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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위기
애널리스트, 주가 폭락 예측 못해…신용평가사, 기업 파산후에 신용전망 강등
2002 美 회계부정⑥…분석가와 신평사 오류
2019. 10. 28 by 김현민 기자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임을 자부하던 뉴욕 월가는 2002년 연이은 회계조작 사건으로 그 명예를 실추시켰다. 이코노미스트들의 증시 예측은 3년째 틀렸고, 내로라는 애널리스트들은 투자자들의 집 소송에 휘말렸다. 투자회사들은 인터넷 회사 상장 과정에서 담합과 부정을 일삼았다는 이유로 감독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뉴욕 월가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로 붕괴된데 이어 월가의 자존심도 스캔들과 소송에 휘말렸다.

돈놀음이 주업인 월가 사람들의 가장 큰 치명타는 소득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뉴욕 주정부의 공식적인 집계에 따르면 2001년 월가 종사자들의 연말 보너스는 100억 달러로, 전년의 143억 달러에 비해 30% 줄었다. 이는 1998년 아시아 위기 이후 처음이다. 증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 회사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 되었다.

가장 큰 망신은 월가에서 내로라는 예측가들이 올해 미국 경제와 증시 전망을 맞추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객관적인 주가지수로 평가되고 있는 S&P 500 지수는 2001년 연말에 1,150포인트에 끝났다. 그런데 월가에서 이름을 떨치는 이코노미스트들의 전망을 보면 에드워드 커슈너(UBS 워벅) 1,570 제프리 애플게이트(리먼브러더스) 1,350 애비 코언(골드만 삭스) 1,300~1,425 토머스 갤빈 (CSFB) 1,375 토머스 맥머너스(뱅크오브 어메리카) 1,200 더글러스 클리곳(JP모건) 950 포인트 등이다. 결국 연말 S&P 500 지수는 가장 인기 없는 비관적(Bearish) 견해의 이코노미스트들의 영역으로 떨어진 것이다.

 

닷컴 버블 당시의 애널리스트. 메리 미커 /위키피디아
닷컴 버블 당시의 애널리스트. 메리 미커 /위키피디아

 

애널리스트들은 그야말로 수난의 시대였다. ‘인터넷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메리 미커는 투자가들의 소송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최고의 애널리스트를 자처하던 헨리 블로젯은 부당한 분석을 했다는 이유로 감독당국의 조사를 받아 메릴린치를 떠나야 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것이 본분이지만, 봉급 주는 회사의 투자방향에 다른 의견을 내기 어렵고 한두건 정도 짜고 치는 것도 괜찮지 않는가 하는 안이한 생각이 애널리스트 수난 시대를 자초한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은 분석과 전망이 맞지 않아 그 분석을 토대로 투자한 투자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1990년대말 뉴욕 증시 상승을 이끈 골드만 삭스의 애비 코언과 프루덴셜증권의 랠프 아캄포라와 같은 애널리스트는 언론에 얼굴을 들이 밀지 못했다. 그들의 불리시(bullish) 전망이 틀렸기 때문이다.

증권감독당국과 의회가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이 소속 기관의 투자방향과 연결돼 있다고 의심, 이를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애널리스트들의 세계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이 확산된 것이다.

뉴욕 월가는 20조 달러 이상의 돈이 움직이는 대규모 도박장이다. 애널리스트는 투자를 결정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의 분석과 전망을 통해 다른 사람의 베팅을 유인하므로 일종의 훈수꾼이라고 할수 있다. 그 훈수꾼이 특정 게임 참가자와 짜고 흥정을 한다면 공정한 게임이 되지 않는다.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규제는 나스닥 시장의 버블이 붕괴된 후 제기됐다. 1999년말에서 2000년초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을 일제히 인터넷주를 비롯, 정보통신(IT)주를 사라고 주장했다. 인터넷 산업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리는 사람들은 투자회사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경제학자들뿐이었고, 그들은 투자자들에겐 관심조차 얻지 못했다. 기관투자회사들은 고액 연봉의 애널리스트들을 고용하면서 닷컴 기업 상장을 주도, 엄청난 수수료를 챙겼다. 이름도, 수익구조도 없는 회사가 유명 애널리스트의 입에 거론되는 것만으로 돈방석에 앉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형성됐었다.

증시 호황기에 뉴욕 월가는 애널리스트들에 의해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월가의 반도체 애널리스트 몇 명이 한국 주식시장의 불루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애널리스트들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뛰었다. 톱클래스 애널리스트의 연봉은 10년전만해도 25만 달러 수준에 불과했으나, 1990년대말엔 100만 달러가 넘었다. 1999년 인터넷주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뛸 때 모건스탠리의 인터넷 전문 애널리스트 메리 미커는 1,500만 달러의 연봉을 받아 애널리스트로는 사상 최고의 연봉을 기록했다.

경기가 좋고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유지할 때 불공정한 행위는 가리워 졌다. 펀드매니저가 먼저 특정 주식을 대량 구입하고, 소속 애널리스트가 그 주식을 사라고 판정할 경우, 투자자들이 몰렸다. 그 펀드는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된다. 다행히 주식시장이 활황세를 유지, 주가가 오르고 있을때엔 애널리스트의 말을 듣고 투자한 일반투자가는 불만이 없었다. 그렇지만 주식시장이 꺾어지면서, 투자가는 불만을 품게 되고, 감독당국은 투자회사와 애널리스트의 유착관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규제법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투자회사가 자사의 포트폴리오에 손해를 주는 애널리스트들을 고용하겠는가. 또 수백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애널리스트가 소속회사의 투자방침에 어긋나는 분석을 낼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규제당국은 애널리스트에 대한 강한 규제법안을 만들었지만 투자회사와 애널리스트 사이에 유착관계는 완전히 끊기 어려운 속성을 지니고 있다.

 

한 나라의 정권도 무너뜨릴 수 있는 파괴력을 가졌다는 뉴욕 월가의 신용평가기관들은 주식시장이 달아올랐다가 식는 과정에서 기업의 신용등급 조정 과정에 무리수를 두었다. 신용평가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주식시장이 과열되면서 주가가 갑자기 오르는데 그 회사 신용도를 올리지 않을수 없었고, 주식시장 붕괴로 주가가 급락할 때 반대의 방향으로 가지 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엔론의 경우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다이너지와의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까지는 투자등급을 유지해주었다가 협상이 깨지면서 며칠사이에 무려 13등급이나 내리는 오류를 범했다. 신용평가회사들은 투자자들로부터 신용감시를 게을리 했다는 비난의 화살이 빗발치자 캘파인, 다이너지등 다른 에너지회사의 등급을 무더기로 낮추어 괜챦은 회사도 신용경색에 빠뜨리는 모순을 범했다.

엔론 파산으로 촉발된 미국 기업의 회계조작 사건으로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으로 행사했던 무디스, S&P, 피치 등 3개 신용평가회사의 아성이 흔들렸다.

3대 신용평가회사의 과점은 1975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법안을 개정하면서 ‘A’등급 남발을 막기 위해 자격 요건을 갖춘 회사에 대해 신용평가 영업을 허가하면서 형성됐다. 이 허가제가 진입장벽으로 작용, 3대 회사의 과점체제는 굳어졌다. 미국 신용평가 시장은 2001년을 기준으로 S&P41%, 무디스 38%, 피치 14%3개 회사가 9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3대 신용평가회사에 대한 비판은 엔론 사태 이후 확산됐다. 투자자들이 엔론의 유가증권을 대량 매각, 주가가 폭락했는데도 신용평가회사들은 엔론의 투자등급을 가만 두었다. 주가가 휴지조각이 되는 순간에도 엔론의 신용등급은 우량등급이었다. 비판자들은 무디스와 S&P가 엔론 파산 3개월 전에 조사를 실시했어야 했다, “신용평가회사들이 투자은행과 짜고 신용등급을 뒤늦게 하향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엔론 파산 이후 신용평가회사들은 의회 청문회에 불려다니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규제 완화 방안을 적극 추진하면서 개혁의 대상으로 부각됐다. SEC는 신용평가 시장과 평가회사의 운영시스템에 대한 실사를 거쳐 진입장벽 해제등 규제 완화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신용평가회사들이 경쟁 없이 영업을 해왔고, 3개 회사가 뭉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해왔다는 비판을 받아들인 것이다. SEC의 규제 완화 방안은 평가회사 허가를 확대하는 방안 허가제를 폐기하는 방안등으로 요약되었다.

미국의 신용평가회사들은 1970년대의 뉴욕주 파산, 1980년대의 오렌지 카운티 파산, 1990년대 아시아 통화위기때에도 늑장 대응했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신용평가 회사 가운데 무디스만 상장돼 있고, S&P와 피치는 비상장회사로 남아 있었다. 무디스의 수익은 매출의 50%를 차지하는 짭짤한 회사로, 2001년 뉴욕증시가 하락했을 때도 주가가 33% 상승했으며, 워렌 버핏이 15%의 주식을 매입할 정도로 인기 회사였다. S&P는 경제전문 잡지 비즈니스위크등 출판사업을 비롯,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기 때문에 매출대비 수익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30% 수준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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