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아틀라스뉴스
뒤로가기
터키
아랍 민족주의 부추기며 영-불, 중동 나눠먹기…유대인에겐 정착촌 약속
오스만투르크⑩…영국-프랑스, 중동 분할하다
2019. 10. 24 by 김현민 기자

 

1914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오스만투르크를 해체하기 위해 배후인 중동지방을 흔들어 댔다. 독일을 죽이기 위해 독일과 동맹을 맺은 오스만투르크를 약화시켜야 했고, 그러기 위해 오스만투르크 영토내 민족들에게 반란을 부추겼다.

영국은 교활하게 중동에 3중 정책을 취했다. 그 첫째는 아랍 민족에게 반란을 유도하는 것이고, 둘째는 전쟁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유대 국가 건설을 약속한 것이며, 셋째는 오스만투르크가 물러난 지역을 프랑스와 나눠 먹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가 비밀리에 따로따로 진행되었다.

 

그 첫 번째 임무는 영국인 장교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에게 부여되었다. 그는 후세에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라 불리는 인물로, 그의 활약상은 데이비드 린(David Lean)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된다.

100년전인 1918101. 영국인 로렌스는 지금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Damascus)에 입성했다. 그날 아침 9시 영국군의 지휘를 받는 호주 제10 경기병 여단이 다마스쿠스에 진입해 터키 주둔군의 항복을 받아냈고, 로렌스와 아랍 독립군이 그 뒤를 따랐다.

로렌스는 아랍의 지도자 파이잘(Faisal)을 임시정부 수반으로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새로 수립된 아랍 국가(Arab State)는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고, 파이잘이 국왕으로 등극시켰다. 파이잘이 아랍 민족주의를 토대로 세운 시리아는 지금의 시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포함), 시나이 반도를 합친 대시리아를 의미했다.

이때 로렌스의 나이는 30세였다. 하지만 젊은 영국인은 곧 실망을 한다. 로렌스는 영국과 프랑스가 2년 전에 비밀조약을 체결한 사실을 알게 된다.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따른 분할안 /위키피디아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따른 분할안 /위키피디아

 

앞서 2년전인 19165월 영국은 비밀리에 프랑스와 협상을 벌여 오스만투르크를 해체하고,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아랍 영토를 나눠 먹기로 했다. 한편에선 아랍 민족주의를 부치기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권을 나누는 강대국의 이중 전략이자, 속임수였다. 협상의 주역은 영국의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Mark Sykes)와 프랑스 외교관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François Georges-Picot)였다. 이때 체결된 비밀협정이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라 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두 대표는 오스만투르크가 패망한 후 중동지역을 둘로 나눠 영국은 지중해와 요르단강 사이 해안 지역 일부와 지금의 이라크, 요르단의 B구역을 가져가고, 프랑스는 이라크 북부 일부와 시리아, 레바논의 A구역을 차지하기로 합의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갈등이나 부족성이 강한 아랍 무슬림의 역사·문화·종교적 요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영국과 프랑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경은 자를 대고 일직선으로 그었다. 비밀 협상이었으므로, 당사자인 아랍 세력은 배제됐다.

수니파가 살던 알레포는 시아파가 지배하는 시리아와 묶였고, 수니파 중심 도시 모술은 시아파 대도시 바그다드와 한 나라가 됐다. 여기엔 1910년 중반 발견된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석유를 차지하려는 영국의 노림수가 크게 작용했다.

 

T. E. 로렌스 /위키피디아
T. E. 로렌스 /위키피디아

 

이 협정 내용은 비밀에 붙여졌지만, 영국은 연합군의 일원인 러시아에겐 양보를 구하는 차원에서 알려줬다. 하지만 191711월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레닌이 제국주의 야욕을 폭로하면서 비밀협정 내용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러자 영국을 철석같이 믿었던 아랍인의 배신감은 컸다.

영국정부의 지시로 아랍인을 지원했던 로렌스도 모국에 역겨움을 느꼈다. 그는 영국 정부에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자신이 약속한 아랍의 독립에 배치되며, 그런 노력을 좌절시킬 것이라며 반대했다.

 

1920년 프랑스군이 레바논 산악지역을 침공했다. 이유는 영국과의 비밀 협정에 근거한데다 900년전 십자군 전쟁 때 프랑스 기사단이 점령한 레바논과 시리아를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다마스쿠스를 점령해 위임통치를 시작하면서 파이잘 국왕을 내좇아 버렸다. 파이잘은 런던으로 찾아가 호소했다. 영국은 그를 자기네 점령지역인 이라크의 위임통치 수반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그는 곧 위임통치 수반직을 사퇴하고 국민투표를 거쳐 1921년 이라크 국왕에 오른다. 파이잘은 영국군 점령하에서 반쪽 국왕으로 연명하게 된다.

어쨌든, 아랍 국가, 즉 대()시리아는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해체되어 프랑스령 시리아와 영국령 이라크로 분단된다. 후에 IS가 등장해 통일국가를 세우고 영국과 프랑스에 테러를 감행하는 원인이 이때 제공된 것이다.

 

영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대인들게도 손을 내밀었다. 전쟁 막바지에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당대 유럽 최대은행인 유대계 로스차일드의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917112일 영국의 아서 밸푸어(Arthur Balfour) 외무장관이 런던 피카딜리에 있는 리오넬 월터 로스차일드(Lionel Walter Rothschild) 남작의 집에 들러 편지를 손수 건넸다. 로스차일드 경은 이 편지를 영국 시오니스트 연합에 전달해 공개했다.

이 편지가 후에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으로 불리는 것으로, 유대인 국가, 즉 지금의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단초가 된다.

편지 내용은 의외로 짧다. 주요 대목을 번역하면 이렇다.

폐하의 정부는 유대 민족을 위한 민족적 고향’(national home)을 팔레스타인에 수립하는 것을 적극 찬성하며,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그로 인해 팔레스타인에 현존하고 있는 비유대인 사회의 시민권과 종교의 권리나, 다른 국가에서 유대인들이 누리는 권리나 정치적 지위가 전혀 침해되지 않을 것으로 확실하게 믿는다.”

이 편지를 통해 영국은 1차대전이 끝나면 유대 정착촌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 편지 내용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었던 대목은 민족적 고향’(national home)이라는 표현이다. 포어 장관은 유대인 국가(state)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고향’(home)이라고 명시했다. 아랍인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 유대인들은 이 말을 유대국가로 알아 들었다.

영국 외무장관이 유럽 금융계를 좌지우지하던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선언문을 전달한 이유는 전쟁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정설이다. 로스차일드 그룹은 독일에서 시작해 영국, 프랑스, 합스부르크 가의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서 금융산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1차 대전 3년째가 되어가던 1917년 영국은 전비가 바닥이 났다. 러시아에선 혁명이 일어나 독일과 강화조약을 맺고 전선에서 이탈했다.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는 했지만, 뒤늦게 전쟁 준비를 하느라 병력이 유럽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정착지를 약속하면서 유태 금융인들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19181030일 오스만투르크는 그리스 렘노스 섬의 무드로스 항구에 정박한 영국군함 아가멤논호(HMS Agamemnon)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사실상 항복한 것이다.

연합국과 터키 사이의 전쟁은 끝났지만, 이젠 영국·프랑스의 제국주의와 아랍 민족주의가 대립했다. 곧이어 프랑스가 다마스쿠스를 침공하고, 영국이 이라크를 점령하자 로렌스는 환멸에 빠졌다. 그는 영국 국왕(조지 5)에게 훈장을 반납해버리고, 자신이 했던 일을 후회했다.

결과적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아랍 민족주의를 부추겨 오스만투르크를 붕괴하는 데 이용해 방대한 중동 땅을 나눠먹기 했고, 로렌스는 그에 일조한 것이다. 영국은 아랍 민족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팔레스타인 땅도 1차 대전에 전쟁 자금을 제공한 유태인에게 내주었다. 로렌스는 후에 자신의 저서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에서 자신의 꿈은 몽상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은 자신의 모국이 행한 제국주의의 앞잡이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오늘의 중동은 영국과 프랑스의 교활하고 제국주의적인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스라엘이 건국하고 이라크와 시리아가 갈라지고, 다시 아랍제국을 건설하자는 IS가 등장했다. 100년전 1차 대전 때 강대국의 비밀 공작으로 그어진 국경선의 결과다.

 

영국 아서 밸푸어 외무장관이 리오넬 월터 로스차일드 남작에게 보낸 편지 /위키피디아
영국 아서 밸푸어 외무장관이 리오넬 월터 로스차일드 남작에게 보낸 편지 /위키피디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