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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위기
정치 위기가 경제 위기를 불러…미국 금리 인상으로 달러, 급속히 탈출
1995 멕시코 위기①…정치혼란이 부른 비극
2019. 10. 01 by 김현민 기자

 

필자는 19973월에 멕시코를 다녀온 적이 있다. 19951월에 발생한 멕시코 페소 위기가 어떻게 발생했으며, 멕시코는 그후 어떤 과정을 거쳐 경제를 회복시켰는가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한국 경제는 가라앉고 있었고, 잘못하다간 제2의 멕시코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우리나라가 멕시코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대부분 식자층의 마음 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필자도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다.

멕시코인들은 위기를 겪은 지 2년이 지났지만 참담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호텔 앞에는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조그마한 목각 인형을 만들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호객 행위를 했고, 도시 외곽은 우범지대화로 변해 있었다. 매연이 멕시코 시티를 자욱히 덮었지만 공해 방지에 쓸 돈이 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필자는 우리는 멕시코와 같이 되지는 않을 꺼야, 한국이 어떤 나라인데...” 하면서 멕시코를 빠져 나와 뉴욕으로 돌아 왔었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 한국 경제는 벼랑 끝에 떨어지고, 결국은 멕시코와 같은 길을 걸었다. 한국 원화는 페소화보다 빠른 속도로 폭락했고, 한국은 멕시코보다 많은 금액의 IMF 자금을 얻어야 했다. 멕시코 사태는 아시아 위기를 예고해주는 것이었고, 아시아 국가들이 걸어야 할 고통의 길을 예비했던 것이다.

 

멕시코 시티는 서울 못지 않게 교통 체증이 심했다. 차량 행렬이 멈춰서면 7~8세쯤 되어 보이는 꼬마 두어 명이 잽싸게 거리로 뛰어나와 무동을 탔다. 꼭대기에 탄 어린이가 대머리 모습을 한 가면을 쓰고 한바탕 광대춤을 추고는 차량을 돌며 동냥을 했다.

그 탈춤 가면의 얼굴은 바로 전직 대통령 카를로스 살리나스(Carlos Salinas)였다. 당시 멕시코에서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살리나스 전 대통령을 꼽았다. 집권중 부정부패와 정치테러를 일삼았고, 경제 위기를 자초한 장본이기 때문이었다.

멕시코는 이미 19828월에 모라토리엄(moratorium: 대외지급유예)을 선언해, 대외채무를 갚을 능력이 없음을 국내외에 선언한 경험이 있다. 당시의 모라토리엄은 방만한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단기 오일달러를 대규모로 도입한데서 발생했다. 여기에다 주요 외화획득원이었던 석유수출대금이 가격 급락으로 차질을 빚으면서 경상수지가 급격히 악화됐다. 멕시코는 3개월간 지불유예를 선언하고, IMF와 구제금융 협상에 들어갔다. 국제 금융질서의 붕괴를 우려한 미국의 적극적인 뒷받침으로 IMF, 미국, 국제결제은행(BIS)등이 모두 77억 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하고, 국제민간 채권은행단이 100억 달러의 단기채무 상환을 유예하기로 했다.

그러나 3년후인 19857월 멕시코 정부가 긴축정책 등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IMF가 지원을 중단했으며, 이에 따라 2차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이 때에도 다시 미국의 주도로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그렇지만 멕시코는 완전히 외채위기를 혼자의 힘으로 극복하지 못한 채 19897월 니콜라스 브래디 미국 재무장관 주도로 외채원리금 감면 등의 조치가 취해지면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따라서 1995년의 위기는 처음이 아니었다. 페소화 폭락의 원인에 대해 한국에서도 많이 연구됐다. 많은 보도진들이 멕시코를 취재하기 위해 다녀갔다.

금융대란이 일어나기 전해인 1994년 멕시코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고는 286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에 달해 외환 부족을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해는 대통령 선거의 해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카를로스 살리나스 멕시코 전 대통령 /히스토리카 위키
카를로스 살리나스 멕시코 전 대통령 /히스토리카 위키

 

19941월 과테말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치아파스주에서 대규모 농민 반란이 일어났다. 표면적인 원인은 토지분배였지만 마야문명의 후예로 농사에 종사하던 인디언들이 스페인 정복자에 대해 항의하는 일종의 독립운동이었다. 70년간 장기 집권한 제도혁명당 (PRI) 지도부는 연말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만 넋이 빠져 손을 놓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서 집권당 내부의 권력 암투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마침내 그해 3월 집권당의 루이스 콜로시오 대통령 후보가 북부 티후아나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9월 집권당 사무총장인 루이스 마시유씨도 암살됐다. 집권당 내부의 분란과 권력다툼이 본격화되자 소수 가진자와 외국인 투자자들이 외국으로 도망쳤다.

여기에다 대통령 친인척의 부정부패와 권력 개입이 나라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살리나스 대통령의 친형인 라울 살리나스는 대규모 자금을 국외로 빼돌린 혐의로 스위스 은행과 미국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정치불안이 가중되면서 집권당 상층부마저 돈을 스위스나 카리브해의 역외 은행으로 빼돌렸고,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그해 10월말 외환보유고는 연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40억 달러로 뚝 떨어졌다.

 

이런 형편에 카를로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는 자부심에 젖어 급속히 국내 시장을 개방, 무역적자가 가중됐다. 1993134억 달러였던 무역수지 적자는 1994184억 달러로 불어났다. 그럼에도 카를로스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외국인 투자를 늘린다는 명분 아래 환율 시장에 개입, 페소화 가치를 25~30% 과대 평가하는 오류를 범했다.

기층민중의 과격한 투쟁, 선거를 앞둔 정쟁 격화, OECD 가입에 따른 무모한 시장 개방, 경상수지 적자에 대한 안이한 대처 등이 겹치자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내려앉고 말았다.

 

그러면 멕시코는 정치불안과 시장 개방 때문에 망했을까. 정치 불안은 경제 위기의 한 요소가 될 수 있어도 하루 아침에 통화가치가 수직 하강하는 파멸을 몰고 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시장 개방이 주요원인이었는가. 글로벌 시대에 시장 개방이 국제 자본시장의 논리다. 시장을 개방하는 나라는 모두 파국적인 경제 침체를 겪어야 한다는 말인가.

 

멕시코 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이웃나라인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이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1994년초부터 951월까지 7차례에 걸쳐 3%에서 6%로 두배나 인상했다. FRB는 국내의 인플레이션 조짐을 제거하기 위해 사전에 금리를 인상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결과 전세계 국경을 넘나드는 유동성 자금이 미국으로 집중됐다. 미국의 고금리 정책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멕시코에 가장 심각하고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사실 1990년대초 멕시코 경제를 부흥시켰던 원동력은 뉴욕 월가의 자본이었다. 페소화 폭락의 주범으로 찍혀 국외를 전전하던 살리나스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 등 미국 명문대학에서 공부한 자유주의 경제론자였다. 그들은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철철 넘치는 미국의 유동성을 끌어들여 멕시코를 발전시키려 했다.

미국은 멕시코의 번영을 자신의 공으로 생각했다. 인접 미국의 번영이 멕시코 경제 호황을 가져왔다고 착각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캐나다와 함께 멕시코를 하나의 경제권, 즉 자유무역지대로 만들기로 구상하고,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결성했다.

1990년대초 멕시코 경제 붐은 금융부문에 한정됐다. 예컨대 미국 국채(재무부 채권)를 사면 연간 5~6%의 수익을 얻는데 비해 멕시코 채권은 12~14%의 수익을 보장했다. 미국의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미국의 단기자본은 고금리를 보장하는 멕시코로 대거 넘어갔다. 멕시코 은행도 저리의 미국 달러를 흥청망청 빌려 썼다. 그렇다고 멕시코 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거나 고용이 증대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미국의 유동성이 멕시코에 건너와서 놀았기 때문에 멕시코 시티의 볼사(Bolsa) 주가는 3년만에 세배로 뛰었다. 월가의 뛰어난 펀드매니저와 멕시코 은행 중에서는 연간 80~100%의 수익을 올리는 재주꾼도 있었다. 얼간이 같은 투자자는 이러한 번영이 영원히 갈 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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