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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위기
미국, IMF 동원해 226억 달러 1999년말까지 지원약속…위기 일시 지연
1998 러시아 파산④…선심 쓰는 미국
2019. 09. 29 by 김현민 기자

 

미국의 요구로 IMF는 다시 러시아와 협상을 벌였다. 이번에는 분기별 지원금 7억 달러가 아니라 추가 지원금 액수를 결정하는 다른 차원의 협상이었다. 협상이 재개되자, 국제 투자자들의 엑소더스는 다소 진정됐고, 러시아 중앙은행은 금리 폭등 1주일만인 64일 단기금리를 60%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이 수준도 한달 전에 비해 두배나 높은 것이었다.

IMF의 협상 전략은 간단 명료했다. 러시아가 얼마나 개혁 이행을 약속하느냐에 따라 금액을 늘린다는 전략으로 러시아를 밀어부쳤다. 한마디로 돈은 넉넉히 줄테니 이번에 완전한 시장경제로 이행하고, 재정 적자 축소에 심혈을 기울이라는 뜻이었다.

IMF2인자 스탠리 피셔가 협상을 이끌었다. 그는 교조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원리원칙을 강조하며 협상에 임했다. IMF는 러시아의 연간 재정적자 규모를 GDP5.5%에서 2.0~2.5%로 떨어뜨리라고 요구했다. 재정적자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려면 세금을 늘려야 하는데, IMF는 또다시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러시아가 이미 서방세계에 머리를 숙인 이상 밀어부쳐도 된다고 IMF는 생각했던 것같다.

러시아도 녹녹치 않았다. 64일 러시아는 125,000만 달러의 유로 본드 발행에 성공했다. 여기에는 미국의 골드만 삭스의 농간이 개입했다.

유럽과 뉴욕 월가에서 발행한 러시아 국채는 당초 10억 달러를 목표로 했는데 25,000만 달러가 더많은 양이 그것도 25분만에 순식에 매각됐다. 러시아는 여기서 자신감을 얻어 앞으로 55억 달러의 유러본드를 추가 발행하고 1주일 후에 일단 9억 달러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정부는 빠져나갔던 해외 투자자들이 다시 돌아온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국채 발행 금리는 여전히 45~50%에 이르렀다. 이런 금리로 무한정 채권을 발행할 수는 없는 여건이었다. 러시아는 일단 눈앞에 다가온 위기를 한숨 늦출 수 있다고 생각해 자신감을 갖고 IMF와의 협상에 배짱을 부렸다.

협상은 한 달을 끌었다. 미국의 러시아 전문가인 하버드 대학의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교수는 미국의 경제 전문 뉴스 채널인 CNBC에 출연, IMF의 러시아 지원 노력을 비판했다.

모스크바 당국은 루블화 평가절하를 피할 수 없다. 그것이 시장 경제를 위해서도 공정하다. 루블화가 부당하게 높게 책정돼 있는데 그것을 지탱하려는 노력은 러시아를 시장에서 고립시키는 일이다.”

국제 금융시장도 IMF 협상이 지연되자 러시아는 불가불 루블화를 절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한순간 위기를 넘겼다 싶었던 러시아 경제가 다시 벼랑으로 치달았다. 러시아 국채 금리는 다시 올라 국제 시장에서 내전중인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의 채권 금리를 넘어섰다. 탄광 노조가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고,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매각이 유산됐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러시아 경제는 벼랑 끝에 매달려 있었다. 기록적인 금리에 내놓은 러시아 국채는 사는 사람이 없어 유산됐다. 아직도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은 1,500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데 비해 자본주의로 돌아선 러시아 정부는 120억 달러밖에 외환을 갖고 있질 못했다. 그나마 매일 시장에 외환을 풀다보니 언제 바닥날지 모를 일이었다. 달러에 고정시켰던 루블화는 IMF와의 협상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폭락할 위기에 이르렀다.

 

아나톨리 츄바이스 /위키피디아
아나톨리 츄바이스 /위키피디아

 

러시아 정부의 사절단 대표 아나톨리 츄바이스가 다시 워싱턴으로 날라왔다. 그는 IMF가 부른 금액의 두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IMF56억 달러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러시아에게 제의해 놓고 있었다. 츄바이스는 112억 달러가 있어야 한다며 미국에 매달렸다.

미국 재무부는 더 이상 IMF 협상단을 믿지 못하겠다며 직접 나섰다. IMF가 협상을 질질 끄는 바람에 위기는 가속화되고 그 사이에 지원 금액이 두배나 늘어나 버렸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었다.

미국은 러시아가 요구한 112억 달러에 4억 달러를 더 얹어 116억 달러를 IMF를 통해 지원하고, 세계 은행에서 40억 달러, 일본이 지난 4월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한돈 15억 달러를 합쳐 모두 171억 달러를 러시아에 추가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이미 지원키로 예정돼 있는 55억 달러를 합치면 226억 달러가 1999년말까지 18개월 동안 러시아에 들어가도록 약속했다.

713IMF는 러시아와 미국이 합의한 내용을 추인함으로써 미국이 IMF의 배후 실력자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남의 돈을 자신의 돈인 것처럼 선심을 썼다. 일본이 개별적으로 러시아에 지원하기로 약속한 돈을 미국이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미국은 IMF 패키지에 이 돈마저 포함시켜 생색을 냈다. 그렇다고 미국이 별도의 계정을 만들어 러시아를 지원한 것은 한푼도 없다. 매년 IMF에 내는 분담금을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미국의 IMF 분담금 비율은 18%에 불과한데도 남의 나라 돈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미국의 지원으로 IMF 협상을 타결한 옐친 정부는 의회를 설득했다. 비상시국이었기 때문에 러시아 의회도 협조했다. 사사건건 옐친 정부와 대립했던 러시아 의회(두마)는 기업에 대한 법인세 세율이 30%에서 35%를 늘리는 등 옐친 정부가 제출한 개혁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미국의 강권으로 이뤄진 IMF의 지원 약속은 위기를 잠시 지연시키는 진정제에 불과했다.

 

모스크바의 연맹회관은 18세기에 크리미아 왕자가 지은 건물로, 러시아 귀족들이 사교클럽으로 이용했었다. 공산치하에서도 이 건물은 레닌, 스탈린, 브레즈네프등 고위층들이 사교장소로 이용했다.

크레믈린 당국이 모라토리엄과 루블화 절하를 단행하기 두달전인 19986. 뉴욕 월가의 간판급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가 이 곳에서 큰 행사를 벌였다. 러시아 경제는 서서히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건만, 골드만 삭스는 휘황찬란한 조명을 밝힌 채 자본주의의 극치를 자랑했다. 행사 목적은 러시아 정부의 국채 발행.

골드만 삭스는 조지 부시 미국 전대통령을 초청했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기업에서 찬조금만 내면 특정 행사에 얼굴을 들여 미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클린턴에 앞서 대통령을 지낸 부시는 10만 달러를 받고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러시아 총리를 지냈던 거물도 참여했다. 월가의 무리들은 채권 장사를 하기 위해 미국과 러시아의 전직 고위층을 모셔놓고 화려한 잔치를 벌였던 것이다.

러시아 경제는 엉망진창이었다. 정부의 은행 구좌는 텅텅 비었고, 우편 제도마저 붕괴직전에 있었다. 그러나 골드만 삭스는 러시아의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무려 125,000만 달러로, 당초 예상한 10억 달러보다 많은 양의 채권을 간단하게 소화해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월가의 간판 은행은 모스크바에서 그 명예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로써 벼랑에 몰렸던 러시아는 하루하루 만기가 다가오는 10여억 달러의 단기 차관을 장기로 전환함으로써 이젠 살수 있게 되는 게 아닌가 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두달후 러시아는 마침내 빚을 갚을 수 없다며 위험한 도박을 벌였다. 물론 골드만 삭스가 나서서 발행에 성공한 채권도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골드만 삭스는 피비린내 나는 경제 파국에서 이미 멀찌감치 달아나 있었다. 월가의 브로커 회사는 이익을 챙기면 달아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골드만 삭스는 5,000만 달러에 이르는 채권발행 수수료를 챙겼고, 동시에 러시아에 빌려줬던 단기 차관을 다른 은행에 비해 먼저 변제받았다. 러시아가 채권 발행에서 얻어지는 수익금을 5억 달러에 달하는 골드만의 빚을 우선 갚도록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사태가 발발하자, 골드만은 손실이 극히 미미하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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