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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위기
일본을 닮아가는 미국 경제…그린스펀, 금리인하로 경기 위축 대응
닷컴버블 붕괴③…디플레이션 망령
2019. 10. 13 by 김현민 기자

 

1997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선진 8개국(G7) 정상회담에서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식 자본주의가 가장 강력하며, 일본과 유럽은 미국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발언은 1990년대초 일본 총리가 G7 회의에서 미국의 쌍둥이적자를 갚아줄 수 있다고 큰소리친데 대한 앙갚음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의 잔치가 끝난후 취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선진국 정상회담에서 미국 경제가 최상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자랑하지 못했다. 1990년대 10년 호황에 가려진 미국 경제의 누적된 모순이 한꺼번에 표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미국 경제는 슬럼프의 기간이 3년이 지나면서 10년 이상 장기침체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 일본 경제를 닮아갔다.

 

미국 경제가 1990년대 10년간 장기호황을 구가하면서 나스닥 지수는 한때 5,000 포인트까지 가파르게 상승했고, 집에서 쉬던 할머니에게까지 파트타임 일자리가 주어질 정도로 완전고용시장이 형성됐다. 그러나 자산거품이 꺼지면서 미국 경제는 2001년부터 2년째 경기침체와 1%대의 저성장을 지속했다.

1990년대 장기호황은 미국 경제에 다섯 개의 거품을 형성했다. 투자 증시 소비 달러 부동산이 바로 그것이다.

이중 가장 먼저 꺼진 것이 투자 거품이다. 1센트의 수익도 내지 못하는 인터넷 기업에 수억 달러의 자금이 유입되던 투자거품은 21세기 첫해인 2000년에 폭발했다.

뉴욕 증시의 블루칩 지수는 20027~9월에 거의 패닉에 가깝게 폭락했다. 나스닥 거품 붕괴에 이어 블루칩 주식의 2차 거품 붕괴가 실현된 것이다.

1990년대에 10년간 상승기조를 달려온 달러는 2002년에 10% 가량 하락했고, 무역적자가 늘어나는한 몇 년간은 하락기조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다섯 개 거품중 2003년초까지 버틴 것은 소비와 부동산 시장이다. 사상초유의 9·11 테러를 겪었지만, 미국의 경기침체가 완만했던 것은 소비가 강하게 버텨주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은 경기침체 시기에도 오히려 상승했다. 금리가 내리면서 부동산 시장의 거품은 오히려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FRB) 내부에서는 2001년 봄부터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다는 논의가 제기돼 왔다. 중앙은행 사람들은 ‘M1’, ‘M2’등 통화총량 개념을 사용하며 돈줄을 풀었다 당겼다 하는 것으로 경기를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통화정책이 만능 요술방망이는 아니었다. 증시 투자자들의 탐욕과 패닉, 기업인들의 투자과열 등 사회심리적 현상을 통화조절장치로 막을수 없음을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고백한 바 있다.

문제는 1990년대 10년 호황의 잔재인 자산 거품이 언제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은 10년 이상 자산 거품이 꺼졌지만, 주가는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뉴욕 증시도 일본 증시처럼 상당히 오랫동안 가라앉을 가능성이 컸다. 주가가 더 가라앉을 경우 소비의 거품도 가라앉고, 그렇게 되면 미국 경제 회복은 상당한 시일이 걸리게 된다. 다만 다행스런 점은 과거와 달리 불황과 호황을 넘나드는 경기 사이클의 강도가 약해졌다는 사실이다.

 

뉴욕 증시의 거품이 꺼지면서 뉴욕 월가 이코노미스트들 사이에서 미국 경제가 1990년대초 도쿄 증시의 거품 붕괴로 일본이 장기 불황에 돌입한 것과 비슷하지 않느냐는 논란이 벌어졌다.

미국 중앙은행(FRB) 내부에서도 2002년 여름에 일본식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비밀리에 진행됐다. 2002년 여름 뉴욕 증시의 거품이 빠르게 꺼지면서 뉴욕증시의 상징적인 30개 블루칩 지수(다우존스 지수)도 나스닥 지수의 전철을 밟았다.

1990년대초 일본은 부동산과 증시 거품이 붕괴되면서 초기엔 금리를 0% 가까이 인하했고, 나중엔 은행부실을 막기 위해 재정 확대 정책을 취했다. 이런 조치들이 무위로 돌아가지 1997년엔 엔화 약세로 수출을 살리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달러에 자국 통화를 고정시켰던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겪었다.

미국은 2001년에 경기 회복을 위해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하고, 재정 확대 정책을 채택했다. 금리를 더 내리기 어렵게 되고, 5년만에 재정 적자가 발생하자 달러 하락을 용인, 일본과 비슷한 패턴을 걷었다. 그러나 일본의 장기침체는 아시아의 문제로 그쳤지만, 미국의 거품 붕괴가 가져올 불확실성은 세계 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다는 점에서 큰 차이점이 있다.

21세기초 3년간 미국 경제가 겪어온 주가 폭락에 따른 자산거품 붕괴 자본투자 위축 소비 둔화 초저금리 실업률 증가 등이 10년전 일본의 경제 상황과 오버랩되었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일본식 경제의 효율성은 메모리칩 분야의 투자 위축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했으며, 4만 포인트를 목전에 두었던 니케이 지수는 1990년 새해벽두에 붕괴됐다. 일본의 경제학자들도 1990년대 초반에 대장성의 개입으로 조만간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믿었고, 당시 미에노 야스시 일본은행(日銀) 총재는 경제의 기초가 단단하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 글로벌 스탠더드임을 자부했던 미국의 신경제는 IT 산업 붕괴로 한계를 드러냈고, 새로운 밀레니엄 도래와 함께 나스닥 지수는 3년만에 정점에서 4분의1 수준으로 폭락했다. 미국의 광케이블의 경우 기존 설치 회선의 2.6%밖에 사용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블루칩 지수들이 시간차만 있었을뿐 하락했다. 2002년 여름에 월스트리트 저널은 “2년반 동안 계속됐던 베어마켓(bear market)이 앞으로 몇 년은 더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10년간 증시 호황으로 미국인 성년의 절반 이상이 주식을 보유하고, 개인 자산에서 주식 비중이 부동산만큼 높아졌다. 따라서 증시 폭락은 개인의 자산 감소의 효과를 가져와 소비 심리를 둔화시키고, 금융거래 감소로 세수부족을 초래했다. 연방정부는 증권 거래가 급감하면서 2002년에 2,000억 달러에 가까운 재정 적자가 발생, 4년간의 흑자시대를 마감했다.

2000~20012년동안 정보통신(IT) 산업과 나스닥 증시의 침몰이 미국의 1차 거품 붕괴라면, 2002년에는 미국 기간산업 주식인 블루칩이 급락, 2차 거품 붕괴를 맞았다. 1차 거품 붕괴 때 미국은 금리 정책을 주무기로 사용했지만, 실패했다. 2차 블루칩 붕괴를 맞아 미국은 달러 하락을 용인함으로써 제조업의 경쟁력 회복을 도모했지만, 그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금리, 환율, 그 다음에 미국이 경제 회복을 위해 사용할 수단은 무엇인가. 혹자는 전쟁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라크 전쟁, 북한 핵이슈등이 바로 그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은 10년간 장기침체를 지속했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마지막 수단은 2차세계 대전이었다. 전쟁을 통해 군수산업을 부추기고, 이를 통해 다른 산업분야에 파급시킨다는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

 

그린스펀 의장이 미국 중앙은행을 이끌면서 내세운 원칙은 선제적 인플레이션 억제였다. 물가가 상승하기 6~9개월 전에 금리를 조절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사전에 막는다는 원칙이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FRB 내부에서는 일본의 디플레이션에 대해 심도있는 연구와 검토가 이뤄졌다.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은 주가와 달러 하락으로 금융자산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미국 경제에 이제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FRB는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한 2001년에 무려 11차례에 걸쳐 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 은행간 콜금리를 6.5%에서 40년만에 최저인 1.75%로 끌어내렸다. FRB 내부에서조차 금리인하가 지나치다는 반론이 강하게 제기됐지만, 그린스펀 의장은 보너스1% 포인트 정도 더 내리는 과감한 조치를 단행했다. 일본의 제로 금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FRB는 금리를 내렸지만, 경제가 살아나지 않았다. 그러자 그린스펀 의장은 2002년 가을에 또한차례의 금리(0.5% 포인트) 인하, 은행간 콜금리를 1.25%까지 떨어뜨렸다.

기업 부문에선 사실상 디플레이션 상태에 진입했다. 경영인들은 가격을 인상할 기회를 상실했다고 푸념했다. 유가와 임금 상승도 상품 가격을 올리는 요인이 되지 못했고, 달러 하락으로 수입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최종 상품가격도 하락했다. 최종 수요가 살아나지 않고, 설비 과잉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세기초 3년간에 미국 경제에 나타난 현상은 상당부분 1990년대 일본이 장기불황에 진입하던 초기의 모습을 재연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적어도 미국 경제가 일본처럼 되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그 첫째 이유로 미국은 일본보다 경제 위기를 재빨리 인식하고 대처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지난해 FRB는 역사상 가장 급진적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연방정부가 재정정책을 취했다. 미국은 일본보다 신속하게 경제 위기에 대응했기 때문에 최근의 주가 하락이 극복되면 경제가 그린스펀 의장의 말대로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견해다.

둘째,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커져 1980년대말에 도쿄 황궁 부지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전체 땅값보다 비쌌을 정도로 일본의 부동산 거품은 걷잡을수 없이 커졌다. 지금 미국 부동산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지만, 10년전 일본처럼 거품이 형성되지는 않았다.

셋째, 일본은 은행이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다가 부실에 빠졌으나, 미국의 은행은 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초 재할인율을 6%에서 0.5%까지 내렸지만, 은행부실이 누적되면서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 일본 은행들은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했다가 땅값 하락으로 부실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미국 은행들은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증시 하락이 금융시스템 위기로 치닫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이다.

 

거품은 꺼지는 법이다. 미국과 일본의 거품은 시가와 양태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뉴욕 증시가 하락하면서 과거 대세 상승기의 선순환 과정이 이젠 악순환의 모순구조로 돌변하고, 미국 경제는 어쩔수 없이 일본의 전철을 밟았다.

일본은 1990년대초에 막대한 재정 흑자와 금리 인하 여력이 있었음에도 경제 회복에 실패했다. 그러나 미국은 금리 인하의 실탄이 부족한 상태에서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경기 촉진정책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 경제가 잘못될 경우 그 파장은 일본의 그것보다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1990년대말에 고정환율제를 채택해온 한국등 아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외환위기에 노출시킨바 있다. 일본의 장기침체는 아시아의 문제로 그쳤지만, 미국 경제가 최대 경제국가라는 점에서 미국의 장기침체가 세계 경제에 어두운 불확실성을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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