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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위기
회계준칙 어기고 분식회계로 수익 부풀려…투자자 이탈, 채권 회수로 파산신청
2002 美 회계부정②…대우를 닮은 엔론 사건
2019. 10. 24 by 김현민 기자

 

9·11 테러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20011016, 선진적인 경영기법과 이노베이션으로 고속성장을 구가해온 미국 에너지그룹 엔론(Enron)이 파산 보호를 법원에 신청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고향인 텍사스 휴스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엔론은 미국 랭킹 7위의 에너지 그룹으로 잘 나가던 회사였다. 엔론은 1985년 송유관 회사인 휴스턴 내추럴 가스와 인터노스가 합병해 설립한 회사다. 창립 당시 4개국에 불과했던 해외지사는 30여개 국가로 늘어났다. 121억달러로 시작한 총자산이 2001년에 330억달러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1999년에는 인터넷 회사 엔론 온라인을 출범시켜, 에너지 관련 회사에서 파생금융상품과 첨단 광대역 통신망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1,500여개 상품을 취급하는 종합 상품거래 회사로 변신했다. 출범이래 엔론온라인의 총거래규모는 6,500억달러에 달하며 하루 5,000건이 거래되고 일일 거래액수도 30억 달러에 달했다. 이에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사례 연구를 할 정도로 인터넷 전략 성공의 모범적 사례로 극찬받기도 했다. 그러나 뉴욕 증시가 하락하고 미국 경제가 꺾이는 가운데서 무리하게 사업 확장을 계속하면서 파산 위기에까지 몰린 것이다.

 

엔론 주식은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우량주였다. 2001년초 경영실적과 미래 비전을 설명하는 컨퍼런스 콜에서 한 애널리스트가 경영진의 귀에 거슬리는 질문을 던졌다. 그때 최고경영자는 그 질문을 한 사람에게 ‘ass-(x자식)’하며, 버럭 성을 냈다.

엔론의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경영진이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소액 투자자를 욕하는 모습을 보며, 경영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1년 매출목표 2,000억 달러의 미국 7위 기업이 무너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텍사스 휴스턴의 엔론 본사 /위키피디아
텍사스 휴스턴의 엔론 본사 /위키피디아

 

엔론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2001년초 언론에 의해서도 포착됐다. 경제전문잡지 포천지의 베서니 맥린 기자는 사건이 터지기 열달 전에 엔론의 회계장부 조작 가능성에 의문을 품고, “엔론 주가가 너무 비싸지 않은가라는 글을 실었다. 그녀가 취재를 하는 도중에 엔론 고위간부들이 총동원돼 기사를 막으려 했고, 케네스 레이(Kenneth Lay) 회장은 포천지 편집인에게 전화를 걸어 엔론이 잘못되면 반사이익을 얻을 사람들의 정보로 기사를 써선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포천지는 엔론 경영진의 전방위 공세에도 불구, 맥린 기자의 기사를 게재했다.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에서 금융시장 지식을 배운 이 여기자는 엔론의 회계 장부에 조작이 있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하지만 그녀의 기사는 당시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기사가 잘못됐다거나, 엔론의 방해공작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뉴욕 증시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엔론의 주가는 1999년에 50%, 2000년에 90%나 폭등, 뉴욕 월가의 기관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식이었고, 뉴욕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모두 나서서 엔론이 혁신적인 에너지 회사라며 주가를 띄워 올렸다. 이런 상황에서 포천지 기사가 먹혀들기 어려웠고, 그 틈을 비집고 엔론은 회계감사회사 아서 앤더슨과 짜고 장부를 조작하고, 주가를 띄워 올리는 장난을 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10월 마침내 엔론의 회계장부 조작 사실이 터져나오면서 그녀는 탁월한 기자로 평가를 받았고, 매스컴에서 서로 모셔 가는 존재가 되었다.

 

엔론은 더 이상 회계장부 조작을 감출수 없었다. 테러 직후인 20019월 중순, 엔론 경영진은 내부 갈등을 거쳐 과거 장부를 다시 회계해보니 3,500만 달러가 잘못 계산돼 이익이 줄었고, 계열사인 금융회사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해, 주주들에게서 12억 달러의 손해를 끼치게 됐다고 발표했다. 주주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그렇다고 연간 매출 규모를 보나, 6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감안할 때 이정도의 회계 잘못이나 손실로 파산까지 갈 이유는 없었다.

문제는 그동안 경영진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일반회계준칙(GAAP)을 어기고 분식회계를 하는 바람에 수익이 사실보다 부풀려졌고, 주주와 투자자들은 도대체 엔론의 부채가 얼마나 되는지를 의심했다. 한때 엔론 주식을 샀다고 자랑하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팔아제꼈고, 은행들이 빌려준 돈을 돌려 달라고 한꺼번에 몰아쳤다. 엔론은 투자자를 무시하고, 회계장부를 거짓 보고한 죄로 주가는 20센트까지 폭락하고, 40일만에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내고 말았다.

 

케네스 레이 회장 /위키피디아
케네스 레이 회장 /위키피디아

 

엔론의 파산신청으로 월가 애널리스트의 긍정적 평가를 믿고 묻지마 투자식으로 엔론 주식을 샀던 투자자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회계감사기관인 아더앤더슨도 엔론의 분식회계를 묵인해줬다는 의혹으로 투자자들의 원망을 샀다. S&P, 무디스등 신용평가회사들은 뒤늦게 엔론의 신용등급을 정크(투자부적격등급) 수준으로 깎아 내렸다.

오랫동안 케네스 레이 회장은 최첨단 금융기법과 비상한 사업 아이디어로 회사를 미국 에너지 공급의 30%를 장악할 정도로 키웠다. 이러한 확장 과정에서 엔론은 사업 확장을 위해 소요자금을 채권시장에서 주로 조달했으며, 부채 급증에 따른 신용등급 하락을 피하기 위해 금융계열사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편법을 사용했다.

엔론은 주식 발행을 통해 계열사에 출자하고, 계열사가 엔론의 지급보증으로 채권을 발행, 엔론에 되빌려주는 방식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일반회계준칙을 위반하며 장부외거래가 동원됐다. 엔론은 내부 경영갈등을 겪은후 20011016일 회계분식 과정에서 큰 손실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그 직후 주가가 폭락세로 돌변, 은행들이 이탈했으며, 사우디의 왈리드 왕자에까지 손을 내밀었으나, 돈 마련에 실패했다. 경쟁사인 다이너지가 인수를 선언, 협상에 들어갔으나, 엔론의 자금 사정을 메워줄 은행이 나타나지 않자 손을 떼고 말았다.

레이 회장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딕 체니 부통령과 절친한 사이이며, 입각이 거론되기도 했다. 워싱턴 관측통들에 따르면 엔론은 선거에서 엄청난 정치자금을 뿌렸고, 그중 상당액이 공화당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가 파산지경이 되자 강력한 로비스트를 동원했으나, 불행을 피하지 못했다.

 

엔론 로고 /위키피디아
엔론 로고 /위키피디아

 

엔론이 파산하자, 뉴욕 월가가 미국 랭킹 7위 기업인 엔론의 분식 회계를 확인하지 못하거나 묵인했다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지난 1997~98년 아시아 통화 위기때 한국을 비롯, 아시아 기업들에게 투명성(transparence)을 확보하도록 강요했던 그들이 자국 기업에 대해 그토록 감추고 두둔하려 했던 것이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파산으로 기록될 엔론의 경영위기는 장부조작을 통한 분식회계에서 출발했다. 4년간 9,300만 달러의 이익이 조작되고, 금융계열사 부실이 12억 달러로 불어나며, 재무담당 간부가 회사돈을 빼돌리는 사건이 투명한 회계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발생한 것이다.

미국 회계법인의 양심을 자처해온 아더 앤더슨은 엔론의 회계감사를 맡고도 장부조작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투자자들의 소송에 휘말렸다. 나중에 확인됐지만 아더 앤더슨은 엔론의 조작된 회계장부를 파기함으로써 형사 법죄를 저질렀다. 앤더슨은 이에 앞서 선빔과 웨이스트 매니지먼트에 대한 회계감사에서도 분쟁에 휘말렸고, 엔론 사건으로 월가에서 퇴출 직전의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무디스와 S&P는 다이너지사의 합병 무산이 발표되기 직전에 엔론의 등급을 무더기로 하향조정, 일종의 담합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무디스와 S&P등 뉴욕 월가의 양대 신용평가회사들도 인수협상에 나섰던 다이너지가 협상 결렬을 통보받을 때까지 엔론의 신용등급을 투자등급으로 유지했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미국의 신용평가기관들은 엔론과 다이너지의 협상이 결렬되기 전날 밤까지 투자등급을 유지하기로 합의했고, 다음날 새벽 다이너지로부터 결렬통보를 받고 공식발표 몇분전에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는 것이다.

엔론의 금융계열사는 현금을 확보하지 않고 있다가 회계조작이 터지면서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돈을 인출하는 바람에 한달사이에 파산을 맞게 됐다. 금융감독당국이 은행에 대해서는 투자자금의 일정비율을 예치하도록 의무화하면서도, 비은행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예치 규정을 두지 않았다가 허점을 노출한 것이다.

또 피델리티, 뱅가드, 푸트남, 얼라이언스 캐피털등 월가의 대표적인 뮤추얼 펀드들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긍정적 평가와 허위장부를 믿고 엔론 주식을 매집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뉴욕타임스지는 엔론 사건 발생직후 사설에서 에너지그룹 엔론의 파산이 월가의 내부 폭발이라며, 월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엔론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 마치 한국의 대우그룹이 와해될 때를 연상케 한다. 정치권에 많은 자금을 대고, 분식회계를 하며, 무분별하게 사업확장을 한 것 등이 엔론과 대우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다.

한국에서 대우그룹만큼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많이 댄 기업도 없을 것이다. 대우의 김우중 전 회장이 한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의사를 비쳤고, 대우 돈을 받지 않은 정치인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치자금엔 후한 기업인이었다. 엔론도 선거에서 공화당에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낸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텍사스 휴스턴에서 사업을 시작한 케네스 레이 회장은 주지사 시절부터 대통령이 되기까지 조지 부시의 주요 후견자였고, 입각설이 나올 정도로 워싱턴 정가에 영향력이 컸다.

엔론은 주식 발행을 통해 계열사에 출자하고, 계열사가 엔론의 지급보증으로 채권을 발행, 엔론에 되빌려주는 방식을 사용, 돈을 만들어 계열사를 확장하는 방법을 썼다. 그 과정에서 회계준칙을 위반하며 장부외 거래를 동원했다. 대우도 IMF로 나라가 어려울 때 금융계열사를 통해 채권시장에서 돈을 쓸어모아 사업을 확장하면서 회계장부를 분식했다.

최고 경영자가 경영에서 손을 뗀다고 했다가 얼마후 다시 경영일선에 등장하는 것등은 엔론이나 대우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다.

그러나 대우와 엔론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대우가 휘청거리자 한국 정부는 대우 채권을 지급보증하고,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어 살리려고 했지만, 대우는커녕 한국 경제에 큰 짐을 지우고 말았다. 그러나 미국은 엔론을 시장에 맡겼다. 투자자가 빠져나가고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지 않아 당장 파산위기에 처했는데도 부시 정부는 후견자의 기업을 내버려뒀다. 정부가 시장 안정을 명분으로 개입한 것이 한국식 대응이라면, 사건을 완전히 시장에 맡기는 것이 미국식 대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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