세계를 돌아다녔다. 그것이 채권이든, 증권이든, 또는 미국의 것이든 유럽의 것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새로 발행된 30년 만기 미국 재무부 채권(TB)과 발행한지 1년이 지난 29년 만기의 채권이 그들의 주수입원이었다. 금융시장에 불안요인이 발생하면 새로 발행된 30년 만기 TB 가격은 오르고, 29년 만기 TB의 가격은 정체한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정상화되면 금새 29년 짜리도 30년 짜리와 가격이 비슷해진다. 만일 가격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그들은 파생금융상품이라는 헤지 수단을 사용했다.

LTCM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브로커들을 통해 30년 만기 TB를 사서, 즉각 시장에 팔아 넘긴다. 동시에 다른 은행에서 돈을 빌려 29년 만기 채권을 산다. 29년 짜리와 30년짜리의 가격에 접근할 때 29년 짜리를 팔아버린다. 이 복잡한 거래과정을 통해 LTCM1995년과 96년에 40%를 넘는 높은 수익을 올렸다.

이탈리아와 영국 채권시장에서도 컨버전스 트레이딩 기법을 사용했다. 예컨데 이탈리아 국채를 팔고, 이탈리아 은행의 채권을 사는 경우 은행채의 가격과 국채 가격이 근접하면 이익을 볼 수 있다. ‘브래디 본드(Brady Bond)’라는 이름의 남미 국가 채권은 미국 재무부 채권의 담보로 발행됐기 때문에 시장이 정상화되면 가격이 좁혀진다. LTCM은 예컨데 파라과이 채권을 팔고 브라질 채권을 사서 가격차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컨버전스 트레이딩은 금융시장의 사이클을 컴퓨터가 계산해낸 수학 공식에 대입, 그 주기를 파고드는 수법이다. 주가나 채권 가격이 하루에서 서너차례 오르락내리락하고, 일주일, 한 달을 사이에 두고도 올랐다내렸다를 반복한다. 따라서 비슷한 가격의 물건이라도 그 가격차가 커졌다가 좁아지는 진폭을 반복한다. 가격차의 진폭이 클 때 덤벼들고, 진폭이 좁혀질 때 빠져나오는 수법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파국에 접어들면 진폭의 주기와 폭이 변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한 달이면 돌아와야 할 주기가 2~3달로 길어지고, 진동폭도 몇 배로 커진다. 자기 돈으로 투자할 경우 긴 시간을 버티고 있으면 언젠가 좋은 시기를 기다리겠지만, 남의 돈을 굴리는 펀드의 입장에서는 단기차액을 얻지 못하면 손해를 보고, 부채의 규모가 큰 펀드일수록 매일매일 채무 상환에 쫓기다 파산위기에 처하기 십상이다.

 

트레이딩 룸 /위키피디아
트레이딩 룸 /위키피디아

 

간단한 비유를 들어보자.

양떼들이 들판에서 풀을 배불리 뜯고 있다가 비가 후득후득 듣자 목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계곡을 지나는데 갑자기 총성이 들렸다. 목동은 양을 향해 총을 쏘지 않았으나, 겁에 질린 양떼들은 좁은 계곡을 서로 밀치며 도망쳤다. 양떼들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양을 일으켜 줄 생각도 않고 넘어진 동료의 몸을 밟고 맹렬하게 돌진했다.”

 

이 비유는 1997년 하반기 이후의 국제금융시장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19977월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풍요를 구가하던 국제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이 안전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러시아 사태는 목동의 총에 비유된다. 러시아가 세계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지만, 냉전시대에 미국과 경쟁하던 초강대국이 파산을 선언하자 양떼들은 갑자기 좁은 탈출구를 향해 돌진했다. 그때 수많은 금융기관들이 밟혀져 죽었고, 메리웨더의 헤지펀드도 그 중 하나였다.

아시아 사태이후 투자자들은 미국 재무부채권(TB)으로 몰려들었다. TB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정부가 담보하는 유가증권인 만큼 미국이 망하기 전에는 지급능력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에서 겁에 질린 투자자들이 TB를 사들이는 바람에 TB가격이 폭등했다. 그러나 겁에 질린 투자자들이 30년 만기 TB만 찾고 29년짜리는 거의 찾지 않았다. 따라서 30년 만기 TB는 폭등했지만 29년 만기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두 채권의 가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커졌고, LTCM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게 됐다. TB는 메리웨더의 양떼들이 주식으로 삼는 초원의 풀이었다. TB 시장에서 먹을 것이 사라지면 다른 곳에서 먹을 것이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유럽에서 이탈리아 국채와 은행채의 가격차도 오히려 벌어졌고, 다른 채권시장도 마찬가지였다. 기름진 초원에 갑자기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졌다.

LTCM은 또 총수익 스왑이라는 테크닉을 즐겨했다. 일종의 파생상품 거래다. 예를 들어 헤지펀드가 브로커 회사로부터 A라는 주식 100만 달러 어치를 사면서 1%의 거래 수수료를 준다. 일정 기간이 지나 주가 상승액이 배당보다 많아지면 그 차액만큼 펀드가 브로커회사로부터 돈을 돌려 받는다. 그러나 주가가 배당비율 아래로 떨어지면 차액만큼 펀드가 브로커회사에게 돈을 지급한다.

총수익 스왑은 펀드가 1만 달러의 적은 수수료를 지급하고 100만 달러 어치의 주식을 거래하는 장점이 있다. 주가가 오르면 적은 돈을 투자해 큰 이익을 보지만, 주가가 하락하면 엄청난 손해를 본다.

그런데 러시아 사태 이후 뉴욕 주가는 폭락했다. 한때 9,000을 넘던 다우존스 지수는 7,000대까지 떨어졌다. LTCM은 총수익 스왑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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