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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위기
신기술에 의해 경기사이클 소멸 주장…버블 꺼지며 회계부정, 주가조작 부작용
닷컴버블 붕괴②…무너진 신경제 이론
2019. 10. 12 by 김현민 기자

 

미국 경제가 장기호황을 구가하고, 뉴욕 증시가 장기 불-마켓(bull market)을 형성하던 1990년대에 미국 경제학계에는 기업들이 네트워크에 의한 정확한 전망을 통해 생산을 하기 때문에 수급 불균형과 재고 누적에 따른 전통적인 경기사이클이 종식됐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신경제학파(new economics)’가 생겨났다.

이 학파에 속하는 젊은 학자들은 경기 변동이 사라졌으므로 미국 경제가 예측 가능한 미래까지 장기호황을 지속할 것으로 믿었다. 유토피아적 신경제학자들이 그들의 이론을 뒷받침해 줄 기업으로 10년 만에 세계 최대 인터넷 장비회사로 부상한 시스코 시스템스를 꼽았다. 시스코는 지난해 한때 인텔을 제치고 주식 시가총액으로 1위에 올라 신경제의 총아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넷과 통신산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신경제의 총아도 예외가 될수 없었다.

200158일 저녁, 시스코의 CEO 존 체임버스(John Chambers)는 뉴욕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을 만났다. 그는 지난 4월로 끝난 회계분기 매출이 전 회계분기보다 30% 떨어졌고, 다음 분기에도 매출이 10% 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분기 매출 47억 달러에 27억 달러의 적자가 났으니, 시스코의 경영상태가 심각한 수위에 도달한 것이다. 체임버스는 ‘100년만의 대홍수라는 표현을 써가며 적자요인을 가급적 외부 경제환경의 탓으로 돌렸다. 시스코의 최고경영자 자신도 거품이 꺼질줄 몰랐던 것이다.

시스코 경영위기의 주범은 바로 창고에 가득 쌓인 재고물량이다. 이 회사의 재고는 IT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200011월에서 20011월까지 한 회계분기에 25억 달러 어치나 쌓였고, 다음분기에도 조금 줄어 들었지만 22억 달러나 됐다. 분기 매출의 절반에 이르는 엄청난 물량이다.

그런데 시스코는 이 재고의 3분의 2를 폐기 처분했다. 보관했다가 다시 쓸 수도 있을 텐데, 15억 달러 어치의 값비싼 물자를 굳이 사장시키는 이유는 IT 산업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에 9개월 전에 사들인 원료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신경제 이론가들은 새로운 시대에도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이 생기지만 정보시스템에 의해 곧 균형을 되찾는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시스코의 재고 누적은 이들이 주장해 온 경기사이클 소멸론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현대적 e-비즈니스의 선두 주자임을 자처해 온 시스코는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 공간에서 공정을 관리하고, 코스트를 줄이겠다고 공언했지만, 그 결과는 현실의 공간에 나타나지 못했다.

시스코의 경영위기는 신경제 이론에 많은 허점이 있음을 드러냄과 동시에 전통 이론이 내세우는 경제의 기초여건(펀더멘털)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시켰다. 신경제 이론가와 신경제 경영인들도 그들이 비판해 온 구경제이론과 새로운 접목을 시도, 변증법적 발전을 도모해야 할 단계가 온 것이다.

 

1990년대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솔로(Robert Merton Solow) 교수는 미국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경제임이 입증되고 있고, 따라서 갑자기 침몰할 우려는 없다.”고 말했다. 역사상 최장기 호황을 구가하며 낙관론에 빠진 당시 미국 경제학자들은 이른바 신경제(new economy) 이론을 제기했다.

로버트 솔로와 같이 신경제학파는 미국 경제에 경기사이클이 사라졌으며, 주식시장은 항상 오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탠포드 대학의 폴 로머 교수(Paul Romer)창의적 아이디어와 신기술에 의해 경제가 성장하는 신성장 이론을 제기했다. 새로운 경제이론은 그 자체가 팍스 아메리카나를 대변했다.

 

로버트 솔로 교수(왼쪽)와 폴 로머 교수 /위키피디아
로버트 솔로 교수(왼쪽)와 폴 로머 교수 /위키피디아

 

그러나 21세기 첫 불황에 거치면서 미국의 신경제 이론도 붕괴했다. 창의적 아이디어의 선구자였던 인터넷과 IT 산업은 폭발했다. 시장경제를 지향했던 미국 경제는 시장을 속인 기업인과 금융인들의 회계부정, 주가 조작등 범죄사건이 터지면서 세계 경제의 모델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던 미국 경제는 또다른 침체에 직면해 있으며, 주식시장은 장기침체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렸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처였던 미국 시장은 이제 외국인들의 기피 대상이 됐고, 팍스 아메리카나의 상징인 그린백(Greenback, 달러)은 아래로 꺾였다.

신경제의 핵심은 신기술에 의한 성장 시장 지향적 경영 시스템 수급조절에 의한 경기사이클 소멸등으로 요약된다. 1920년대 철도와 전기에 의한 신기술 호황이 대공황을 초래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과 통신산업이 주도한 1990년대 신기술의 거품은 이미 2년전에 나스닥 붕괴와 함께 꺼졌으며, 현재까지 미국 경제 회복의 관건인 투자 회복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주식시장 붕괴는 신경제 이론가들이 칭찬한 시장 지향적 시스템에 위기가 발생한 것을 의미했다. 1990년대에 미국 기업인들은 주식시장을 쳐다보며 장기적 비전보다는 단기적인 수익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잭 웰치 회장와 같은 스타급 경영인들은 거액의 스톡옵션을 부여받고 불필요한 사업과 인력을 과감히 잘라 냄으로써 월가 투자자의 인기를 끌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경기가 꺾어지면서 이제 스톡옵션은 경영인들의 노비문서로 전락했다. 월드컴, 엔론, 타이코, 임클론등의 경영인들은 휴지조각으로 처한 스톡옵션을 보전받기 위해 회계장부 조작, 내부자 거래, 탈세등 온갖 불법행위를 자행했다. 기업들은 시장의 요구에 따라 단기적 수익을 올리기 위해 경기가 완만하게 침체하는데도 직원들을 대량해고하는 바람에 실업률을 급증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했다.

 

시장주의자들은 완전한 합리적 가격운운하며, 다우존스 지수가 앞으로 몇 년후에 36,000 또는 4, 10만을 간다고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들이 무시했던 주가수익률(PER)의 개념이 이제 다시 중시되면서, 고평가된 뉴욕 주가는 3년째 가라앉았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위기는 기업 경영인들이 투자자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월가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분식회계라는 더러운 결과를 낳았고, 경영수지가 악화되면 회사가 근로자를 잘라내는 고용시스템이 실업률을 급상승케 했다. 저축을 하지 않고 여유자금을 증권시장에 부어버린 미국인들은 주가 하락으로 소비 둔화에 직면했다. 이런 결과는 모두 미국식 신경제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식 경제를 불타버린 경제라고 지적했다.

 

신경제론자들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급격한 성장을 조절하고, 기업도 수요를 앞지르는 공급을 컴퓨터 시스템으로 제어하기 때문에 파국적인 불황을 피할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경제에도 고전경제학의 수요 공급의 법칙이 적용됐다. 인터넷과 광케이블 투자는 수요를 수백~수천% 초과하는 바람에 현재 5% 미만이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은 경기회복의 처방을 고전 이론, 즉 구경제(old economy) 방식에서 찾았다. 산업부문의 과잉 재고를 정리, 공급을 줄이고, 통화량 확대와 세금 감면을 통해 신규수요를 창출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최종 수요(final demand)’가 발생하기 앞서 신경제의 부산물, 증시 과열 달러 고평가 허술한 회계 관리 스톡옵션 중심의 경영관행등의 모순이 터져나왔다. 이런 문제가 미국 경제 회복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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