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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위기
러시아 대표단, 미국 국무·재무부 부장관 만나 지원요청…클린턴 동의
1998 러시아 파산③…자본주의 실험의 위기
2019. 09. 28 by 김현민 기자

 

IMF는 러시아가 공산주의 경제에서 자본주의 경제로 이행하는데 물질적 지원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IMF가 러시아 위기를 가속화하고 부채질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특히 19985~7월에 더더욱 그랬다.

그해 5월말, IMF 대표단은 러시아와 견해 차를 좁히지 못하고 협상을 결렬시키면서 이례적인 성명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협상대표단인 마틴 길만(Martin Gilman) IMF 러시아 사무소장은 성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스크바 당국은 자금을 얻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IMF가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됐다.”

성명은 거의 위협에 가까웠다. 외국 투자자들의 눈에는 IMF가 더 이상 러시아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게 했다. IMF5년간 협상을 했던 러시아측 대표들도 IMF가 이렇게 공개적 비난을 한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IMF 러시아 사무소장의 말 한마디가 국제 시장에는 충격을 줬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그의 말이 러시아를 떠나라는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 한꺼번에 러시아를 떠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단기 금리를 50%에서 150%3배나 올리는 극약 처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료: RoboResearch
자료: RoboResearch

 

위기가 임박하자 키리옌코 총리는 한밤중에 미셸 캉드시 IMF 총재를 전화로 불러 사정을 했다. 키리옌코는 러시아가 심각한 상태에 빠졌으니, IMF가 성명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캉드시가 몸소 나서 러시아 사무소의 성명을 뒤집으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그는 곧바로 국제 투자자들을 향해 시장에서 보는 것과 달리 러시아 경제는 위기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IMF 이름으로 공식 성명을 내고 옐친 정부는 개혁 프로그램을 잘 이행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워싱턴에 상주하는 존 오들링스미(John Odling-Smee) 러시아 과장을 모스크바로 급파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캉드시가 아무리 하부 조직의 성명을 부인해도 외국 투자자들은 믿질 않았다. 투자자들은 IMF의 새로운 성명과 캉드시의 발언의 속내를 알고 있었기에 모스크바 탈출을 멈추지 않았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를 방어하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보유 외환마저 풀었다. 하루에도 수백만 달러를 풀었지만, 떠나가는 외국 자본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러시아가 며칠 버틸지 모르는 순간이었다.

옐친 대통령은 아예 IMF를 제껴놓고 미국과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 IMF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다급해진 옐친은 아나톨리 츄바이스를 워싱턴에 보냈다. 츄바이스는 러시아에 자본주의를 도입하고, 국영기업 민영화 등 경제 개혁을 주도했던 인물로 서방 세계에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서방세계의 앞잡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츄바이스 일행은 522일 미국에 도착했다. 다음날은 메모리얼 데이(현충일)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미국인들은 토요일, 일요일을 합쳐 메모리얼 데이인 월요일까지 3일 간의 연휴를 즐긴다. 러시아 사절단은 워싱턴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그들은 본격적인 대미 로비활동에 들어갔다. 한시가 급한데 미국의 연휴를 기다려 호텔에서 마냥 보낼 수 없었다. 워싱턴 청사를 가보아야 소용이 없고, 각자의 집을 찾아 다녀야 했다.

츄바이스 일행은 미국에 급전을 빌려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다. 다만 미국이 러시아를 지원한다는 다짐이 필요했다. 국제 금융시장을 진정시키는 유일한 힘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이른 아침 그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워싱턴 북동쪽에 위치한 스트로브 탈보트(Strobe Talbott) 국무부 부장관 저택을 찾았다. 그는 미국 국무부에서 러시아통이었다. 탈보트 부장관은 클린턴 대통령이 러시아를 지지할 것이라는 힌트를 주었다.

문제는 국무부가 아니라 재무부였다. 돈으로 생긴 문제는 돈줄을 쥐고 있는 사람과 접촉해야 한다. 국무부 부장관에게서 좋은 감을 얻은 츄바이스 일행은 곧바로 메릴랜드주 교외에 있는 서머스 재무부 부장관 저택으로 차를 몰았다. 때마침 데이비드 립튼 차관과 다른 재무부 고위관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휴일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청바지에 스포츠 웨어를 입고 있었다. 양복에 넥타이까지 멘 러시아 사절단은 본론을 끄집어냈다. 미국이 러시아를 지지해야 할 역사적 입장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초기에는 개혁가들이 외롭지만,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그 숫자가 늘어납니다. 미국은 모두 개혁적인 사람들로 차 있질 않습니까.”

그는 러시아 경제 개혁을 주도한 사람들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강조했다. 자칫하다간 공산주의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 혁명을 일으킨 소수의 개혁가들이 몰락할 위기에 처해 있음을 외교적 언사로 표현했다. 미국으로선 그게 가장 위협적인 요소였다. 만일 의회를 장악한 공산주의자들이 경제 위기를 기화로 정권을 장악한다면 미국은 또다시 냉전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러시아는 아직도 2만기 이상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자칫하면 미국은 또다시 군비 경쟁에 돌입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소련 붕괴 후 누려온 미국의 장기호황이 끝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재무부도 러시아의 경제 안정이 세계 질서 안정에 필요했다. 그들은 빵 몇 조각과 오렌지 주스를 마신 후 곧바로 협상에 들어갔다. 청바지 팀과 양복 팀은 서로 한 발짝씩 물러났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할 때는 협상이 쉽게 타결된다. 클린턴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러시아 지원을 발표하는 대신에 러시아도 근본적인 경제 개혁을 다짐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다음날(24)은 일요일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겨냥한 성명을 발표했다.

러시아가 조건을 이행한다면, 필요할 경우에 미국은 IMF와 세계 은행을 통해 러시아를 지원할 것이다.”

클린턴의 러시아 지지 발언이 바로 시장을 회복시키지 못했다. 월요일인 26일 서방 투자자들은 러시아 탈출을 본격화했고, 러시아는 금리를 올려 이를 붙잡아 매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의 지지는 곧바로 IMF와 러시아 사이의 재협상을 이끌어냈다. 클린턴은 구체적으로 얼마를 지원하겠다고 밝히지 않았지만, 츄바이스 일행은 50~100억 달러의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고 발표했다. 50억 달러는 미국측 주장이고, 100억 달러는 러시아측 희망사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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